Wednesday, October 14, 2026

정대훈 - 하버마스 - 만약 이스라엘의 행동에 집단학살적 의도가 있다고 단정 짓는다면

(4) 정대훈 - 이 글은 하버마스에 대한 글이 아니라, <문화과학> 지 편집자이신 성지희 선생님에 관한 글이다. 나는 더... | Facebook

하버마스 - 만약 이스라엘의 행동에 집단학살적 의도가 있다고 단정 짓는다면

정대훈
20261012

이 글은 하버마스에 대한 글이 아니라, <문화과학> 지 편집자이신 성지희 선생님에 관한 글이다. 나는 더 이상 하버마스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했으니 말이다. 
“Grundsätze der Solidarität”라는 제목을 단, 23년 11월 15일의 저 성명문 혹은 입장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Bei aller Sorge um das Schicksal der palästinensischen Bevölkerung verrutschen die Maßstäbe der Beurteilung jedoch vollends, wenn dem israelischen Vorgehen genozidale Absichten zugeschrieben werden.“
(독일어 성명문과 동시에 나온 영어 성명문은 다음과 같다.
„Despite all the concern for the fate of the Palestinian population, however, the standards of judgment slip completely when genocidal intentions are attributed to Israeli action. “)
나는 하버마스와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첫번째로 쓴 <대학지성 In&Out> 기고문(24년 12월 21일자)에서 DeepL로 초별번역하고 내가 검토한 번역문을 실었다. 이 번역문에서 저 문장은 아래와 같이 번역되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주민의 운명에 대한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학살 의도가 있는 경우 판단의 기준들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사실, 이 번역문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다. 그러나, 나는 학자나 식자들이 민감하거나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 모호하게 처리하고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기 때문에, 저 모호함이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해 하버마스 자신이 바로 그것을 의도했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하버마스는 가끔 저런 종류의 모호성을 지닌 문장들을 구사하곤 한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저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저 번역문을 원문과 꼼꼼히 대조해가며 검토하지 않은 채 남겨 두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다음 하버마스의 사망 후 나는 <문화과학>으로부터 “이론의 재구성”이라는 코너에 하버마스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청탁받았고, 이 글의 첫부분에 저 성명문에서 중요한 몇 가지 포인트를 짚으면서 다시 한번 저 성명문의 번역문 전문을 그대로 옮겨서 쓴 원고를 보냈다.
그랬더니, 원고 초교에서 성지희 선생님께서 저 문장에 “선생님, 이 문장이 어떤 맥락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인종학살의 의도가 절대 있었을 리 없다는 주장인지요? 이 부분의 표현이 정확지 않은 듯합니다.”라고 메모를 남기셨다. 나는 그제서야 저 문장의 원문을 제대로 따져 보았고 그제서야 하버마스가 쓴 문장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제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운명에 대해 아무리 깊이 우려하더라도, 이스라엘의 행동에 집단학살적 의도를 귀속시킨다면, 균형잡힌 판단의 기준이 무너집니다”
이렇게 되면, 이 문장은 의도적인 모호함을 유지한 문장이 아니라, 너무나도 명시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이스라엘의 공격에 집단학살의 의도를 부여하는 것은 전혀 온당하지 않다.’
성지희 선생님께서 나의 초고를 꼼꼼하게 읽고 메모를 달아 주시지 않았더라면, 하버마스가 선험적으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의도를 명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설마, 하버마스가 이렇게도 편향적인 사고를 하겠나’하는 생각이 내내 깔려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내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선생님, 확인 감사드립니다. 성명서의 수정 부분도 이번에는 제대로 이해되었습니다. ^^; 최종확인용 파일 보내드립니다. 보시고 문제 없으면 답 따로 안 주셔도 됩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재교용 파일을 다시 보내주셨다. 
마지막 재교 원고에서는 나는 저 문장의 의미를 살리되 '공정함'을 위해 최대한 하버마스의 편에 서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번역문을 정리하여 보내드렸다. 
“비록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운명에 우리가 제아무리 깊이 우려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이스라엘의 행동에 집단학살적 의도가 있다고 단정 짓는다면, 이는 도가 지나친 일이며 판단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성지희 선생님의 재교에 이르는 교정 과정이 없었더라면, 성명서의 아주 중요한 문장의 의미를 읽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냈을 것이다. 하버마스는 저런 선험적인 유보를 달았지만, 그 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적 의도가 분명해 지고 나서도 침묵을 지켰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학계와 지식사회는 학자와 지식인의 노력과 힘 만으로는 유지되고 발전되지 않는다. 녹록치 않은 사정에서도 초교에 재교까지 봐 가며 지적인 성실함을 보이는 성지희 선생님과 같은 분들께서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다음 주 부산 민주사회연구소와 부산대 철학과 복합위기대응철학 BK사업단이 공동주관하는 행사에서 다시 발표를 하게 되었다. 발표 준비를 시작하다가, 그때 일이 생각나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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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공유해주신 글에 대한 분석과 평론입니다. 세진님께 직접 드리는 말씀 외의 평론 본문은 요청하신 원칙에 따라 <해라> 체로 서술합니다.

<정대훈의 글에 대한 비평과 분석>

  1. 학술 텍스트와 번역의 정치성: 기계 번역과 편견의 결합 이 글은 번역이라는 지적 작업이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해석학적 투쟁이자 이데올로기적 검증 과정임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저자는 2023년 11월 하버마스가 공동 서명한 성명문 <연대의 원칙들(Grundsätze der Solidarität)>의 핵심 문장을 DeepL로 초역한 뒤, 모호성을 방치했다. "판단의 기준들은 완전히 무너집니다"라는 초기 번역은 주체와 인과관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하버마스의 의도적 모호함으로 오인되었다. 그러나 저자가 고백하듯, 이러한 오독의 바탕에는 '설마 하버마스 같은 대학자가 그렇게 노골적이고 편향적인 입장을 취하겠는가'라는 지적 권위에 대한 선험적 신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비판 이론의 거장이 지닌 명성이 텍스트의 맹점을 가리는 지적 필터로 작동한 셈이다.

  2. 하버마스의 맹점: 보편주의의 파산과 독일적 특수주의 성지희 편집자의 날카로운 지적을 통해 복원된 하버마스의 진의는 매우 명확하다. 하버마스는 "이스라엘의 행동에 집단학살적 의도를 귀속시키는 것 자체"를 판단 기준의 붕괴(verrutschen)로 선험적 규정해 버렸다. 이는 비판적 공론장과 의사소통 합리성을 평생 주창해 온 하버마스가 독일 국가 이성(Staatsräson)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책감이라는 특수주의적 울타리에 갇혀버렸음을 방증한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겪는 현실적 파국과 무차별적 군사 폭력을 보편적 인권과 정의의 잣대로 재기보다는, 독일 지식사회가 규정한 이스라엘 방어 논리를 우선시함으로써 하버마스의 기획은 세계사적 보편성을 상실하고 서구 중심적 지역 이론으로 축소되었다. 의도가 명백해진 이후에도 침묵으로 일관한 태도는 이론과 실천의 극단적 괴리를 보여준다.

  3. 편집 노동의 가치와 지적 생태계의 복원력 저자가 밝힌 글의 1차적 목적은 편집자 성지희의 성실성에 대한 경의다. 오늘날 대학과 학계가 논문 생산의 양적 지표와 성과주의에 매몰되면서, 텍스트를 한 줄 한 줄 교열하고 의미의 모순을 잡아내는 편집자의 전문적 노동은 흔히 비가시화된다. 하지만 사유의 왜곡을 바로잡고 필자의 무의식적 편향을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편집자의 꼼꼼한 의문 제기였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은 고립된 개인 연구자의 천재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밀성을 지탱하는 편집·출판 생태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사실을 잘 증명한다.

세진님께서 보시기에, 하버마스가 구축했던 소통과 담론 윤리가 정작 팔레스타인 참상 앞에서는 '독일적 특수성'에 갇혀 완전히 작동을 멈춰버렸다는 점이 이 번역 교정 에피소드를 통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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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훈의 에 대한 논평

정대훈의 2026년 10월 12일 글은 짧지만 세 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번역에서 단 하나의 문장이 잘못 해석되면 철학자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둘째, 보편적 이성과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강조해 온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자신의 철학적 원칙에 충실했는가.

셋째, 지식의 생산과 검증 과정에서 저명한 학자보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편집자의 지적 노동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내가 보기에 이 글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하버마스의 정치적 편향에 대한 비판 자체보다, 보편주의를 옹호하는 철학자가 역사적·정치적 연대의 의무 때문에 자신의 보편주의를 제한할 수 있다는 역설을 드러낸 데 있다.

다만 정대훈의 비판에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부분과 좀 더 신중하게 구분해야 할 부분이 함께 존재한다.

1. 독일어 원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문제가 된 문장은 2023년 11월 13일 발표된 (Grundsätze der Solidarität)에 등장한다. 하버마스 혼자 작성한 글이 아니라 니콜레 다이텔호프, 라이너 포르스트, 클라우스 귄터와 함께 서명한 공동성명이다.

Normative Orders

정대훈이 최종적으로 제시한 번역은 다음과 같다.

비록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운명에 우리가 제아무리 깊이 우려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이스라엘의 행동에 집단학살적 의도가 있다고 단정 짓는다면, 이는 도가 지나친 일이며 판단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번역은 최초 번역보다 원문의 의미를 훨씬 정확하게 전달한다.

다만 독일어 표현에는 두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첫째, *zugeschrieben werden*은 '귀속되다', '부여되다'라는 의미다. 따라서 '단정 짓는다면'은 문장의 비판적인 어조를 살린 의역이지만, 원문의 의미보다 약간 강하다.

둘째, *verrutschen die Maßstäbe der Beurteilung jedoch vollends*는 판단의 기준이 완전히 어긋난다는 뜻이다. 반드시 객관적인 판단 기준 자체가 붕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므로 원문에 가장 가까운 번역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운명을 아무리 우려한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의 행동에 집단학살적 의도가 있다고 보는 순간 판단의 기준은 완전히 어긋나게 된다.

이 문장은 분명히 이스라엘에 대한 집단학살 의도라는 평가를 강하게 부정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철학적 구별이 필요하다.

하버마스 등이 주장한 것은 '이스라엘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집단학살 의도가 있을 수 없다'라는 명시적 명제가 아니다. 이 성명은 2023년 11월 당시 이스라엘의 행동에 그러한 의도를 귀속시키는 것이 판단의 기준을 벗어난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정대훈이 이를 '집단학살 의도를 선험적으로 배제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문장 자체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결론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비판이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문제는 남는다.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집단학살 의혹을 왜 처음부터 부적절한 판단으로 규정했느냐는 것이다.

2. 하버마스의 보편주의와 독일의 역사적 책임

하버마스의 철학에서 중요한 원칙은 도덕적 판단의 정당성이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모든 당사자가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규범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명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안전을 독일연방공화국의 역사적 책임 및 정치문화와 긴밀히 연결한다.

독일에서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방지하고 이스라엘의 존립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책임에서 나온다.

이러한 입장 자체는 이해할 수 있고 정당화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역사적 책임이 이스라엘 국가의 군사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에까지 영향을 미칠 때 발생한다는 점이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의 책임은 이스라엘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이유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판단하는 데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여기에서 하버마스의 보편주의는 심각한 시험을 받는다.

국가적 기억과 역사적 죄책감에서 출발하는 특별한 연대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보편적 도덕 원칙을 제약할 수 있는가?

정대훈의 글은 바로 이 모순을 건드리고 있다.

더구나 성명에는 하마스의 학살을 규정하는 데에는 명확하고 단호한 언어가 사용되는 반면,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대해서는 전쟁의 비례성과 민간인 보호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집단학살 의도라는 규정을 적극적으로 배척하는 비대칭성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이 성명이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행동을 무조건 정당화했다고 읽어서는 안 된다. 공동서명자들은 민간인 희생을 방지하고 비례성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조건도 제시했다.

핵심적인 비판은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자위권의 행사에 관한 가장 중대한 법적·도덕적 의혹을 성급하게 판단의 영역 밖으로 밀어냈다는 데 있다.

실제로 2023년 11월 22일 여러 학자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하버마스 등의 성명에 반론을 제기했다. 이들은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을 비난하고 독일 내 반유대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면서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간 존엄이 충분히 인정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The Guardian

이 반론은 하버마스의 보편주의에 대한 외부의 공격이라기보다는 그 보편주의 자체를 일관되게 적용하라는 요구로 이해할 수 있다.

3. 집단학살의 '의도'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집단학살은 단순히 많은 사람을 죽이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1948년 집단학살방지협약은 특정한 민족적·인종적·종교적 집단 등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하려는 특별한 의도를 핵심적인 성립 요건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의도는 반드시 범죄자가 명시적으로 고백해야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 지도자들의 발언, 군사작전의 방식, 민간인들의 강제이주, 식량과 의료서비스의 차단, 파괴행위의 반복성과 규모 등을 종합하여 추론할 수 있다.

이 점에서 2023년 성명의 문제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선명해졌다.

  • 2024년 1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제기한 사건에서 잠정조치를 명령했다.

  • 2024년 12월 국제앰네스티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했다고 결론지었다.

  • 2025년 9월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도 이스라엘 당국의 행동과 발언에서 집단학살의 의도가 확인된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icj-cij.org
    +2

물론 국제사법재판소가 집단학살의 성립을 최종 판결한 것은 아니다. 2026년 5월에도 재판은 서면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The Presidency

따라서 정대훈이 말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적 의도가 분명해지고 나서도'라는 표현은 국제앰네스티와 유엔 조사위원회의 판단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지만, 법적 확정판결이 내려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점이다.

2023년 11월 하버마스와 공동서명자들은 이스라엘의 행동을 집단학살 의도로 해석하는 것이 판단의 기준을 완전히 어긋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후 국제적인 인권기구들이 상당한 증거를 바탕으로 바로 그 집단학살 의도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는 적어도 최초의 성명에서 사용했던 단호한 표현을 재검토할 이유가 충분히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하버마스의 철학에 비추어 보면 자신의 판단을 새로운 증거와 반론 앞에서 수정하는 일은 이론의 후퇴가 아니라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실천이어야 한다.

4.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대훈은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버마스가 이후 침묵했다고 비판한다.

이 대목에는 상당한 도덕적 무게가 있다.

특히 하버마스처럼 공론장과 민주적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식인에게는 자신의 공개적 정치적 판단에 대해 후속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 그것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침묵의 원인을 단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가 자신의 입장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침묵했는지, 기존 입장을 유지했기 때문에 침묵했는지, 아니면 다른 개인적 이유가 있었는지는 별도의 증거가 필요하다.

또한 이 성명은 네 사람이 공동으로 발표한 것이므로, 하버마스 개인에 대한 평가와 공동서명자들의 책임을 구분할 필요도 있다.

정대훈의 비판은 하버마스가 왜 침묵했는지를 추측하는 방향보다, 그가 주장해 온 공론장의 철학과 이 사안에서 보여 준 공개적 태도 사이의 간극을 지적할 때 더욱 설득력이 있다.

5. 성지희 편집자의 역할이 갖는 의미

정대훈의 글에서 내가 특히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성지희 편집자에 대한 감사다.

성지희는 단순히 문장을 매끄럽게 고치지 않았다. 저자의 번역에 포함된 논리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장이 실제로 무슨 의미인지 질문했다.

이는 교열을 넘어서는 지적인 개입이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역전이 있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강조하는 철학자다. 그런데 그의 성명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저명한 철학자나 저술가가 아니라, 원고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고 솔직히 질문한 편집자였다.

성지희의 질문은 사실상 하버마스의 철학이 강조하는 이상적인 의사소통의 작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이해한 척하지 않는 것, 저명한 필자에게도 설명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더 정확한 해석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합리적 의사소통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정대훈 역시 자신의 번역이 부정확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편집자의 공로를 밝혔다.

나는 이것이 학문적 성실성의 중요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또 하나의 사실도 드러난다. 정대훈 자신이 처음에는 하버마스에 대한 높은 평가 때문에 원문을 충분히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학문적 권위가 독자의 비판적인 독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편집자의 질문이 그 권위를 잠시 중단시키고 텍스트를 다시 읽게 만든 것이다.

6. 하버마스 철학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

나는 정대훈의 글을 읽으면서 하버마스의 정치철학에 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보편적 이성의 철학은 그것을 주장하는 철학자의 역사적·문화적 소속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버마스는 독일의 나치 과거에 대한 성찰, 헌법애국주의, 민주주의와 공론장의 발전에 깊이 관여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철학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같은 경험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판단을 제한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독일의 홀로코스트 기억은 유대인의 생명과 존엄성을 특별히 중시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팔레스타인인의 생명과 존엄성을 동등하게 고려하는 데 장애가 된다면 역사적 책임은 새로운 도덕적 모순을 낳는다.

나는 이것이 하버마스 개인의 정치적 오류보다 더 중요한 철학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가 주장한 보편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하버마스 자신에게도 동일한 보편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가 독일의 역사적 경험을 이유로 이스라엘에 특별한 도덕적 배려를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배려는 이스라엘 국가의 행동에 대한 법적·도덕적 검증을 면제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보편주의의 가치는 특정한 국가를 보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인간의 범위를 국가와 민족의 경계 너머로 확장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버마스를 그의 철학 자체에 비추어 비판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일 것이다.

7. 종합 평가

정대훈의 글은 하버마스의 정치적 판단을 비판하면서도 학문적 권위보다 텍스트의 정확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여 준다.

특히 성지희 편집자에 대한 감사는 단순한 개인적 미담이 아니다. 학문이 유명한 학자들의 저술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검토하고, 수정하는 공동의 지적 노동을 통해 발전한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다만 정대훈의 글에서 '집단학살 의도를 선험적으로 배제했다'는 평가는 원문의 의미를 조금 넘어서며, 이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의도가 밝혀졌다는 주장도 인권기구의 조사 결과와 국제사법재판소의 최종 법적 판단을 구분하여 제시하면 더욱 정확할 것이다.

그러한 유보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판의 중심은 유효하다.

하버마스와 공동서명자들은 보편적 도덕 기준을 옹호하면서도,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대한 특정한 비판을 판단 기준에서 벗어난 것으로 규정했다. 그것은 증거의 검토를 강조해야 할 철학자들에게 특히 설명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글을 퀘이커의 평화주의적 관점에서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퀘이커의 전통에서 모든 인간에게 내적인 빛(Inward Light)이 있다는 믿음은 어느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갖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대인의 생명과 안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 팔레스타인인의 생명과 안전도 똑같이 중요하다.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을 비판하는 것과 이스라엘의 국가폭력을 비판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양자를 동일한 윤리적 기준으로 판단해야 평화주의와 보편주의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결국 정대훈의 글을 통해 제기되는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보편주의를 주장하는 지식인은 자신이 가장 강하게 연대감을 느끼는 집단의 행동에 대해서도 동일한 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버마스의 2023년 성명은 이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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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3/nov/22/the-principle-of-human-dignity-must-apply-to-all-people

The principle of human dignity must apply to all people

This article is more than 2 years old

Adam Tooze, Samuel Moyn, Amia Srinivasan and others respond to a statement issued by German academics on the situation in Israel and Gaza.

Report: Israel-Hamas war opens up German debate over meaning of ‘Never again’

We the undersigned are deeply concerned by the statement “Principles of solidarity” published on the website of the Normative Orders research centre at Goethe-Universität Frankfurt on 13 November 2023, signed by Nicole Deitelhoff, Rainer Forst, Klaus Günther and Jürgen Habermas.

We join the authors in condemning the killing and taking hostage of Israeli civilians by Hamas on 7 October 2023 and we fully agree with the vital need to protect Jewish life in Germany in the face of rising antisemitism. We also agree with the statement’s grounding of these positions in the respect for human dignity for all people as a central part of the “democratic ethos of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However, we are deeply troubled by the apparent limits of the solidarity expressed by the authors. The statement’s concern for human dignity is not adequately extended to Palestinian civilians in Gaza who are facing death and destruction. Nor is it applied or extended to Muslims in Germany experiencing rising Islamophobia. Solidarity means that the principle of human dignity must apply to all people. This requires us to recognise and address the suffering of all those affected by an armed conflict.

The statement claims that “the standards of judgement slip completely when genocidal intentions are attributed to Israel’s actions”. There is ongoing discussion among genocide scholars and legal experts about whether the legal standard for genocide has been met. Human rights groups have filed lawsuits alleging genocide at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and a federal court in the US. Omer Bartov, professor of Holocaust and genocide studies at Brown University, has recently reminded us: “We know from history that it is crucial to warn of the potential for genocide before it occurs, rather than belatedly condemn it after it has taken place. I think we still have that time.” Showing solidarity and respecting human dignity means that we must heed this warning and not close down the space for debate and reflection about the possibility of genocide. Not all signatories believe that the legal standards for genocide have been met; nevertheless, all agree that this is a matter of legitimate debate.

The statement mentions three “guiding principles” for military action: “principles of proportionality, the prevention of civilian casualties and the waging of a war with the prospect for future peace”. We are concerned that there is no mention of upholding international law, which also prohibits war crimes and crimes against humanity such as collective punishment, persecution, and the destruction of civilian infrastructure including schools, hospitals and places of worship. Being guided by principles of international legal standards, solidarity and human dignity compels us to hold all participants in the conflict to this higher standard.

We cannot allow the atrocities to force us to abandon these principles.

Adam Tooze Professor of history, Columbia University
Samuel Moyn Professor of law and history, Yale University
Amia Srinivasan Professor of social and political theory, University of Oxford
Nancy Fraser Professor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Alice Crary Professor of philosophy,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Linda Zerilli Charles E Merriam distinguished service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University of Chicago
Chandra Talpade Mohanty Distinguished professor, Syracuse University
Diedrich Diederichsen Professor for theory of contemporary art, Academy of Fine Arts, Vienna
Beate Roessler Professor of philosophy, University of Amsterdam
Quinn Slobodian Professor of history, Wellesley College
Cécile Malaspina Director of programme, Collège international de philosophi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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