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28, 2026

이스라엘의 정치경제 계급 구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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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정치경제 계급 구조는 단순한 경제적 부의 분배를 넘어, 민족적 기원, 종교적 강도, 그리고 국가 안보라는 특수한 상황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다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진님께서 요청하신 대로 이 복잡한 구조를 분석하고 관련 도서를 소개하는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치경제 계급 구조 분석

이스라엘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균열(Cleavages)>이다. 이스라엘은 경제적 자산의 소유 여부뿐만 아니라, 출신 배경과 종교적 성향이 정치권력 및 자원 배분과 직결되는 독특한 계급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1. 에스닉 계급 구조: 아슈케나짐과 미즈라힘

이스라엘 유대인 사회의 가장 뿌리 깊은 계급 분절은 유럽·미국계인 <아슈케나짐(Ashkenazim)>과 중동·북아프리카계인 <미즈라힘(Mizrahim)> 사이의 격차에서 발생한다.

1948년 건국 초기, 국가 기틀을 잡은 세력은 아슈케나짐이었다. 이들은 정치, 경제, 문화적 주도권을 장악하며 이른바 <건국 엘리트> 계급을 형성했다. 반면 건국 이후 대거 유입된 미즈라힘은 변두리 정착촌(Ma'abarot)에 배치되거나 저임금 노동력으로 흡수되며 사회경제적 하층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초기 구조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아슈케나짐은 주로 고학력 전문직과 하이테크 산업의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즈라힘은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 수준과 소득 지표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2. 하이테크 엘리트와 전통적 노동 계급의 이원화

경제적 측면에서 이스라엘은 <두 개의 국가>로 나뉜다. 한쪽에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하이테크(High-tech) 부문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생산성이 낮은 전통적 서비스 및 제조 부문이 존재한다.

하이테크 부문은 이스라엘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전체 소득세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경제적 특권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텔아비브 중심의 메트로폴리탄에 거주하며 글로벌 시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반면, 하이테크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나머지 90%의 노동자들은 높은 물가와 주거비 부담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이 경제적 격차는 정치적으로도 이어져, 하이테크 엘리트는 대체로 세속적·자유주의적 가치를 지지하는 반면, 하층 노동 계급은 보수적·민족주의적 정당(리쿠드 등)의 지지 기반이 된다.

3. 종교적 특권과 경제적 소외: 하레디 계층

<하레디(Haredim)>라 불리는 초정통파 유대인들은 정치경제 구조에서 매우 이례적인 위치를 점한다. 이들은 종교적 학습에 전념하며 병역 면제와 정부 보조금을 받는 특권을 누리지만,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 중 하나다.

하레디의 낮은 노동 참여율은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되지만, 비례대표제 중심의 이스라엘 정치 구조상 하레디 정당들이 연정 구성의 킹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이들의 기득권은 공고히 유지된다. 일반 세속적 중산층은 자신들이 내는 세금이 하레디의 보조금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있으며, 이는 이스라엘 내의 심각한 계급적 갈등 요소가 된다.

4. 구조적 배제: 아랍계 이스라엘인

이스라엘 인구의 약 21%를 차지하는 아랍계 시민들은 정치경제 구조의 최하단에 위치한다. 이들은 안보상의 이유로 주요 국가 기관이나 방위 산업체 취업에서 배제되며, 교육 및 기반 시설 투자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아랍계 계층의 빈곤율은 유대인 평균보다 현저히 높으며, 정치적으로도 주류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어 있다.


추천 도서 안내

이스라엘의 정치경제와 사회 구조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세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1. <이스라엘의 글로벌 정치경제: 자본과 권력의 역학>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of Israel)

  • 저자: 조나단 니찬(Jonathan Nitzan), 심숀 비클러(Shimshon Bichler)

  • 내용: 이스라엘 경제를 단순히 '국가 주도형'에서 '시장 주도형'으로 바뀐 것으로 보지 않고, 거대 자본 그룹과 국가 권력이 어떻게 결탁하여 부를 축적해 왔는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한 명저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갈등이 어떻게 특정 자본가 계급의 이익(Weapondollar-Petrodollar)과 연결되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2. <이스라엘 정치와 사회 옥스퍼드 핸드북> (The Oxford Handbook of Israeli Politics and Society)

  • 저자: 루벤 하잔(Reuven Y. Hazan) 외 다수

  • 내용: 이스라엘의 정치 체제, 사회적 균열, 경제 정책 등을 포괄적으로 다룬 백과사전적 도서다. 아슈케나짐과 미즈라힘의 갈등, 종교와 국가의 관계, 하이테크 산업의 부상 등 이스라엘의 복합적인 계급 구조를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3. <창업 국가 이면의 이스라엘: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 (The Other Israel: Voices of Refusal and Dissent)

  • 편집: 로아 프랭켈(Roane Carey), 조너단 샬란스키(Jonathan Shainin)

  • 내용: 흔히 알려진 '창업 국가(Start-up Nation)'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겨진 이스라엘의 어두운 단면을 다룬다. 점령 지역의 경제적 착취, 내부의 에스닉 차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복지 국가의 해체 등 주류 내러티브에서 소외된 목소리들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의 특정 계층(예: 하이테크 종사자나 하레디)의 생활 방식이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으신 부분이 있나요? 필요하시다면 관련 데이터를 시각화할 수 있는 자료를 더 찾아봐 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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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정치경제 계급 구조: 역사적 형성, 현재의 균열, 그리고 지배 블록의 재편

이스라엘의 정치경제 구조는 단순한 “자본가–노동자” 이분법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건국 이전의 사회주의적 시온주의, 국가주도 발전,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전환, 그리고 안보국가의 지속이라는 층위가 겹쳐져 있습니다. 또한 유대인 내부의 민족·출신 차이(아슈케나지/미즈라히), 초정통파(하레디),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시민, 점령지 경제와 정착민 네트워크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역사적 형성 → 신자유주의 전환 → 현재의 지배 블록과 주변부 → 안보·점령의 정치경제 → 최근 균열 순으로 정리합니다.


1. 건국기의 “노동 시온주의”와 국가주도 발전 (1940s–1970s)

초기 이스라엘은 노동 시온주의가 헤게모니를 쥔 체제였습니다. 핵심은 노동조합 총연맹(히스타드루트)과 집단농장(키부츠) 네트워크, 그리고 국가 주도 산업화였습니다. 국방과 이민자 흡수, 사회복지 확충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 지배 엘리트: 주로 유럽계(아슈케나지) 엘리트가 행정·군·대학·기업을 장악.

  • 노동자 대중: 히스타드루트에 포섭된 산업·공공부문 노동자.

  • 미즈라히 유대인: 중동·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은 하층 서비스·저숙련 부문에 집중.

  • 팔레스타인계 시민(아랍계 이스라엘인): 1948년 이후 시민권을 가졌지만 토지·자원 접근과 공공부문 진입에서 구조적 제약.

이 시기 국가는 “사회적 시민권”을 일정 부분 보장했으나, 인종·출신에 따른 위계가 공고했습니다.


2. 1985년 이후 신자유주의 전환과 금융·하이테크의 부상

1980년대 초 고물가·재정위기 이후 1985년 안정화 프로그램을 계기로 민영화, 규제완화, 금융화가 본격화됩니다. 1990년대 소련 붕괴 후 대규모 이민과 글로벌 자본 유입, 군사기술의 민수 이전이 겹치며 하이테크·방위산업이 핵심 축으로 성장했습니다.

  • 상층(상위 10% 내 고소득·자산가): 텔아비브 중심의 하이테크 창업자, 벤처투자자, 금융·부동산 자본.

  • 중간층: 교육·의료·공공부문 전문직, 하이테크 종사자 일부.

  • 하층·불안정 노동: 서비스·돌봄·이주노동, 팔레스타인계 시민과 미즈라히 일부, 초정통파 남성의 낮은 노동참여율.

지니계수는 OECD 상위권의 불평등을 보이며, 주택가격 급등과 교육·지역 격차가 계급 재생산을 강화했습니다.


3. 현재의 지배 블록: “안보–하이테크–정착”의 삼각 구조

오늘날의 지배 블록은 단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 축이 상호 보완적입니다.

  1. 안보·군산 네트워크

    • 군 엘리트 출신이 방위산업·사이버 보안·국영기업 요직으로 이동.

    • 군 복무(특히 정보·사이버 부대)가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이자 엘리트 선발 통로.

  2. 하이테크·금융 자본

    • 글로벌 자본과 연결된 스타트업·벤처 생태계.

    • 텔아비브·헤르츨리야에 집중, 교육·네트워크 자본이 핵심.

  3. 정착민·종교 민족주의 블록

    • 서안지구 정착촌 경제, 종교학교 네트워크, 국가 보조금.

    • 정치적으로는 우파·종교정당과 결합해 예산·토지·주택 정책에 영향.

이 삼각 구조는 서로 긴장도 있지만, 안보 담론과 국가정체성 정치가 교차점이 됩니다.


4. 내부 균열: 출신·종교·시민권의 층위

  • 아슈케나지 vs. 미즈라히: 역사적 격차는 완화되었으나 교육·소득·거주지에서 잔존.

  • 하레디(초정통파): 높은 출산율, 남성의 낮은 노동참여, 종교교육 중심. 국가 보조와 정치적 연정 협상력이 큼.

  •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시민: 인구 약 20% 내외. 교육·고용·토지 접근에서 구조적 불리. 하이테크 진입 확대 노력은 있으나 상층 진입은 제한적.

  • 이주노동자: 돌봄·건설·농업에서 취약.

계급은 단순 소득이 아니라, 군 복무·교육 네트워크·거주지·시민권 지위와 얽혀 재생산됩니다.


5. 점령의 정치경제: 비용과 이익의 분배

1967년 이후 점령지(특히 서안지구)는 안보·토지·정착 정책과 연결됩니다.

  • 정착촌 인프라·주택 보조는 특정 중간층·종교 민족주의층에 기회 제공.

  • 팔레스타인 노동의 통제·분절은 이중 노동시장 형성.

  • 국제정치 리스크는 하이테크의 글로벌 통합과 긴장.

점령은 이스라엘 내부 계급구조에 공간적·재정적 재분배 효과를 낳습니다.


6. 최근의 균열: 사법개혁 논쟁과 전쟁의 충격

최근 사법개혁 논쟁은 하이테크·도시 중산층과 종교 민족주의·정착 블록 사이의 긴장을 표면화했습니다. 전쟁과 안보 위기는 단기적으로 지배 블록의 결속을 강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이주·재정 부담을 통해 계급 균열을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책 소개

1. <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 외교정책) – John J. Mearsheimer, Stephen M. Walt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정치경제적 연결을 다룹니다. 이스라엘 내부 계급보다는 외부 권력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데 유용합니다.

2. <The Political Economy of Israel> – Jonathan Nitzan, Shimshon Bichler

권력자본론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금융·군산 복합체를 분석합니다. 불평등과 지배 블록 형성에 대한 구조적 통찰이 큽니다.

3. <The Making of Israel’s Militarism> (이스라엘 군국주의의 형성) – Uri Ben-Eliezer

군사주의가 국가·사회·계급 형성에 미친 영향을 사회학적으로 추적합니다.

4. <Start-Up Nation> (스타트업 네이션) – Dan Senor, Saul Singer

하이테크 성공담 중심이지만, 군 복무–네트워크–벤처 생태계의 연결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됩니다.

5. <The New Israel: Peacemaking and Liberalization> – Gershon Shafir, Yoav Peled

자유화와 시민권, 민족정체성의 재편을 분석하며 계급·시민권의 교차를 보여줍니다.

6. <The Israel Economy, 1985–1998> – Ben-Zion Zilberfarb

안정화 프로그램과 구조개혁의 경제사적 분석.


맺음말

이스라엘의 정치경제 계급 구조는

  • 역사적 사회주의 유산,

  • 신자유주의적 전환,

  • 안보·군산 네트워크,

  • 종교 민족주의와 정착 경제,

  • 시민권의 위계

가 중첩된 복합체입니다. 세진님께서 자주 탐구하시는 “안보국가와 시장의 결합”이라는 문제의식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군사기술–글로벌 자본–국내 정체성 정치가 교차하는 독특한 사례입니다.

원하시면 다음 단계로

  1. 상위 1% 자산 집중 구조의 구체적 데이터,

  2. 팔레스타인계 시민의 계급 이동 통계,

  3. 북한·이란·중국과의 비교 구조

중 하나를 선택해 더 깊이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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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February 25, 2026

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이란 2부] - YouTube

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이란 2부] - YouTube


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이란 2부]

압권 Apkwon
17,327 views  Jun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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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5. 6. 20.
▶ 출연 : 권순우, 임명묵
▶ 편집 : 한상우
▶ 협업제안 : apkwon105@gmail.com

00:00 이란 혁명의 배경과 혁명수비대의 탄생
00:43 이란 혁명의 사회적 배경과 주요 사건
02:41 이란 혁명의 전개와 권력 투쟁
08:02 이슬람 혁명과 종교 네트워크
08:49 1979년 이란 혁명과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10:48 이라크의 침공과 시아파 혁명
12:10 이라크와 이란의 갈등과 전쟁의 시작
13:39 이란의 내부 정리와 혁명수비대의 성장
17:40 전쟁의 결과와 이란의 근대화
20:34 이란 혁명과 지도자 교체
21:35 혁명의 피로와 국제적 영향
24:37 이란의 내부 갈등과 혁명 사상
28:30 이란의 개혁파와 하타미 대통령의 등장
32:56 9.11 테러와 이란-미국 관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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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의 배경과 혁명수비대의 탄생
모든 나라에서이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서 계속해서 혁명을 해야 된다라는게 일란 혁명 당시의 컨센서스였습니다. 사다세인의
억압받는 60%의 시야파들을 우리가 해방시켜야 된다라는 식으로 호메이니가 막 하는 느낌이 나니까 이라크가 치어
들어옵니다. 무려 8년간 양측 합쳐서 100만 명 정도가 죽었다고 평가받는데 근데이 과정에서 눈의
가시들을 제거를 하는 거죠. 공산주의자들 소련에 지금 나라 팔아먹겠다는 거 아니냐? 이라크도 쏘른 편이고 좌파들을 다 정리를 한
다음에 전쟁을 하니까 나를 중심으로 뭉철하면서 홈메인이 체제가 만들어지고이 과정에서 탄생하는게 혁명
수습이 됩니다. 총만 들고 있는 소년병들이 그냥 돌격해 가지고 인간 지뢰 제거 같은 것도 하거든요. 너희들은 이제부터 우리 체제
엘리트다. 보훈 개념으로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면서 이들이 이제 체제의 이제 반석이 되어집니다.
이란 혁명의 사회적 배경과 주요 사건
노동자층은 전통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이제 장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이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뭔가 이제
사회주적인 얘기를 해야 됐던 거죠. 반대로. 그니까 이슬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얘기를 막하기 시작하고
사회주의자들은 이슬람 얘기를 하는 상황이 7, 70년대의 상황이었고 그것을 가장 성공적으로 통합한 사람이
이제 알리샤리아티라는 사상가인데요. 뭐 이분 얘기만 해도 너무 길어지니까 그냥 이런 사람이 있었다 정도.
그래서 이제 이슬람과 사회주의를 통합한 알리샤리아티라는 사람 그리고 이슬람에 기반한 통치를 제한한
호메인이라는 사람이이란 혁명기에 투톱이네요. 투톱으로 이제 등장을 합니다. 뭐 수많은 사람들
있었지만. 어쨌든 샤 2대왕은 이런 일이 일어난 줄을 뭐 별로 생각을 안
하고 핵무기를 만들겠네. 페르시아 제국 건국 2500주년 행사를 하네. 그다음에 공장을 더 짓고 뭐 건물을
더 올리고 이런 식으로 막 이제 하고 있었죠. 근데 이제 경제적으로는 뭔가 이제 빈부격차는 계속 확대가 되고
그다음에 이제 테란의 부촌에 가면은 이제 미국인들이 이제 앉아 가지고 술 먹고 뭐 여성들이 막 자유롭게 이제
하는 것을 보면서 보수적인 이인들은 분노를 하게 되고 그런 와중에 이제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하는데 하나가 이제 콤이란 신학교에서 12가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호메이니를이란
정부 관영 매체에서 비난을 이제 하거든요. 이런 뭐 노인내가 종교에
미쳐 가지고 이런 식으로 이제 비난을 하니까 콤에 있는 신학생들이 우리 스승님을 어떻게 너희가 하면서 이제 시위를 하고이 과정에서 뭐 당연히
사람 뭐 다치고 죽고 이런 일이 있었고요. 그다음에 이제 아바단이라는 남서 쪽에 이제 석유가 굉장히 많이
나는 도시에 그 영화관에서 불이 나 가지고 그 400명이 타 죽습니다. 그 몇백 명이 400명 어쨌든 몇백
명이 타 죽는데 이때 이제 이거를 가지고 그 약간 음모론이 돌았어요. 음. 그니까 정부에서는 이게
공산주의자들이 부르다고 했지만은 반정부 세력 입장에서는 이거는 이제
공산주의 때로잡다가 내지는 뭐 어떤간에 그 페르시아 아 팔레비의 비밀 경찰 사와크라는 애들이 있는데
사와크가 불러질렀다라는 식으로 이제 그 얘의가 됩니다. 그이 두 사건을
이란 혁명의 전개와 권력 투쟁
기점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이제 벌어지는데 당연히 이제 사람들은 이거이 시위는 금방 진압이 될 거라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은 샤가 이제 워낙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고 어 근데 봐도 나름 잘했고 테랑가 보면은
정말 현대적인 도시에 어 여성들 막 자유롭게 하고 다니고 교육도 많이 받았고 사람들 뭐 잘 살고 이러던데
했는데 그 밑에 있는 어떤 그 분노의 규모를 몰랐던 거죠. 예. 혁명이 이제 일어납니다. 정확히 처음에
시작했는데 이제 40일 주기로 걷잡을 수 없이 약간 지수적으로 기하급수로
증가를 합니다. 이맨이 40일이 재밌는 숫자인게 이게 장례식 그거예요. 한국도 49제잖아요.
이란도 이제 40일 주기로 이제 장례 문화가 있는데 예예. 그러니까 한번 시위가 일어나서 누가 죽어요? 발포를
해서 본에 맞아서. 예. 그럼 40일 있다가 그 장례식하로 사람들이 더 모이는 거예요. 근데 아까 말했지만
시아파 사상은 그 순교라는게 진짜 중요하거든요. 그니까 이한님들이나 그 정부에서 말하는 거 보면은 뭐만 하면
순교했다, 순교했다, 순교했다 하는게 시아파에서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죽어 나간 그 이맘 후세인의 그 카르발라 참극이라는게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거를 계속해서 소환이 되는
거죠. 음. 음. 그래 갖고 40일이 되면은 순교자에 대한 추모가 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여기에 또 이렇게 강제적으로 진압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또
40일이 지나면은 또 순교자를 위한 수모이 커지고 막 이런 거라는 거죠. 예. 그 과정에서 이제 정권이 그냥
뒤집힌 거죠. 너무 많은 시비대를 감당하지 못해서. 그래서 왕이 그냥 탈출을 합니다. 뭐 이집트로
탈출했다가 뭐 멕시코였나 뭐 어쨌든 막 그쪽으로 가는데 그 이제 정권이 뒤엎혔으니까 이제 임시 정부가
들어서죠. 근데 아까 전에 아까 누구죠? 보사데크 그리고 이제 호메인이요 두 사람이 있는데 지금
말씀들어 보면은 일종의 그 민중봉기 같은 거잖아요. 뭔가이 호메이니가 뭐 이거를이 뭐 해서 우리 왕을 뒤집자
뭐 아니면은 모사데크가 야 왕을 뒤집자 뭐 이래서 만든 건 아닌 거잖아요. 모사데크는 왕을 뒤집자가
아니라 이제 이판 군주정에서 총리인 내가 좀 권력을 가져야 되고 총리인 나를 중심으로이라는 석유를
구교하자라는 근데 어쨌든 그 민중들을 본기케 해서 그니까 형 그 봉기를
이끌고 내가 나를 따르라 해가지고 왕을 뒤집은 건 아닌 거죠. 맞습니다. 예. 그러니까 러시아
혁명도 똑같은게 그 러시아 혁명에서도 그 차르죠. 예. 차라 뒤집힐 때 아무도 그 뒤집힐 거라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냥 거리에서 누군가 시위를 했는데 갑자기 그게 진압이 되고 갑자기 그게 사람들이 이미 이제
약간 건초처럼 쌓여 있었던 장작처럼 쌓여 있었던 불만에 불씨가 당겨진 거고 홈메인이나 뭐 다른 어떤 이런
혁명의 주역들도 어 이거 뭐야 하면서 빨리이 사태에 대응을 해야 된다라고 하면서 이제 들어가기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혁명을 주도했다라기보다 혁명은 일어났고 그 혁명을 누가
주도할 거냐 그죠. 도한 사람들이 먹은게 아니라 일어난 혁명의 주권을 누가 극복할 것이냐로 정말 혈투가
이제 벌어지게 되는 거죠. 거리에 이제 그 아까 말한 수많은 그 학생 단체들이 있어요. 그 그다음에 비밀
지하 단체들 예예. 한국도 예자 뭐 그랬듯이 그 단체들끼리 정말 패싸움하고 막 총으로 싸고 막 이러
약간 탈레반이 약간 그런 느낌 아니에요. 공부하고 탈레반은 이제 근데 도시가 아니라 농촌의 기반을
뒀다는 점에서 좀 다르고이 사람들은 다 교육을 엄청 잘 받은 사람들이 주도를 하죠. 옛날에 386 블랙서클
지하 서클 같은 느낌. 예. 그렇죠. 예. 그렇죠. 그런 상황에서 이제이 혁명의 조속권을 누가 가지냐로 가지고
싸움을 했을 때 이제 아까 말했지만은 샤가 이제 왕이 이렇게 있으면은 공산주의자가 있고 이슬람주의자가
있는데이 둘이 이제 서로 이제 일단은 약간 동맹을 맺은 느낌이었잖아요. 이쪽에선. 공산주의자들은 이슬람
말하고 이슬람주의자들은 공산주의 말하는 거 같고 이제 그렇게 동맹을하면서 샤를 뒤집었으니까 이제 누가 이거를 주도할 것이냐 이제
경쟁이 되게 되는데 이때 소련이 지시를 내립니다. 일단 미국은이 사태를 파악을 못 하고 있었고 뭐지
이거 하면서 있었고 소련은 이때 이제 종교에 대한 약간 생각을 바꿉니다.
자기가 보니까이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종교를 무시하면 안 될 것 같다. 음 종교가 그리고 좀 진보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면 있는 거 같아. 이용자면 이란공산당이라고 하는 투대당인데요.이
당을 비롯한 소련이 통지하는 사회주한테 일단은 호메인이 편에 붙어라라고 지시를 내니다. 아 그리고
여기서 굉장히 큰 오판을 한게 성직자들이 어떻게 제철소와 탱크를
갖고 있는 나라를 통치를 하겠어. 음. 음들도 통치를 하려면은 일단 샤를 왕정이 만들어낸 엘리트들은 쓸
수가 없으니까 통치를 하려면 그래도 공장 굴려본 노동자들과 공산당원들이 필요할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을 해서이
사회주의자들한테 이제 호메인이한테 이제 붙으라고 지령을 내렸고 그걸 충실히 따릅니다. 그러면서 이제
호메인이를 중심으로 하는 권력 작업들이 시작이 되고 있었죠. 왜냐면 조직이 근데 있어야 되잖아요. 모든 어떤 정치운동은 모스크가 이제 정치
조직이 돼줍니다.이란 같은 경우에는 이제 시합하니까 성직자들이 하나하나가 이제 교육을 많이 받고 번위가 있는
편인데이 위계가 이제 있거든요. 그니까 어떤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누구 밑에서 배웠고 얼마나 여기서
높은 명성을 쌓았냐 이게 중요하고 그래서 만들어진 말이 이제 아야라 신의 뭐 눈 신의 증거 뭐 이런
뜻인데 그니까 이제 시아파에서 굉장히 학식이 높은 사람이 이제 아톨라고 그 아톨라 중에서도 더 이제 높은 사람을
이제 마르자의 딱끌리더라고 하는데 이제 모방의 원천이란 뜻입니다. 약간 약간 큰 스님들 보면서 저 스님만
따라하면 그니까 주교 축기경 약간 요런 느낌도 나네요. 예. 예. 그 명식적인 관 조직이 있는 거
아니지만은 뭐 그런 위계가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이 어떤 학교에서 배워서 누구 밑에서 배워서 내가 이제 어느
이슬람 혁명과 종교 네트워크
사원에서 가르치느냐 이게 다 이제 중요한 네트워크고요.이 전국에 깔려
있는 모스크들을 통해서 도시의 이제 빈촌부터 농촌 마을까지 이제 이슬람
주의자들이 이제 자기 설교를 막 퍼트리는 거죠. 이슬람 공화국을 만들어야 됩니다. 이슬람 혁명을 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혁명은 낫고 그러면이 혁명이 났으면은 샤의 그 체계 다음 체계가 무엇일까에
대한 주도권 자툼에서 종교 쪽으로 모였고 거기에 대한 전국적으로 이제
그러면은 그 내가이 나라를 어떻게 하겠습니다라는 그런 조직은 그 종교의
그 체계 그 행정 체계라 그래야 되나 어떤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렇게 쭉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는 거군요. 네.
1979년 이란 혁명과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어 그런 와중에 자유주의자도 있습니다.이 세력 구도에서. 그니까 왕을 지지하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이
있는 거죠. 당연히. 그니까 왕정이라게 독재정이고 비밀 경찰 운영하고 막 감옥 정치범 소용소
만드니까 당연히 이제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던 또 미국에서 공부한 그런 사람들이 이제 있었고 이제 메어디
마자르간이라는 그 임시정부 총리였나 뭐 맡으신 분이 이제 있었는데 어
그나 이제 사회주의 이슬람주의 자유주의 뭐 이런 식으로 세력이 있었다가 사건이 터지죠. 1979년
그 혁명 한창 와중에 미국 대사관에 이제 그 앞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이제 담을 넘어 가지고 대사관에
들어갑니다. 음. 인질극을 버리죠. 그다음에 무려 444일간. 오 400일간 인질극 1년 넘게 한
거네요. 예. 그러니까 요구 사항은 미국이 이제 미국에 갖고 간 왕과의 금미라든가 재산 같은 거 다 반환하고
왕도 넘겨라. 우리가 이제 재판해야 된다. 이런 요구 사항이 이제 있었고 미국 입장에서 이걸 받아 줄 수가
없죠. 어쨌든 자기 동맹인데 이란이 자기 동맹이었는데 이제 그러면서 이제이 대사관 문제로
들러싸고 미국 대사관에서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을 가지고 이제 대치가 이제 크게 벌어지는데 저 여기 이제
테란 갔을 때 제 숙소 앞이 바로 여겨 가지고 제 바로 갔는데 그 이제 제가 이제 한국에서 왔습니다. 뭐
역사 공부해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하니까 저한테 딱 묻더라고요. 혹시 영화 아르고 봤냐? 아 아르고 아르고
영화가 이제 밴 애플렉이 아마 주연을 맡았을 텐데이 사건을 다룬 이제 미국의 구출 작전을 다룬 영화죠.음
음. 그러면서 이제 봤습니다라고 하니까 우린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어라고 하면서 자기들 입장을 막
이제 보여주는 아 그 아르고는 아무래도 미국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니까 예. 어 어쨌든 이제 그
444일간에 이제 인질극 과정에서 미국과 대치가 벌어졌을 때 호메인이라는 사람이 이미 이제이
사람이 혁명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한 명씩 한 명씩 자기에 동의하지 않은 세력들을 쳐내기
시작하는데 어 지금 미국하고 지금 우리가 지금 대치를 하고 있고 미국이 지금 모사데크를 날렸듯이 우리 혁명을
또 이렇게 위협하고 있는데 자유주의자들은 뭐지 하면서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탄압과 숙청이
이라크의 침공과 시아파 혁명
시작이 됩니다. 근데 이제이 상황에서 한 번 더 나가죠. 이게 그 사유주의자들만 해도 그렇게까지 세력 기반이 많지 않았는데 공산주의자들은
또 다른 문제였죠. 노동자들의 이제 편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죠. 거기는 소련도 뒤에 붙어 있고 예. 네.
근데 그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혁명을 막 하면서 어떻게 나라를 만들어야 될까 막 국민 투표를 해야 되나 이러고 있는데 갑자기 이라크가
치들어옵니다. 아 전쟁이 났다고요? 어 왜 왜 쳐 들어왔어요? 이라크는 갑자기 뭐 몇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이
가장 뭐 이제 일반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하나는 이제 이라크 내부에 있는 시아파들 중요했다는 거죠. 그
이라크라는 나라가 이제 인구의 10%의 소수민정이 쿠르드가 있고 그 90%의 아랍인들은 30%의 순리파와
60%의 시아파로 나뉘는데 있는데 사다무세인는 순위파의 대표였단 말이죠.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었고
세속적이자였는데 그냥 동네 친구들을 모으다 보니까 나라 엘리터를 다 순입하러 채운 건데 시아파들이 굉장히
소수 그 뭐랄까 소해감을 느끼고 있었고 근데 이제 아까 말했지만은 이런 혁명이라는 거는 그 시아파
혁명이고 그 기본적으로 이제 그 사회주의 물을 좀 먹었기 때문에 냉전 시대에 있었던 그 사상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네.이 이 혁명은 한 나라에서 끝나면 안 되는 거고 모든 나라에서 혁명이 있어야 되는 거고
이란노로 이제 모스타자핀이라고 하는데 피역합자 고통받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이 모든 고통받은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서 계속해서 혁명을 해야 된다라는게 그 이런 혁명 당시의 컨센서스였습니다. 어주의
혁명 같은 느낌이네요. 그 그걸 배 거기서 배웠죠.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 이라크 바로
이라크와 이란의 갈등과 전쟁의 시작
이란에 붙어 있는 나라의 저 바트당 정권 사다세인의 억압받는 60%의
시아파들을 우리가 해방시켜야 된다라는 식으로 호메이니가 막 얘기를 하는 느낌이 나니까 사다무생 입장에서는
우리는 잘 살고 있었는데 네. 네가 왜 우리 애들 선동해 가지고 불란을 일으켜라고 해서 이란을 공격했다.
하나가 더 있는 게 그 이제 쿠웨이트가 있고 이라크가 있고 이란이 있는데 여기가 하나같이 다 석유와
가스가 엄청나게 묻혀 있는데 여기에 이제 그 메소포타미아죠. 이가 그니까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가 하구에 강
따라서 사실 수로가 많이 바뀌기 때문에이 국경 문제가 엄청 분쟁이 많았고요. 아 혁명 직전에 이제 그
샤 팔레비랑 그 후세이랑 국경 거의 조약을 약간 협의를 합니다. 예.
근데 딱 보니까 이란이란 나라가 지금 혁명이 나와서 휘청거리고 있고 저 나라가 그래도 그니까 이라크는 쏘렌
편이었는데 저 나라가 이제 미국산 무기, 미국에서 훈련받은 장교, 미국의
지원 같은 거로 엄청나게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어서 좀 무서운 나라였는데 보니까 혁명한다고 장교들은
다 감옥에 가두고 군대도 뭔가 좀 약간 상태가 안 좋은 거 같고 음 이거는 해 볼 만 하겠는데 그러면은
우리가이 섬들 그다음에 국경 지대 다 먹은 다음에 여기는 유전을 우리가 다 먹을 수 있지 않나? 음. 명분과
실리가 다 있는 상황이었죠. 그렇죠. 그러면서 전격적으로 공격을 취하게 되고요. 사다분세인이 무려 8년간
양측 합쳐서 100만 명 정도가 죽었다고 평가받는 아 이게 이란이라크 전쟁이죠. 어 그니까 혁명하고 되게
이란의 내부 정리와 혁명수비대의 성장
맞붙어 있네요. 그렇죠. 예. 이제 그런 상황에서 이라크군이 엄청난 기세로 이제 공세를 시작을 하는데
아까 말했지만 실제로 이란이 취약했습니다. 왜냐면은 혁명의 나라의 혼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이제
쳐들어오니까요. 그다음에 이라크이 상당한 강군입니다. 그러니까 오일쇼크로이 나라도 이제 이득을 받기
때문에 소련제 무기들을 굉장히 많이 사고 있었고 어 그런 상황에서 이제
몰려 들어오니까 이런 입장에서 굉장히 당황을 했고 네 호메이니가 여기서 이제 측명을 내리죠. 그 일단은
감옥에가 있던 자기가 잡아가둔 장들을 풀어 줍니다. 야, 너희들이 비록 저
왕에게 이제 부역하면서 우리 민중을 짓밟지만은 그래도 우리 조국인을 지켜야지 그렇지
하면서 뭐 외세가 쳐들어오면은 뭐 내부 세력들은 단합을 해야죠. 그죠? 그러면서 이제 일치단결 그 순간을
만들어 냈는데이 과정에서 눈의 가시들을 제거를 하는 거죠. 공산주의자들을 소련에 지금 나라
팔아먹겠다는 거 아니냐? 이라크도 소련 편이고 그러네. 예. 뭔가 이제 분위기가 좋게 그렇게 흘러가면서
당시에 이제 원래 혁명할 때는 같은 편이었던 수많은 사회주의 단체들이 있거든요.이란 투대당이라는 공산당도
있고 뭐 모자헤딘의 할 인민 모자딘이라는 이름도 무시무시하죠.
이 다 이제 거의 뭐 감옥에 가거나 교수하거나 총하거나 이런 식으로 좌파들을 다정 한 다음에 전쟁을
하니까 나를 중심으로 뭉쳐하면서 홈메인이 체제가 만들어지고이 과정에서 탄생하는게 혁명숲이 됩니다. 아
그러니까 어쨌든 이제 군대는 그 풀어져 가지고 장교들을 이제 이라크군과 싸우게 했잖아요. 근데
혁명이 싫다고이 장교들이 총뿌리를 돌려버리면은 아 그래서 군인하고 혁명 수비대가 따로 있는 거군요. 못 믿는
거죠. 혁명에 대해서 충성을 할지 그러니까 그 샤를 중심으로 했었던 군조직이 있었던 거고이 사람을
잡아넣는데 전쟁이 나니까 얘를 다시 풀어서 전쟁을 하게 했고 근데 얘네한테 무기를 지어 주니까 다시
총뿌리를 돌려올 거에 대비해서이 군대를 견제하기 위한 또 다른
군인으로서의 혁명 수비대가 나오는 어 뭐 혁명 수비대의 탄생 에피소드도
되게 재밌는데 그 당시에 이제 테란에 이제 그 여러 정치 졸지이 있다 했잖아요. 당연히 호메인이를 지지하는
그 정치 세력들도 개파가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걔들끼리도 막 세력 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누가 이제
호메니의 말을 제일 잘 듣냐? 누가 해계먼을 가질 것이냐? 근데 그렇기 때문에 얘들이 단압이 안 됐는데 이걸
단합의 필요성이 느껴지니까 어떤 한 정치 조직의 이제 수장이 이제 다른
조직들을 다 초청을 해가지고 회의를 열었어요. 그다음에 이제 문을 딱 닫은 다음에 총 딱 꺼내들고 오늘부로
통합 안 하면 다 죽는 거로 하자 해가지고 이제 이때 이제 혁명 소비대의 원형이 탄생을 하는데요.
어, 근데 이제이 과정에서 그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모두 모여라고 이제
했을 때 젊은 남자들 그니까 이란이 이제 어쨌든 전통 국가는 이제 인구 구조가 피라미드 형이니까 예. 그
젊은 그 남성들이 대부분 어떤 사람들이냐면 아까 말했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에요. 음.
음 마을 농촌 도시민 이런 사람들이 이제 그 남자애들이 이제 딱히 뭐
이제 그 삶이란게 팍팍한 상태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난 가야 되나라고 하면서 자원 입대를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수가 혁명 수비대로 들어갑니다. 야심가들이 들어가죠. 이념형보다는 이번 전쟁에서
활약을 하면은 나라를 지키면서 나도 이제 뭔가이 나라를 위해서 출세할 수
있다. 내지는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좀 공적인 마인드가 있다면은 이제 그런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이라크 전선을 향해서 돌격을 하고요. 이때 이제 근데 이라크이 더 강난 장비와 무력과 막
화학탄도 쓰는데 이때를 거의이 총만 들고 있는이 소년병들이 그냥 돌격해
가지고 인간 지뢰 제거 같은 것도 하거든요. 어 지레밭을 그냥 돌격으로
몸으로 돌파해라. 화학탄이 막 쏟아지는데 화학 장비도 없이 막 뒤집어 쓰고 이런 식으로 전쟁을 해
가지고 이란과 이라크 이란에 이라크에게 뺏겼던 땅들을 거의 다 되찾아요. 그니까 이라크가 이제
상황이 보니까 사다모세인이 어 이대로 가면은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라고 하면서 휴전 제의를 하는데 이런
호메이니가 그런 거 없다. 끝까지 가자라는 식으로 이제 전쟁을 계속하면서 8년간 전쟁을 하게 되는
거죠. 예. 예. 그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냐면은 어 전면적인 근대화가 일어납니다.
전쟁의 결과와 이란의 근대화
왜냐면은 그 아까 말했지만은 그 레자샤와 모아마드 레자샤를 거치면서 근대화를 위한 기반은 만들어진
거예요. 관료도 생겼고 전문가 엔지니어도 생겼고 유학파도 생겼고 과학 기술도 있고 대학도 있고 있는
건 있어. 근데 이들이 좀 약간 그 기득권층 중심으로 근대화를 진행했기 때문에 그 농촌이라든가 도시 비밀을
소외를 시켰기 때문에 그 간극으로 이제 불만이 터진 건데 근데 이번 혁명은 그 농촌민과 도시 비밀이
정권을 잡은 거잖아요. 어쨌든 그리고 모스크를 통해서 전국 네트워크도 있고 그래서 이제 판례 만들어 둔이 근대화의 기반들 엔지니어들 대학
학자들 관료 공무원들을 싹다 이제 국가 근대화를 위해 총동원을 시켜라 해가지고 음 약간 한국 세마을
운동하듯이 근데 전쟁이 났으니까 어쨌든 내부에서의 그런 불란들이나 이런 거는 어느 정도 좀 정리가 됐을
거고 도시민이나 그 농촌에 있는 어떻게 군이 됐든 뭐가 됐든 어딘가에서 뭔가 역할을 하게 됐고
자기들이 권력을 또 잡은 상황이니까이 체계 안에서의 불란이 사라지면서 체계
자체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아이런이네요. 그 예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슬람 공화국 정부에서
여성들이 훨씬 더 글을 많이 읽게 됐고요. 어 어 유아 사망률 확 줄어들고 문회율 뭐 보건 관련한
지표가 전면적으로 개선이 됩니다. 그럼 어쨌든 이슬람 혁명은 성공한 혁명이 됐네요. 그렇게 된 거죠.
그러니까 혁명과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지만은 혁명 그니까이란 이라크 전쟁이 88년에
끝난 시점에서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진맥 맥진했죠. 전쟁 당연히 힘들고 가난해지고 일란이 그동안 싸운 부도
막 날아가고 이랬지만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뭔가 이거 혁명인데 삶을 바꾼 거예요. 음. 나는 원래 학교
교육도 못 받았는데 내가 교육도 받게 되고 출세도 하고 이렇게 되는 거죠. 이제 그런 과정에서 이제 특히 어떤
사람들이 수혜를 받냐면은이란 이라크 전쟁에서 몸을 바쳐 싸웠던 사람들이 수혜를 받는 거야. 체제 입장에서
당연히 이들이 충성심을 입증했으니까 보상을 해 줘야 되죠. 그렇죠. 군인들에게 보상을 해야죠. 이면은 그
어떤 마을에서 100명 정도가 지원을 해요. 뭐 모함마드니 레자니 뭐 핫산이니 이런 애들이 100명 정도
이제 이라크 전쟁에 뛰어주겠다고 중대를 결성해 가지고이 사람들 혁명 수비자 하나로 소년병으로 나가서
이라크고 미사일 하나 맞아서 50명 죽고 화학탄 맞아서 한 30명 죽고 지레바 돌격하다가 다섯 명 또 죽고 남은 막 15명이 사람들은 엄청난
엘리트들이 되는 거예요. 음 최대 입장에서는 너희들은 폭탄의 저 지밭을 뚫고 성공 승리에서 돌아왔으니까
너희들은 이제부터 우리 최제 엘리트다.음 음.이 죽은 사람들 있죠. 100명 중에
죽었으면이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 엄청난 보상이 순국 선열의 이제 그 약간 보훈 개념으로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면서 이들이 이제 체제의 이제 반석이 되어집니다. 어 그리고이 사람들 수가 만만치 엄청 아까
말했지만은 이게 총력전이기 때문에 그 지금이란 이스라엘 싸우는 건 비교도 아닐 정도로 무시무시한 수준으로 싸운
전쟁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수가이 전쟁을 통해서 이슬람적 근대와의 세례를게 되는 거고 당연히이 사람들
입장에서 혁명이 너무 고마운 거죠. 근데 이제 시대가 이제 바뀌게 되는 거죠. 역설적으로 89년이 됐을 때
이란 혁명과 지도자 교체
이제 소련이 망하죠. 그리고 호메인이가 죽습니다. 음.이 과정에서 이제 호메이니가 어 마지막으로
정적들을 다 죽이고 가거든요. 아 그래요? 최후의 정적들을 다 죽이고 가는데 이제 내 제자인 하메이를 시켜
가지고 한국 나이로 51세이 젊은 지도자였는데 전문가 회의라고 하는 그니까 이란의 이제 체제가 민선
대통령이 있고 국민 투표를 통해 당선되는 대통령이 있고 그다음에 최고 지도자 맨날 요즘에 문제가 되는 그
지위에 라흐르라고 하는데요.이 라흐르는 뭐 여러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선정이 된 전문가 회의라고
하는 이슬람 신학과 법학의 권의자들이 이제 간선제로 선출을 합니다. 그니까이 과정에서 이제 근데
간선제라는게 별 의미가 없는 거 아니에요. 2분 된 다음에 지금 계속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정신이기
때문에 다음에 어떻게 될지 우리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게 뭐 간선인지 아닌지 뭐 한 번 했는데 뭐 어떻게 하겠어? 어쨌든 이제 그
상황에서 호메이니 다음에 하메네이라는 분이 최고 지도자가 되고 그다음에 이제 대통령은 랍프산잔이라고 하는
사람이 됐는데요. 예. 그러니까 이제 89년이 됐을 때 사람들이 혁명에 또 지쳤어요. 그러니까 혁명을 통해서
혁명의 피로와 국제적 영향
당연히 아까 말했지만 수회받은 사람이 생기고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생기고 발 사회 개층 이동이 엄청나게 일어나
가지고 중산층이 된 사람도 생겼지만은 네 혁명 시대 끝난 거죠. 소련이 망했으니까. 근데 사실 혁명이라는게
계속 혁명을 할 수 없는 거잖아요. 혁명은 되고 나면은 그다음에 뭔가 새로운 레짐이 만들어지는 거지.
그리고이 레짐이 마음에 안 들면 체계가 마음에 안 들면 또 혁명을 하는 거지. 그게 혁명만 계속하는 건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한나라에서만 혁명이 있으면 상관없는데 네. 뭐 한국의 8, 7년 혁명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만 민주하면 끝나는 거죠. 말씀하신 대로. 근데이 소련이라든가 이란이라든가 이런 나라는 이게 한
나라 단위에 끝나는 혁명이 아니에요. 그럼 뭐예요? 그니까 소련 같은 경우에는 전 세계가 공산주의가 되는데잖아요. 아, 자기는 공산주의
국가라도 옆에 국가를 혁명을 일으키게 해서 공산주의와 해야 되는 거고 이게 계속 반복되는 거라고요. 그죠? 이게
인류의 사명인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는. 어 그러면 이슬람 혁명도 소 이란에서 그 정치 지도자
그니까 종교 지도자가 최후 지도자가 된 걸로 끝난게 아니라 옆에 있는 나라를 또 이슬람 혁명을 시키고
이슬람 혁명을 그니까 뭐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지구는 둥구니까 자꾸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이 다 이슬람 혁명이 돼야 이슬람 혁명이 끝나는 거라고요. 그렇죠. 그러니까 근데 뭐 그 그 뭐
전 세계가 물론 이제 이슬람 혁명할 필요는 없는데 근데 이슬람은 상징적인 어떤 건 중요한 거죠. 그니까
제국주의를 용납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슬람이라는 그 문명이 찬란했던 문명이 근대에 저격을 못
했다는 이유로 저 제국주의 짓밟히고 어 우리 이제 서양화가 돼 가지고
사람들이 이슬람도 잊고 살고 막 독재자들이 이렇게 아니면 사우디의 이제 왕가 같은 그런 사람들 이런
불리한 사람들 아까 말 그니까 미국에 지원 받아 가지고 자기네 권력만 유지하고 종교는이 잃어버리고 뭐 이런
걸 얘기하는 거 그니까 아까 이제 이슬람 그 시아파 혁명사상이란 혁명사상이라는 것이 그게 중요하됐잖아요. 압재자와 피역합자이
구도 그다음에 정의를 위한 순교 뭐 이런게 중요한데이 사우디 왕 너무 불리한 애들인 거고 음 사담 후세
얘는 진짜 용납이 안 되는 놈인 거고 그다음에 이제 이스라엘도 이제 있던 거죠 그중에 음 팔레스타인이라는
이슬람의 예루살렘이라는 이슬람의 성질을이 제국주의자들이 갑자기 들어와 가지고 유대인 국가를 세우고 미국의
비호를 받는다. 이건 용납이 안 된다는 거고 코메이니가 그래서 미국은 큰 사탄, 이스라엘은 작은 사탄이라는
말을 합니다. 음. 그니까 이게 무슨 중국이나 뭐 러시아까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이라는 나라, 이슬람
세계를 가장 이제 뭔가 억압하는 거 같은이 나라는이 없어져야 된다라고 그니까 정확히 없어지는게 아니라
이슬람 세계에서 나가라는 그거를 추구를 했던 거고. 근데 심지어 동족인 팔레스타인 이슬람 사람들을
억압도해. 억압도해. 불리해. 심지어 미국이랑 친해. 그렇죠. 이스라엘은
그거는 이제 용납이 안 된다는 거였죠. 음. 어 사실은 소련도 싫어. 그 같은 이유로 소련도 싫어했는데 소련도 이제 이슬람을
억압하고 있었으니까 소련 알아서 망했고 어 이제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이란
내부에서는 이제 그게 두 가지가 있는 거죠. 국내 계속해서 혁명을 해야 된다. 뭔
이란의 내부 갈등과 혁명 사상
혁명을 계속해요? 그러니까 이슬람의 율법과 도덕을 모든 사람들이 철저하게
따르도록 그 혁명을 해야 된다는게 있었고요. 이렇테면 뭐 체스 같은 것도 금지시키거든요. 아, 근데 거기는 혁명이란 단어를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 좀 다르게 쓰는 거 같아요. 그니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수적인 룰에 따라야 된다라고 한다
그러면은 그거는 혁명이 아니라 그냥 뭐 개몽이라든지 아니면 좀 더 법치 그니까 거기는 법이 또 종교니까 뭐
그런 건데 혁명이라는 단어를 그냥 다 그런데 같다 쓰네요. 어떻게 보면 약간 북한하고 좀 비슷한
면이 있는 거죠. 뭐마 하면 혁명적으로 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아, 공산주의 영향을 아, 그런
의미의 혁명 사회주의 영향을 좀 받 혁명적으로 종교의 윤리를 지켜야 된다. 예, 진짜. 아, 그거 진짜
너무 정확한 말씀이에요. 아, 진짜요? 그런식이 이제 이런 혁명의 사상인 거죠. 어, 우리 혁명에 대한
태직 이름도 혁명 수비되잖아요. 그러네. 예. 어쨌든 이제 그래서 막
국내적으로 막 음악도 약간 막 금지하려고 하고 뭐 체스도 못 하게 하려고 하고 여성들이면은 막 교육
같은 것 하는데 이제 가정법 같은 거는 엄청 다시 옛날로 막 돌아가게 하려고 하고 당연히 근데 사람들이
반발을 하죠. 왜냐면 이런 아까 말했지만 이슬람 혁명이라는게 호메이니를 따르는 사람만 산게 아니라
일단 뒤집어 놓고 패권을 호메이가 차지한 형태기 때문에 그네요. 이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갑자기 이게
왜 날벼락이냐 이거죠. 아니 내가 샤를 무너뜨렸지만은 이런 걸 원하는 거 아니었어. 그 그래서 이제
혁명과정에서는 엄청 중요한 사건이 뭐냐면은 희부터도 나는 희절대로 못 쓴다라고 하는 그 그 무조건 자유의
영역이야 된다는 희압을 벗는 여성들과 차도로를 뒤집어 쓰고 모든 여성들은 희압을 써야 된다라는 여성들이
거리에서 막 난투까지 아니고 대치를 하는 막 그런 식의 상황들이 막 벌어지니까이 정권 입장에서는 혁명을
계속돼야 된다. 아직도 저렇게 미국물 먹어 가지고 뭔가 도덕적으로 살지 못하는 애들이 있으니까 이거는 우리가
혁명적으로 억압을 해야 된다라는 시골에서 도덕 경찰 같은 것도 만들고 그런 거고 바깥에서는 이제 근데 그
혁명이라는 그니까 혁명이라는 단어가 자꾸 이제 제가 좀 헷갈리었던 부분이 저것도 혁명이네. 그러니까 혁명이라고
하면 우리는 뭔가 이게 있는 체제 그 현재 기득권에 대한 권력이 부분의 체제를 바꾸는 거를 우리는 혁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위를 바꾸는 거지. 근데 여기는 그냥 삶을 바꾸는 거 자체를 혁명이라고 하는 거네요.
그죠. 인간 존재 전체를 이제 혁명적인 주체로 만드는 거죠. 어. 그러다 보니까 저는 오히려 이슬람
혁명이라는게 자꾸 이게 헷갈렸던 부분들이이 부분이었던 거 같아요. 그 혁명을 일반인들의 어떤 사고 방식,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도 혁명이란 단어를 쓰는 거예요. 음. 그래서 이제 세계 전체에 대한 그 정확히
이제 중동 이슬람 이스라엘에 대한 혁명 그다음에 국내의 사회문화에 대한 혁명까지 해가지고 혁명을 계속 해야
된다라는 파벌이 있었고 코메인이 사후에 그다음에 이제 이미 10년이 넘게 지났으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고 그리고 계속 이제 말하는 소련 망한 이후에 혁명이라 거 없다. 미국의 시대가 열렸다. 우리도
적응해야 된다라고 하는 파벌로 나니다. 그리고 하메네이란 사람은이 사람은 굉장히 신중한 사람이고 약간
중제자 느낌이 강하거든요. 아 그 종교의 레디컬한 보수주의자가 아니에요. 그니까 당연히 이제이
사람은 그 혁명파죠. 그러나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그 나라를 통치하게 됐으니까. 그리고 이슬람 공화국이
어쨌든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가 있는 나라기 때문에 두 가지를 신경을 써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미니 어느
정도는이 사회의 불안, 불만 이런 것들을 우리가 챙겨야 돼. 안 그러면 우리가 또 반 혁명을 맞이할 수가
있다. 카운터 레루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그 불안이 당연히 있을 거고. 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이란이란 나라가 어쨌든 생존을 해야이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는 언제까지고이 무한한 혁명을 할 수 없다는 현실주의가 이제 작용을 이제 한
거죠. 음. 그렇기 때문에 이제 혁명의 가장 중심적인 가치는 지키되 어 이것을 이제 어떻게 이제
실용적으로 타협해갈 것인가 그 선을 내가 잡아주는게 이제 하메이의이 사람의 이제 역할이었던 것이고
89년도에 이제 됐을 때 그 라프산잔이라고 하는 사람 딱 중독파요.이 사람도 중파해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딱 한번 가운데를 잘
이란의 개혁파와 하타미 대통령의 등장
잡아 봅시다라는 식으로 이제 했었죠. 예. 그러다가 이제 97년 8년 뭐 이쯤에 이제 선거가 있는데 이때 이제
하타미라는 사람이 이번에 개혁파가 당선이 됩니다. 이제 어 개혁파가 라프산자니마에서 중독파. 근데 제가
예전에 들었을 때는 뭐 일하는 종교 지도자들 모여서 하는 회의에서 뭐 대통령 후보도 나가나 마나 막 정해
줘 가지고 그냥 보수 쪽에 사람들이 무조건 대통령이 되게끔 한다 그러던데 그때는 그런 정도는 아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정확히는 이게 어쨌든 선거를 이제 냉소적으로 보면은 혁명이나 이슬람 공학의 냉소적으로 보면은
이거는 짜고치는 사실 게임이 거죠. 자기들이 후보 정해 놓고 거기서 뽑으라고 하면은이 선거가 선거는
맞냐인 건데 근데 우리가 어떻게든 그 일단 반장 선거가 있어서도 다민
선생님이 조금 약간 연애력을 행사하잖아요. 민우가 반장이 되면 좀 좋겠는데 뭐 이런 식으로 그런 식으로
이제 후보들을 이제 그 몇 명을 지명을 해 주는 건데 그중에서 이제 개혁파 중에서 얘는 그래도 너무
막나가진 않을 것 같아라고 하는데 얘는 그래도 우리랑 좀 많은 통하는 애야라는 개혁 파들을 올려 주면은이
국민들 입장에서는음 공정하다고 느끼는 거구나. 공정하다까진 아니더라도 뭐라도 바꾸려면은 저 사람은 뽑아야 돼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아, 그러니까 개혁파 중에 제일 보수적인 애 하나 올려 놓으면 국민들은 야, 저 후보
중에 제일 개혁적인 애 이렇게 뽑는 그죠. 그런 구도네요. 예. 그리고 하타미 때만 하더라도 이란이 지금
같은 상황은 아니었어요. 일단 핵개발도 안 한다고 하고 있. 택개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어 화탐이라는
사람은 상당히 개혁적인 사람으로서 이제 적 굉장히 전향적으로 이제이 사람이 뽑혔고이 사람은 심지어
경제적인 신자유주의화도 합니다. 어 근데 대통령이 권한이 있어요? 내각을
이제 선임을 할 수가 있고 경제 정책이라든가 여러 사회 정책이라든가
상당한 이제 자율성이 있습니다. 다만 이제 그 핵심적인 국가의 외교 정책
그다음에 혁명 수비대에 대한 통제 권한 이제 이런 건 없는 거죠. 혁명 수비되는 종교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부서예요. 어, 군은 따로 있고. 네. 군은 따로 있고. 근데 둘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 혁명 수비대하고. 그러니까 처음에는 군을
이제 지키 군을 감시하기 위해서 혁명 수비대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가니까 혁명 수비대가 아까 말했지만은이란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이 사람들이 말 그대로 혁명성을 보여줬기 때문에이는 뭐 혁명이란 단어는 되게 여기다
저기. 그니까 제일 센게 혁명이네. 페르시아오로 이제 앵겔러이라고 하는데 그 일하는 젊은 애들한테 앵겔럽
얘기하면 제 치를 뜹니다. 진짜 그놈의 앵겔업 좀 그만 얘기하라. 제가 이제 앵겔 공부하러 왔다라고
하면은 진짜 미쳤냐는 말을 직접 많이 들었기 때문에 어쨌든 이제 그 이제음
대통령 개혁적인 대통령이 됐어요. 아 그니까 혁명 소비대가 자신의 어떤 정치적인 충성도를 입증을 해서 엄청난
보상을 받은 거고 엘리트로 이제 들어갔으니까이 사람들이 구경 기업들이나 막 이런 기업들을 장악을
해요. 아 군해만 있는게 아니고 네. 그니까 경제적인 이권까지도 굉장히 보상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 국방 예산에서도이 혁명 소비대 위조로 엘리트 병사들이 들어가고 그게
아까 전에 100명 나갔다가 85명 죽고 나무 15명요 사람들이 군뿐만
아니라 군 예산도 많이 받아다쓰고 장비도 첨단으로 받고 장비도 첨반으로 받고 기업 쪽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거죠. 경제력도 예. 그러니까 싸우면은 걔네가이기는 거죠. 이젠 처음에는 역전 관계가 역전된
거죠, 이제는. 그러네요. 네. 그리고 뭐 당연히 아무나 못 들어가고요. 대부분은 그냥 우리처럼 이제 징집돼서 군대에 들어가죠.
어쨌든 이제 개혁을 할 때 있어서 그 하타이라는 사람이 이제 그니까 이슬람 혁명이 아까 말했지만 사회주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형 혁명인데 소련님하고 사회주의가 사라지니까 그리고 워싱턴 컨센서스 경제 자유와
시대가 열리니까 이란도 이제 야 우리 좀 자본주의를 해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하면서 대대적으로
비즈니스를 풀어 줍니다. 국제 무역이 엄청 많이 나서게 되고요. 그때 한국 기업들도 당연히 많이 이제 진출을
했죠. 그러니까 그러면 어쨌든 그 아까 제가 대통령의 권한이 있냐라고 물어봤었던 부분이 그러니까 종교
지도자는 이제 나라의 어떤 정신적인 부분들에 대한 가이드를 주는 거고 그
안에서 경제를 어떻게 돌릴 거냐 이런 부분들은 충분히 유효성이 있다는 거네요. 그게 심지어 그게 사회주의자냐 공산주의자는
굉장히 큰사 결정인데 그런 부분도 대통령이 좀 권한이 있긴 있는 거네요. 네. 그렇죠. 그렇죠. 음. 그러니까 이게 아예 막 뭐랄까 중
그니까 역설적는중중동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를 이스라엘로 뽑고 그다음을 이란으로 뽑는다. 농담이
이제 터키를 제외하면은 어쨌든 이제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이 하이라는
분이 이제 미국하고의 관계 개선도 시도를 해요.이 혁명을 하고이 테란에 이제 대사관에 444일간의 인재극을
9.11 테러와 이란-미국 관계 변화
이제 펼쳤잖아요. 미국하고는 이제 관계가 엄청나게 나빠졌고 그리고 해즈볼라 문제 때문에 그 이것도 엄청
복잡한 얘긴데 어쨌든 이제 헤즈볼라 문제 때문에 미국 학원은 정말 사이가 안 좋아졌는데 어쨌든 우리가이
하이라는 대통령이 보기에는 우리가 다시 미국 주도의 세계에 돌아가야 되고 그 혁명의 어떤 그이 본질을
우리가 지키되 그래도 남들처럼 사는게 맞지 않나라는 운명간 대화를 해야 되지 않나라는 그런 이제 인식을
바탕으로 이분이 이제 굉장히 개혁적이고 전향적인 정책을 했고 하메이도 떨하지만은 시대가 그렇다니까
적은 적응해야지라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그런 협력을 할 만한 느낌도 열립니다. 91 테러가
이란에게 굉장히 호재처럼 보였어요. 어 2001년 911 테러 어제는 뭐
되게 현대적인 시기까지 왔네. 이제 밀레니까지 왔네요. 그니까 이게 어
이슬람 극단주의자 알카이다가 미국을 공격을 했었고 그러면 이스라엘 그 제
상상에는이란 입장에서는 미국이랑 좀 관계 개선을 좀 해보고 싶다 그러면은 이게 미국에서 이쪽에 알카이다를
공격할 때 약간 좀 도움을 준다거나 이런 방식으로 한번 우리 미국이랑 한번 관계 개설을 해 볼까 요런
시나리오라는 거죠. 저 정확합니다. 그러니까 일단은이이란 이슬람 공항국 그리고 혁명 사상이라는게 어쨌든
현대화를 지향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문명을 지키고 싶고 우리 그 문명에이 사람 도덕이 필요한 거지.
우리는 뭐 여성들 다 운전도 시켜주고 어 의사도 해주고 공학자도 만들어 주고 우리 이렇게 문명적인 체제인데
그냥 뭐 차도를 좀 쓰라고 하는 것뿐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데 이제 알카에다나 탈레반 아프가니스
탈레반은 완전히 다른 애들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음. 음. 그니까 이거는 이제 진짜로 이제 알카이다 좀
다른데 탈레바 같은 경우는 진짜 농촌 기반의 그 무장 혁명 세력이었고 그니까 완전히 그 옛날 시계 한국으로
치면제 조선 시대를 제현하고 싶어 했던 그런게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프가인스타이도 시아파가 있거든요.
탈레바는 순위파에 주도하는 애들인데 탈레반이 이제 아프가니스탄 시아파를
탄압을 하면서 또 억압 나왔으면 우리 또 혁명해야 되겠네. 그럼요. 아프간 시아파들이 엄청나게 탈출을
합니다.이란 지금도 그 40년째 남민으로 살고 계신 분들이 있어요. 엄청 많습니다. 이란에. 음. 어
그러면서 이제 탈레반이 안 그래도이란 입장에서는 뭔가 이제 위험한 거죠. 그니까 우리 시아파 친구들도 탄압을
하고 저기 애들은 이슬람 우리는 그래도 좀 운명적인 이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는데 쟤들은 좀 너무
야만적인 이슬람. 혁명이 좀 필요한 애들이네. 혁명이 좀 필요한 애들이다 생각했는데 마침 이제 91테로 이제
미국과 관객선을 원한 예예. 타미라는이 대통령 입장에서 보기에는 이걸 바탕으로 우리가 유거 협조를 할
수가 있겠다. 문명관 대화에서 같이 야만을 음 통제하자라는 어떤 그런 그
수사를 구사를 한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미국이 아프가이스에 침공을 하죠. 알카에다 지도자를 숨겨졌던 이유로. 근데 미국이 아프가 아무것도
몰라요. 진짜 그니까이 산악지대에 있는 부족들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근데 이런 사람들 아는 거죠. 음적
관계가 있기 때에 부족마다 다 세력이 다르잖아요. 얘네는 여기랑 친하고 쟤네는 저기랑 친하고 이거를 잘
알아야지 통제가 되는 건데 그때 등장한 사람이 솔레이만입니다. 아, 솔레이만이. 어, 솔레이만이는 거의
주인공급의 인물인데. 어, 주인공급의 인물이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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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ini said



세진님, 요청하신 <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이란 2부]> 영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약: 혁명의 역설과 체제 공고화의 과정

1979년 이란 혁명은 단순히 왕정을 타도한 사건을 넘어, 종교와 정치가 결합한 독특한 신권 통치 체제를 구축한 전환점이었다 <cite>[1]</cite>. 혁명 초기, 이란 사회는 빈부격차의 확대와 팔레비 왕조의 서구화 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로 들끓고 있었다 <cite>[14]</cite>. 이 과정에서 이슬람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하려 했던 알리 샤리아티와 이슬람 기반 통치를 주장한 호메이니가 혁명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다 <cite>[11, 12]</cite>.

혁명 이후 발생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호메이니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cite>[3, 5]</cite>. 8년간 이어진 전쟁 과정에서 이란은 내부의 반대 세력인 좌파와 공산주의자들을 '국가 반역자'로 몰아 숙청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권의 핵심 보위 기구인 혁명수비대가 급격히 성장했다 <cite>[4, 5]</cite>. 특히 소년병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형성된 혁명수비대는 단순한 군사 조직을 넘어 체제의 경제적, 정치적 반석으로 자리 잡았다 <cite>[6, 7]</cite>.

이후 이란은 혁명의 피로감 속에서 하타미 대통령과 같은 개혁파의 등장으로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cite>[2, 238]</cite>. 9.11 테러 당시 이란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며 알카에다 소탕에 협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결국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cite>[239]</cite>. 이란 혁명은 현대적 문명을 지향하면서도 이슬람 도덕 체계를 강요하는 이중적 구조 속에서 내부 갈등과 국제적 고립이라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cite>[2, 15]</cite>.

평론: 신념이 삼킨 근대화와 잃어버린 시간

본 영상은 이란 혁명을 단순한 종교적 광기로 치부하지 않고, 당시의 사회적 불평등과 민족적 자존심이 어떻게 종교라는 틀을 통해 폭발했는지를 예리하게 분석한다 <cite>[8, 14]</cite>. 특히 이란-이라크 전쟁이 혁명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전이 아니라, 내부 숙청과 독재 체제 구축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통찰은 매우 날카롭다 <cite>[4, 5]</cite>.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혁명이 약속했던 '해방'이 또 다른 형태의 억압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이다 <cite>[2, 241]</cite>. 혁명수비대의 탄생과 성장은 국가의 자원을 특정 엘리트 집단에 집중시켰고, 이는 결국 '잃어버린 40년'이라 불리는 경제적 정체와 사회적 경직성을 초래했다 <cite>[7, 247]</cite>. 서구적 근대화에 반대하며 시작된 혁명이 역설적으로 종교의 이름 아래 권위주의적 통제 시스템을 근대화했다는 점은 현대 정치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론적으로 이란의 사례는 민중의 분노가 구체적인 대안이나 민주적 절차 없이 특정 이데올로기에 매몰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슬람 혁명은 이란 국민에게 자부심을 주었을지는 모르나, 세계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와 번영이라는 기회비용을 지나치게 크게 치르게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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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슬람 혁명 40년: 혁명·전쟁·근대화의 역설>

이 영상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의 배경과 전개, 그리고 그 이후 40년간 이란 체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를 설명한다. 핵심 축은 세 가지다. 첫째, 혁명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둘째, 왜 전쟁과 숙청을 거치며 종교 권력이 공고화되었는가. 셋째, 그 결과 이란 사회는 퇴보했는가, 아니면 역설적 근대화를 경험했는가.

혁명의 배경에는 팔레비 왕조의 급속한 서구화와 권위주의 통치가 있었다. 외형상 테헤란은 현대화되었고 여성의 사회 진출과 교육 수준도 상승했지만, 농촌과 도시 빈민층은 소외되었다. 빈부격차와 문화적 박탈감이 누적된 상태에서 콤 신학교 시위와 아바단 영화관 방화 사건이 기폭제가 되었다. 시아파 특유의 ‘순교’ 서사는 40일 주기의 장례 집회를 통해 시위를 기하급수적으로 확대시켰다. 혁명은 특정 지도자가 계획해 일으킨 것이 아니라, 폭발한 대중 봉기를 누가 장악하느냐의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두 인물이 중요했다. 알리 샤리아티는 이슬람과 사회주의를 결합해 혁명 이념을 제공했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종교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 조직화를 이끌었다. 모스크와 성직자 위계 구조는 혁명 이후 권력 장악의 기반이 되었다. 혁명 직후에는 이슬람주의자,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가 공존했으나, 1979년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분수령이 되었다. 미국과의 대치 속에서 호메이니는 자유주의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집중했다.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체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혁명 확산을 우려하고 국경 분쟁과 전략적 계산을 바탕으로 침공했다. 8년간 100만 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총력전은 혁명수비대(IRGC)의 부상을 낳았다. 혁명수비대는 기존 군을 견제하기 위해 창설되었으나, 전쟁을 통해 정치·군사·경제 엘리트로 성장했다. 전쟁 참전 세대는 체제의 핵심 지지 기반이 되었고, 그 가족들은 국가적 보상을 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쟁과 혁명이 ‘근대화’를 촉진했다는 주장이다. 팔레비 시대에 축적된 관료·교육·기술 인프라를 동원해 보건, 문해율, 여성 교육 지표가 개선되었다. 농촌 출신 청년들이 사회 이동을 경험하며 새로운 중산층이 형성되었다. 이는 혁명을 단순한 퇴행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1989년 호메이니 사망과 소련 붕괴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최고지도자로 <알리 하메네이>가 선출되고, 대통령으로 라프산자니가 등장하면서 실용주의가 강화되었다. 이후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은 개혁 노선을 추진하며 경제 개방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그러나 핵심 권력은 여전히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에 있었다. 이중 권력 구조는 선거와 종교 통치가 병존하는 독특한 체제를 형성했다.

이란 혁명 사상의 특징은 ‘혁명’을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 도덕·문화 개조 과정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종교적 규범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혁명적 사명으로 본다. 동시에 탈레반이나 알카에다와는 다른 ‘문명적 이슬람’을 자임한다. 9·11 이후 미국과 협력 가능성도 잠시 모색되었으나, 이후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이 영상의 강점은 혁명을 선악 이분법이 아닌 구조적 과정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종교 네트워크, 전쟁 동원, 계층 이동, 국제정세가 얽혀 체제가 굳어졌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특히 혁명수비대의 성장과 전쟁 세대의 사회적 보상 구조를 통해 오늘날 이란 권력의 실체를 이해하게 한다.

다만 한계도 있다. 내부 반대 세력의 목소리, 여성과 소수자의 경험, 경제 제재의 구체적 영향은 상대적으로 축약되어 있다. 또한 “혁명이 근대화를 낳았다”는 평가는 부분적 사실일 수 있으나, 정치적 억압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 영상은 이란의 40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 단정하기보다, 혁명·전쟁·근대화가 뒤엉킨 복합적 역사로 제시한다. 이란 체제는 단순한 신정 독재가 아니라, 전쟁 동원 체제와 종교적 정당성, 제한적 선거 정치가 결합된 독특한 국가 모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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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의 주어진 제목으로 AI의 정보력+분석력으로 800 단어의 글을 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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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이란 현대사에 남긴 궤적과 그 이면에 숨겨진 권력의 메커니즘을 심층 분석하여 서술한다.

이란의 잃어버린 40년: 혁명의 역설과 신권 통치의 빛과 그림자

1979년 이란 혁명은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친서구적 근대화를 밀어붙이던 팔레비 왕조의 몰락과 호메이니를 정점으로 하는 이슬람 공화국의 탄생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중동의 지정학적 질서와 이슬람 세계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란이 마주한 현실은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냉혹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 혁명의 도화선: 근대화의 피로감과 종교적 네트워크

혁명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레비 왕조의 '백색 혁명'이 남긴 상흔을 들여다봐야 한다. 급격한 서구화와 세속화는 도시 중산층을 키워냈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시하던 보수층과 소외된 빈곤층의 반발을 샀다. 이때 알리 샤리아티와 같은 사상가들은 이슬람주의에 사회주의적 해방 신학을 결합하여 대중의 분노에 방향을 제시했다. 결정적으로, 세속 권력이 통제할 수 없었던 사원(모스크) 기반의 종교 네트워크는 혁명의 거대한 병참 기지 역할을 수행하며 호메이니라는 상징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2. 전쟁이라는 촉매제: 체제 공고화와 혁명수비대의 부상

혁명 직후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란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지점이자, 현 체제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다. 외부의 침략은 내부의 분열을 봉합하는 강력한 기제가 되었으며, 호메이니 정권은 이 시기를 틈타 내부의 반대 세력인 좌파와 자유주의 세력을 숙청하며 일당 독재 체제를 완성했다. 특히 이 시기에 탄생한 '혁명수비대'는 정규군을 견제하고 체제를 보위하는 핵심 조직으로 성장했다. 소년병들의 희생과 순교 정신을 바탕으로 구축된 이들의 영향력은 오늘날 군사를 넘어 정치, 경제 전반을 장악하는 거대 카르텔로 변모했다.

3. 문명적 지향과 도덕적 통제의 충돌

이란 체제의 독특함은 그들이 근대적 문명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공학자와 의사를 양성하며 현대적인 국가 시스템을 운영하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현대적 성취 위에는 '이슬람 도덕'이라는 엄격한 통제의 굴레가 씌워져 있다. 히잡 착용 강요와 같은 도덕적 규제는 단순한 종교적 실천을 넘어, 국민을 체제의 틀 안에 가두는 효율적인 감시 수단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현대적 가치를 향유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욕구와 사멸해가는 혁명 1세대의 교조주의적 신념 사이에서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킨다.

4. 잃어버린 40년의 본질: 고립과 정체의 늪

이란의 지난 40년은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정체로 요약된다.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이후 시작된 서방과의 갈등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낙인찍히게 했으며, 이는 만성적인 경제 제재로 이어졌다. 하타미 대통령 시절의 개혁 시도나 9.11 테러 이후의 전략적 협력 모색도 결국 불신과 강경파의 득세로 무산되었다. 국가의 자원이 생산적인 산업이 아닌 체제 유지와 혁명수비대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 속에서, 이란의 찬란했던 문명적 잠재력은 서서히 고갈되었다.

결론: 혁명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이슬람 혁명은 이란 국민에게 주권의 회복과 자부심을 약속했으나, 그 대가로 개인의 자유와 미래의 번영을 저당 잡았다. 종교가 정치를 삼키고 군대가 경제를 장악한 체제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란의 잃어버린 40년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특정 신념이 국가의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지울 때, 그 국가는 진보가 아닌 과거의 영광 속에 갇힌 화석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이란이 마주한 과제는 혁명의 유산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유산으로부터 어떻게 용기 있게 작별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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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전환이면서 동시에, 세속적 근대화 프로젝트에 대한 종교적·사회적 반란이었다. “잃어버린 40년”이라는 표현은 혁명이 약속했던 정의와 번영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전제한다. 그러나 그 40년은 단선적으로 ‘퇴보’라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혁명·전쟁·근대화가 얽힌 복합적 과정이었다.

혁명의 배경은 팔레비 왕조의 급속한 서구화 정책에 있다.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는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며 산업화·도시화를 추진했고, 여성 교육과 사회 참여도 확대했다. 겉으로 보면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현대화된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발전은 불균등했다. 농촌과 도시 빈민층은 소외되었고, 전통적 상인층과 종교 엘리트는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다. 비밀경찰 사바크(SAVAK)에 의한 탄압은 정치적 불만을 누적시켰다. 경제 성장과 문화적 서구화는 곧 “정체성의 위기”로 인식되었다.

이때 이슬람 사상가 알리 샤리아티는 시아파의 순교 전통과 사회주의적 정의론을 결합해 혁명의 언어를 제공했다.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구도, 정의를 위한 순교의 의미는 대중 동원의 강력한 서사였다.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망명지에서 이 담론을 정치화했다. 그는 이슬람 법학자가 통치의 정당성을 갖는다는 ‘벨라야테 파키흐’ 이론을 제시하며, 종교 권위를 국가 권력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혁명은 계획된 쿠데타가 아니라,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대중 봉기였다. 장례식 40일 주기를 통해 시위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왕은 해외로 떠났다. 이후 문제는 “누가 혁명을 장악할 것인가”였다.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이슬람주의자가 경쟁했지만, 모스크 네트워크와 성직자 위계를 가진 이슬람 세력이 조직력에서 우위에 있었다. 1979년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은 체제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미국과의 대치 속에서 자유주의 세력은 배제되었고, 혁명은 반제국주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혁명을 공고화한 결정적 계기였다. 사담 후세인은 국경 분쟁과 혁명 확산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이란을 침공했다. 8년간 이어진 전쟁은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지만, 내부 결속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혁명수비대(IRGC)는 군사 조직을 넘어 정치·경제 엘리트 집단으로 성장했다. 전쟁 참전 세대는 체제의 핵심 지지층이 되었고, 국가적 보상을 통해 사회 이동을 경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국가 동원을 통해 근대화를 촉진했다. 팔레비 시대에 구축된 관료제·교육·기술 인프라가 전면 동원되면서 보건, 문해율, 여성 교육 지표는 개선되었다. 특히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급증했다. 이는 “이슬람 혁명은 여성 억압만을 낳았다”는 단순한 서술을 수정하게 한다. 동시에 표현의 자유 제한, 문화 검열, 도덕 경찰의 활동은 개인의 삶을 통제했다. 혁명은 사회 이동의 기회를 열었지만, 정치적 다원성은 축소되었다.

1989년 호메이니 사망과 소련 붕괴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최고지도자로 <알리 하메네이>가 선출되었고, 대통령 라프산자니와 이후의 <모하마드 하타미>는 실용주의와 개혁을 시도했다. 하타미는 ‘문명 간 대화’를 내세우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고, 경제 개방과 시민 사회 확대를 추진했다. 그러나 혁명수비대와 최고지도자가 핵심 안보·외교 권한을 쥐고 있는 구조는 유지되었다. 이란 체제는 선거와 종교 권위가 공존하는 이중 권력 구조로 굳어졌다.

“잃어버린 40년”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잃었다는 의미인가. 하나는 국제적 고립이다. 미국과의 적대, 핵 문제, 경제 제재는 성장 잠재력을 제약했다. 또 하나는 정치적 다양성이다. 혁명은 다원적 연합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종교 엘리트 중심의 체제로 수렴했다. 그러나 동시에 잃지 않은 것도 있다. 국가 정체성의 자율성, 지역 강국으로서의 영향력, 그리고 사회적 이동의 경험이다.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민 사회와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국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단순한 신정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반제국주의, 사회 정의, 종교적 정체성 회복이라는 세 요소의 결합이었다. 문제는 이 이상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권력 집중과 지속적 동원 논리가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혁명은 사건이 아니라 상태가 되었고, ‘혁명적 윤리’는 사회 전반을 규율하는 언어가 되었다.

따라서 이란의 40년은 잃어버린 시간이라기보다, 미완의 실험에 가깝다. 근대화와 종교, 민주주의와 혁명, 자율성과 고립 사이의 긴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실험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환될지는 이란 내부 세대 교체와 국제 질서의 변화에 달려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란 혁명은 중동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이며, 그 본질은 단순한 보수적 반동이 아니라 근대성 자체를 재해석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이다.



그리스vs 페르샤 전쟁, 미국 vs 이란 대결은 피할 수 없었나 - 피렌체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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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vs 페르샤 전쟁, 미국 vs 이란 대결은 피할 수 없었나입력 2026.01.24

임명묵

- 2026년의 참극: 테헤란의 시신 가방과 '자비드 샤'의 환영
- 어긋난 운명: 네오콘은 왜 이란의 '빅 딜'을 걷어찼나
- 승자의 저주: 아랍의 봄, 그리고 솔레이마니가 판 함정
- 폭풍 전의 봄날: 핵 협상 타결과 위태로운 희망

그리스-로마-유럽-미국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서양문명, 그리고 중국과 한국, 일본 등 아시아 문명. 그 사이에도 여러 문명이 있지만 그중 서양문명과 가장 대결 구도를 유지해 온 건, 페르샤로 대표되는 중근동(오리엔트) 문명, 기원 7세기 이후로는 이슬람 문명이 있다. 이란은 혈통 상 그리스, 로마와 겨루던 민족이고,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vs 이슬람 대립 구도에서 절반의 이슬람(시아파) 대표 격이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타인의 관계다.

1기 트럼프와 2기 트럼프 정부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이란에 대한 강압적, 대결적 태도다. 이번 칼럼은 두 민족, 두 종교, 두 문명의 2천 5백년 간에 걸친 대결 관계를 제목에 담았지만, 그 내용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47년간의 역사다. 매우 압축적인 시기의 역사다. 임명묵 필자는 이란 현대사를 악당과 선인이 싸우는 활극이 아닌, 운명에 맞서다 끝내 좌절하는 '그리스 비극'으로 읽어낸다.

1부에서는 네오콘의 등장과 아랍의 봄이 꼬아버린 이란의 운명을, 2부에서는 트럼프의 합의 파기 이후 희망이 사라진 이란 사회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는지를 조망한다. 필자는 올해 33세의 신예 작가로서 중국, 한국, 러시아를 다룬 묵직한 책들을 잇달아 출간했다. 이번 칼럼은 맥락 없이 쏟아지는 이란발 뉴스를 역사적, 비극적 맥락에서 그 본류를 추적하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편집자 주]
지난 9일 테헤란에서 불을 피운 시위대 // 사진=연합뉴스

2026년 1월 8일 세계의 이목이 이란으로 쏠렸다. 2025년 12월 말에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장 상인들의 시위가 시작되었고, 날이 갈수록 격해지는 상황이었다. 어느새 시위 군중 사이에서는 ‘자비드 샤(의역하면 폐하 만세)’라는 구호도 등장했다. ‘샤’는 전통적으로 이란의 군주를 일컫는 호칭으로, 현대 맥락에서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 몰아낸 팔레비 왕가를 상징한다. 팔레비 왕가의 가주로 1979년 혁명 이래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레자 샤 팔레비는 이러한 움직임에 고무되었고, 급기야 1월 8일에 전국적인 봉기를 호소하게 되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정부는 인터넷 차단 이후 신속하게 진압 작전을 개시했다. 인터넷이 차단되고 조사가 어려워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사망한 것은 분명하다. 인터넷 통제를 뚫고 유출된 영상 중에는 테헤란 남부 카흐리자크 법의학 센터에 놓인 수많은 시신 가방을 담은 영상도 있었다.

이 충격적인 뉴스에 서방 사회에서는 다시금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부를 향한 규탄의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다시금 이란을 중심으로 중동의 정세가 일촉즉발로 치닫는 것이다.

이런 정국 속에서 한국에서도 이란 사태에 대한 각종 논평이 활발히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여론부터 정당이나 시민단체의 공식 논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대중적인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전제가 있어 보인다. 이란의 이슬람 공화국 체제가 철거되면 미국의 제재도 해제되고, 그 후 신생 이란은 세속주의적인 민주 공화국으로 무난히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물론 그 방식은 한국 및 세계 전역에 거주하는 재외 이란인을 포함하여, 이번 시위 과정에서 거리에 나온 많은 이란 시민이 지지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실제로 교육률이 높고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이 나라가 국제적으로 고립, 봉쇄되어 잠재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의 여론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전망은 이란 및 중동 현대사에 대한 피상적인 관찰, 예컨대 팔레비 시절 테헤란 일부에 국한된 현대화된 풍경에 근거하고 있을 때가 많다. 게다가 그 논지에는 오직 1979년 이슬람 혁명이라는 하나의 사건만을 기준으로 이란 현대사 전체를 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 팔레비 시절만 해도 건국자 레자 샤와 아들인 모하마드 레자 샤의 치세가 다르다. 이슬람 혁명으로 쫓겨나서 세계인에게 잘 알려진 모하마드 레자 샤 시기 또한, 연합군 점령기, 모사데크 시기, 백색혁명 시기, 부활당 시기 등 여러 국면으로 나뉜다. 하물며 이슬람 공화국 역시 혁명기,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 호메이니 사후 각 대통령 정권으로 무수히 많은 우여곡절과 변동성을 거친 복잡한 시대였다.

사실 현재 이란이 처한 상황은 이 기나긴 시대를 거치면서 이란 내부에서의, 또 이란을 둘러싼 외부 행위자 간의 무수한 상호작용이 의도치 않게 빚어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조적 비극이 감당하기 어려운 파국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상황 파악이 선결될 필요가 있다.

현재 이란이 겪고 있는 곤경의 핵심 원인은 핵 개발 시도를 계기로 더욱 무겁게 가해진 미국의 경제 제재다. 이란 국가의 경제적 기회가 박탈되는 것은 물론이고, 내부에서도 중산층의 삶이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그 가운데 제재 우회 경로를 장악한 국가 엘리트의 힘만 계속 커진다. 여기서 국민의 불만이 생긴다. 이란은 포위되어 있으니 어떻게든 이 국면을 버텨야 한다고 믿는, 그래서 혁명을 지켜야 한다는 지도부는 더욱 완고한 입장을 고수하게 된다.

이건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로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모습 // 사진=Unspalsh

비극의 첫째 뿌리: 네오콘의 등장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분명히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로 미국, 이스라엘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를 드러냈다. 444일 간의 인질극으로 미국을 충격에 빠트린 주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극, 미국을 대(大) 사탄, 이스라엘을 소(小) 사탄이라고 부르는 호메이니의 거침없는 비난만 보아도 그러했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 진군하자, 레바논 남부 시아파 주민들에게 호메이니 혁명 사상을 전파하여 헤즈볼라를 결성하도록 도운 것도, 미국과 관계가 악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도 이 시기에 이란-미국 관계가 현재와 같이 양국 간 전쟁이 상시 거론될 정도로 최악은 아니었다. 물론 1983년 레바논 헤즈볼라가 감행한 베이루트 미 해병대 막사 폭탄 테러, 1988년 290명의 이란 민간인이 미국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한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과 같은 굵직한 유혈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미국의 주적은 소련이 이끄는 국제 공산주의였기에, 이란이 미국 정계와 민간의 차지하는 관심 정도는 오늘날보다 낮았다.

1989년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로 탈냉전 시대가 도래했을 때도 이란은 미국 대전략에서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는 핵심 적대국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1990년 쿠웨이트 침공으로 미국과 다국적 연합군의 징벌을 받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반이스라엘 정책을 수십 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시리아의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과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살아있었고, 이란은 아무리 높게 쳐줘도 시리아, 리비아와 비슷한 정도의 위협으로 미국에 인식되었을 따름이다.

게다가 미국은 1990년대에는 이런 국가급 행위자뿐 아니라 소련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탈레반이나, 전 세계 도시와 농촌으로 확산하고 있던 알카에다를 비롯한 지하디스트 무장 단체를 시급한 안보 위협으로 보고 있었다.

호메이니에게서 최고 지도자 직위를 승계받은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와 민선 대통령이 이끄는 이란 지도부는, 이러한 미국의 안보 관념에 맞추어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란 이슬람 혁명은 공산주의 혁명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사회주의 국제주의와 제3 세계 운동의 계보 위에서 만들어진 혁명이었다.

동구권 붕괴는 이란 지도부에게도 거대한 충격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이란은 초강대국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상당한 압박감을 받았을 것이다. 이란은 1990년대부터 IMF와 세계은행의 권고라고 해도 믿을 법한 자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1997년 적극적 개혁파 대통령인 모하마드 하타미 정부가 출범하자 본격적으로 대서방 유화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타미 정부 재임 시기인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자 이란은 즉각 조의를 표명하고,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탈레반 토벌과 부족 질서 안정화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하타미 대통령은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테제인 ‘문명의 충돌’을 반박하며 ‘문명 간 대화의 시대’를 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미-이란 관계에 훈풍이 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체제, 즉 미국 주도로 전 세계의 ‘자유민주화’를 무력을 써서라도 달성하겠다는 급진적인 네오콘(신보수주의)은 이란이 내민 손을 매몰차게 걷어찼다. 2002년 연두 교서에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정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쏟아냈다.

당시 이란은 핵무기 개발이 확인된 상태도 아니었고, 과거 이라크처럼 대외 정복 전쟁을 추구하지도 않았음에도 이들과 동일 선상에 놓였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2003년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고자 벌인 이라크 전쟁은 이란에 실존적 공포를 안겨주었다. 이란이 8년간 대적해도 밀어낼 수 없었던 이라크군을 미군은 3주 만에 분쇄하고 승리를 선언한 것이다.
지난 22일 다보스 포럼에 참여한 트럼프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거절당한 ‘빅 딜’: 생존을 위한 마지막 제안

생존의 위협을 느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주 테헤란 스위스 대사를 통해 미국 국무부에 일종의 비공식적인 ‘빅 딜’을 제안했다. 서한에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모두 해제하고, 평화적인 원자력 개발 접근권을 보장하고,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에 대한 특수관계를 인정해 준다면, 이란은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전적으로 협력하고, 핵무기 개발을 시도조차 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철저히 지킬 것이며, 미국의 이라크 점령 정책에 협조하고,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에 물질적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는 약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부통령 딕 체니와 국무부 차관 존 볼턴은 이라크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이란이 겁에 질렸다는 증거라며 이란의 제안을 일축했다.

자신들이 제안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한 이란 지도부 내에서는, 미국의 임박한 군사적 위협에 맞서야 한다는 혁명수비대를 주축으로 하는 보수파의 목소리가 빠르게 주류의 위치로 올라오게 되었다.

네오콘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과 대(對) 이란 강경책은 중동을 거대한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여전히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 세대가 주류를 차지하는 이란에서는, 미국의 일방적인 중동 군사 개입을 제국주의의 산물이자 이란에 대한 위협이라는 여론이 크게 확산했다.

이후 이러한 여론은 극보수파 대통령인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의 당선에 상당 부분 이바지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재임한 아흐마디네자드는 본격적으로 우라늄 농축을 가속하며, 이란인들이 지금까지도 고통받게 될 가혹한 경제 제재의 시작을 알렸다.

한편 사담 후세인이 사라진 이라크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었다. 시아파 맹주로서 이란은 이라크에서 거대한 활동 공간을 얻을 수 있었는데, 솔레이마니로 대표되는 혁명수비대 쿠드스군(대외 작전부대)이 이라크에 파견되어 카타이브 헤즈볼라를 비롯한 각종 시아파 민병대의 결성, 조직, 훈련을 지원했다. 이들은 수니파 무장 세력 및 미군 점령 세력과 쟁투를 벌이며, 다수 시아파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이라크 민선 정부와 복잡한 관계를 형성했고, 이라크는 점차 친이란 세력으로 기울게 된다.

이란의 이라크 내 영향력 확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걸프 지역의 세력 균형이 바뀌고 있다는 위협을 체감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서로 대규모 육군력을 마주하며 대치하던 이란과 이라크의 균형이 붕괴하고 이란이 걸프의 유일한 육군 강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란 시위대의 모습 // 사진=Unspalsh

비극의 두 번째 뿌리: 아랍의 봄

아흐마디네자드 시기(2005-2013)에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본격적인 강 대 강 공세에 나섰다. 전술했듯 적극적인 우라늄 농축 추진, 북한과 협력 강화, 이라크에서 대(對) 미국 항전, 2006년 레바논 전쟁 당시 헤즈볼라 군사 지원 등 지정학적 갈등의 수위를 높였다. 국내적으로는 자유화되고 세속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혁명 이후 세대인 청년층들에 대한 억압도 거세졌다.

모하마드 하타미 정권 시기에 불어왔던 국내 자유화와 대미 유화책의 시대가 저물었다. 보수적 국민과 정권 강경파들의 지지 속에서 아흐마디네자드가 하타미 시절의 정책들을 되돌리자, 청년층들의 반발도 뒤따라 나왔다. 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날 무렵에 벌어진 혁명과 전쟁보다는, 청소년기부터 접한 위성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서방 문화에 익숙해진 세대였다. 하지만 시아파 최대 성지인 나자프와 카르발라가 자리한 이라크에서 들려오는 끝없는 포성은 청년층의 반발을 억누를 좋은 명분이 되어주었다.

전환점은 2009년에 나타났다. 아흐마디네자드가 재선에 도전하는 해, 개혁파의 경쟁 후보로는 고참 혁명 세대이자 1980년대에 총리를 지냈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가 출마했다. 이슬람 공화국이 농촌까지 보급한 보건소 인프라 덕택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청년 인구는 아흐마디네자드가 하타미 노선을 폐기하는 것을 막자며 투표장으로 몰려나왔고, 무사비가 이끄는 개혁파가 정권을 다시 탈환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아흐마디네자드의 승리였는데, 개혁파 지지 대중 사이에서는 빠르게 부정선거를 향한 의혹이 퍼져나갔다. 어쩌면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한 정권 최고 엘리트들이 현재 민의를 따르는 것보다는 강경책을 견지하는 것이 더 전략적으로, 또 이념적으로 타당하다 판단하고 이를 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표가 강탈당했다고 여긴, 주로 중산층으로 구성된 청년 인구는 전국 각지에서 “내 표는 어디로 갔는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와 광장으로 나왔다. 무사비를 비롯한 개혁파 엘리트들은 시위대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며 최고 지도자와 보수파 정치인들을 압박했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과 바시지(이란의 준군사조직) 대원이 출동해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등 갈등이 폭발했다.

무사비가 채택한 상징색인 녹색을 따서 ‘녹색 운동’이라고 알려진 2009년의 시위는, 그럼에도 선거 결과를 뒤집거나 가시적인 정책 변화를 당장 도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녹색 운동을 전적인 실패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수 청년층이 공유하는 대중 집회 경험은 이슬람 공화국 정부를 불신하는 독립적인 청년 문화가 본격적으로 탄생하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정권 내부에서도 혁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새로운 청년 인구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관한 무수한 논쟁이 점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선거마저도 무리해서 개혁파의 승리를 막는다면 사회의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네오콘 부시 행정부가 물러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식을 내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등장한 참이었다. 그렇게 좌절된 미국-이란 대화의 순간이 다시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2010년 12월, 테헤란에서 서쪽으로 5천km 떨어진 튀니지에서, 모하메드 부아지지라는 한 과일 행상인이 실업과 빈곤, 폭력적 경찰의 모욕적 행태에 분개하며 분신을 한 이후 모든 흐름이 뒤집혔다. 부아지지의 목소리는 발원지인 튀니지를 넘어서, 알자지라와 페이스북을 타고 아랍 세계 전역을 뒤흔들었다. 이 여파로 튀니지와 이집트의 권위주의 정부가 무너졌고, 사람들은 이를 “아랍의 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란 역시 아랍의 봄을 내심 반기는 눈치였다. 아랍의 봄 이후 오랜 기간 아랍의 세속주의 군부에 억압된 이슬람주의 정당이 선거로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노선은 다르지만 이념적으로 유사한 정부들이 아랍, 특히 이집트에 들어설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슈레크(아랍 세계 동부)에서 상황은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다.

부패와 독재에 항거하는 저항 운동은 독재 정부가 봉합하고 있던 각종 사회 분열 단층선과 맞물리자 그야말로 폭발했다. 시리아에서는 알라위파와 기독교 동맹이 아사드를 중심으로 뭉쳤고, 수니파 지하드주의 반군이 거센 도전에 나서며 14년 이상 시리아를 찢어놓은 시리아 내전이 펼쳐졌다.

예멘에서도 하디 정부가 물러선 이후에 기존 남북예멘의 갈등에 시아파 종파 분쟁과 부족 분쟁이 겹치면서 내전이 발생했다. 바레인 왕국에서도 수니파 왕실과 시아파 국민 간의 갈등은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바야흐로 아랍 세계에 국가 붕괴가 파도처럼 밀어닥치고 있었다.
작년 12월 29일 이란 시위대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혼돈의 도가니: 아랍의 봄과 ‘솔레이마니’의 시간

중동 지정학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깨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각국은 경쟁국이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막고, 혼란을 자국의 기회로 삼고자 개입에 나섰다. 섬나라 바레인 왕국에서 벌어진 시위가 그 예이다. 이란은 바레인 왕국의 시아파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라 선전했고, 사우디는 바레인 왕실이 시위대를 진압할 수 있게끔 정치,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니파 칼리파 왕실이 시위대를 억누르고 권위를 회복하면서 바레인 위기는 종식되었다.

하지만 섬에 국한된 도시국가나 다름없는 바레인과 달리 영토 국가인 예멘과 시리아에서 상황은 간단치 않게 흘러갔다.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카타르, 이란, 이스라엘 등 역내 세력이 제각기 대리 군을 물색하여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다. 중동에 군사 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도 역시 발을 걸쳤다. 이란 역시 이 혼란에서 위협과 기회를 동시에 포착했다. 예멘에서 이란은 시아파 계열 후티(안사르 알라)를 지원했고, 자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홍해에 세력권을 구축할 수 있었다.

시리아는 훨씬 더 문제가 오래갔다. 1982년 시리아의 바트당 정권과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은 무슬림 형제단 시위에 격분하며 하마 시를 포격으로 쓸어버린 초유의 학살을 저지른 바가 있었다. 시리아 대통령직을 승계한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 역시 시위 초기부터 잔혹한 무력 진압으로 사태에 대응했으나, 종파 갈등이 뚜렷한 시리아에서 유혈 진압은 반대로 내전으로 흘렀다.

바트당 정부를 혐오하는 수니파 군인들이 이탈하며 병영에서 무기가 풀려나왔고, 국제사회의 지지, 사우디아라비아와 튀르키예의 직간접적 지원, ‘이교도와 이단’을 척결하겠다는 지하드 전사들의 유입으로 아사드 정부는 빠르게 열세에 몰렸다.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부터 이란과 우호 관계를 구축한 아사드 정부를 상실하는 것은 이란으로서는 쉽사리 용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란 혁명 국제주의의 상징인 헤즈볼라를 향한 육로 연결의 중추가 시리아였기 때문이다. 이에 솔레이마니 장군이 이끄는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이 파견되었고, 이란 정부는 “시아파 성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개입해야 한다”라며 아사드 정부 지지를 정당화했다.

이미 헤즈볼라 지원 경험으로 시아파 지역에서 이념적, 군사적으로 현지인들을 훈련해 이란의 동맹으로 삼는 데 능수능란했던 이란은, 아랍의 봄 정국에서 신속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솔레이마니의 전술과 지휘에 힘입어 이란은 이라크-시리아-레바논을 거쳐 지중해까지 뻗어 나가는 통로를 확보할 수 있었고, 예멘을 통해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까지 점유했다.

이란은 순식간에 중동에서 가장 빠르게 세력을 확대한 위협적인 강국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지도만 본다면 호메이니가 간절히 바랐던 ‘시아파 반제국주의 세계 혁명’이 목전에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혼란기에 당면한 위협을 막아내고 기회를 기민하게 포착한 이란은, 전술적으로는 큰 승리를 거두었을지 몰라도 전략적으로는 오히려 수렁에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 국기 // 사진=Freepik

역습의 서막: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반(反)이란 포위망’

가장 큰 문제는 중동의 인접 국가들이 이란을 최대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전천후 견제가 시작된 것이었다. 사실상 이란을 막아주던 방파제인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무너진 뒤에 이란의 정치적 영향력이 시리아에서도 압도적으로 자리 잡자, 이스라엘은 사실상 육상에서 홀로 이란과 마주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2009년부터 임기를 다시 시작한, 강경 우익 성향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가시화되는 이란의 위협에 맞서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여 이란을 견제하기로 고심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란에 마찬가지의 공포를 느꼈다. 이란의 종파가 자신들과 다른 시아파라는 문제도 문제이지만, 그들이 왕정을 전복하고 등장한 민중 혁명 정권이라는 사실도 불편했다. 사우디 정부는 왕가의 존속을 절대시하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이란이 북쪽 이라크와 남쪽 예멘을 발판으로 자국을 포위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품게 되었으며, 이란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지역 질서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2015년에 국방장관에 오르며 차기 지도자로 부상한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후티를 몰아내고자 예멘 내전에 개입을 시작했고, 2016년에는 이란과 단교하며 본격적인 ‘중동 냉전’을 시작했다. 사우디는 중동 어디서든 이란 및 이란의 대리 세력과 맞선다면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라는 역내 주요 국가의 공동 견제를 받게 되자 이란 지도부에서는 향후 노선을 둘러싼 격론이 벌어졌다. 후티, 헤즈볼라, 시리아, 이라크까지 뻗친 이 ‘저항의 축’을 더 확장하며 이란의 안보를 공고히 해야만 할까? 아니면 아랍의 봄 이후 얻은 이 성과를 최대한 보전하며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야만 할까? 솔레이마니를 비롯한 혁명수비대 고위 지휘관은 전자의 강경론을 추구했지만, 외교 및 경제 당국자들은 반대로 이제야말로 후자의 유화책이 작동할 수 있는 시기라고 주장했다.

유화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데는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로는 사우디와 이스라엘까지 참여하는 대(對) 이란 포위망을 견뎌내기에는 이란 경제가 제재로 인하여 취약해져 있으므로, 지정학 프로젝트에 추가적인 자금을 지출하기보다는 무역 확대를 통해 현대화를 위한 자본 축적과 개발에 힘을 써야 할 때라는 점이 있었다.

둘째로는 이란 및 수니파 지하드 전사들과의 투쟁에 지칠 대로 지친, 그래서 중동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전략적 무게추를 옮기려는 미국과 오바마 행정부와는 대화가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란은 ISIS 토벌에 미국과 비공식적으로 협력하면서 이면에서 신뢰를 구축하기도 했다.

마지막 셋째 이유는 국내 정치였다. 2009년 녹색 운동 이후 정부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청년층은 ‘저항의 축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냉소적으로 나왔고, 이란이 가난한데 왜 이란과 관련도 없는 아랍에 그렇게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2013년 선거에서 청년층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된 이란의 중도 개혁파 하산 로하니는 자신을 지지해 준 국민 여론에 보답하겠다며 핵 협상에 나설 것을 공언했다. 막후 조정자인 알리 하메네이도 핵 협상에 동의했다. 그는 한쪽에서는 솔레이마니 장군을 통해 저항의 축을 가동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을 파견해 핵 협상에 나서게 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공화당의 막대한 반발을 뿌리치고 협상장에 나왔다.

이 결정에는 이란을 미국의 중동 지역 질서에 끌어들이면, 함부로 미국과 그 우방에 적대하는 군사 행동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제한된 전략 자산들을 동아시아로 배치하여 중국 견제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었다. 결국에 지난한 협상 끝에, 마침내 포괄적 공동 행동계획(JCPOA)이라고 알려진 이란 핵 협상이 이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P5+1)가 모두 동의하는 가운데 성사되었다.

이는 로하니가 당선된 지 2년 만인 2015년의 일이었다. 제재가 해제되자 이란은 천연자원 수출액을 바탕으로 국내 인프라 현대화에 나서고, 그동안 접근할 수 없었던 고급 자본재와 중간재를 구매하고, 낡은 국내 여객기를 교체하기 위해 보잉과 에어버스 앞에서 ‘큰 손’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한국산 자동차와 가전제품도 이란 중산층의 차고지와 집 안으로 본격적으로 유입되어 사랑받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세계사적인 이변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필자 임명묵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서아시아 지역을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 '아제르바이잔에서의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이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책을 집필 중이다.


현대 이란의 자본주의: 자본 축적, 국가 형성 및 지정학 - 요약 및 평론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Capital accumulation, state formation and geopolitics : Valadbaygi, Kayhan: Amazon.com.au: Books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Capital accumulation, state formation and geopolitics Hardcover – 2024
by Kayhan Valadbaygi  

Contents
List of figures and tables
Acknowledgements
List of abbreviations
Note on transliteration and translation

1 Framing Iran: A historical materialist approach
2 Modern Iran from Pax Britannica to Pax Americana: The emergence and consolidation of capitalism
3 1979 revolution and war with Iraq: The expansion of state capitalism
4 Neoliberalisation and the ruling class reconfiguration (1989-2013)
5 Neoliberalisation and the institutional and ideological reconstitution of the state
6 Class struggles in neoliberal Iran: From workers' resistance in the 1990s to the post-2017 uprisings
7 Neoliberalism and geopolitics: The Iranian nuclear programme, international sanctions and regional policy
8 Conclusion: Future paths under the crisis of neoliberalism, the changing global order and revolts from below

Bibliography
Index


By situating Iran within the neoliberal global capitalism and resulting geopolitics, this book traces the patterns of capital accumulation and transformations in class and state formation emanating from it.

It shows that Iranian neoliberalisation has brought about two capital fractions, namely the internationally-oriented capital fraction and the military-bonyad complex. It substantiates that the co-existence of these competing class fractions with different accumulation strategies has generated hybrid neoliberalism.

The book further demonstrates how this new class formation has reorganised the function and operation of state institutions and transformed state ideology. By documenting the ways in which Iranian neoliberalisation has reshaped the subaltern classes and formed Iran's volatile foreign policy, it also provides a novel account of major events and processes in contemporary Iran, such as the post-2017 wave of uprisings, the nuclear programme and international san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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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description

Review


'Kayhan Valadbaygi's account of capitalist development and neoliberalisation in Iran pushes back against narratives that seek to explain the socioeconomic transformations in Iran with a sole focus on internal dynamics and essentialist arguments about the state's 'rentier' characteristics and Islamist ideology.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also challenges standardised models for which capitalist forms are externally imposed; either determined in the West and subsequently effecting the rest or approached as an abstraction above local particularities. Valadbaygi follows the interactions of social, factional, national, regional, and global forces to offer a dynamic account of the historical trajectory of capitalist relations in Iran. The methodological emphasis on relationality enables the book to reject the binary between internal and external factors, and to move beyond static comparisons of the so-called Global North and South.'
The Journal of Development Studies

'This is a powerful and highly original account of Iran's political economy. Unlike so much analysis and commentary on Iran, Valadbaygi carefully situates processes of domestic class formation and the country's deep social antagonisms within the development of the wider capitalist world market. This deeply insightful re-telling of Iran's history - stretching from the 1979 revolution through to the recent 'Women, Life, Freedom' revolts - is a must-read for understanding Iran's place in the current global order, as well as the country's ongoing and fractious political struggles.'
Adam Hanieh, University of Exeter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provides an original account of the modern Iran that rethinks its complex development and revolutionary ruptures through the wider dynamics of global capitalism and its geopolitical sinews. The first book-length application of the philosophy of internal relations to capitalist development in Iran,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synthesises the global and the local to rethink Iran beyond exceptionalism and culturalism through the intersection of social classes, the state, and global capitalism.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is a must read for academics, students and political practitioners alike.'
Kamran Matin, University of Sussex

'With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Kayhan Valadbaygi delivers the most influential single book on the making of contemporary Iran and therefore the most valuable in helping us to understand the geopolitics of our times.'
Adam David Morton (University of Sydney), co-author with Andreas Bieler of Global Capitalism, Global War, Global Crisis.

'This book successfully situates Iran in the global history and historical sociology of capitalism. A must-read for anyone interested in Iran.'
Ayse Zarakol, University of Cambridge

'Valadbaygi's work builds on an impressive range of sources that make the book essential reading for scholars researching Iran. Its theoretical framework can also inform studies of political economy in other states with comparable positions in international hierarchies. The book offers a strong critique of dominant discussions within Iranian studies.'
Maziar Samiee, University of Sussex

'Incredibly valuable...Valadbaygi's analysis is theoretically solid and academically grounded. The book relies on an extensive set of primary sources in Persian and English, spanning from institutional and independent databases and archives, newspapers and periodical reports, documents from various Iranian ministries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s well as official documents produced by the European Union and the United States. These materials are combined with a rich and extensive list of secondary sources that show special attention to the intellectual debates and knowledge produced not only for an English-speaking audience.'
Stella Morgana, University of Liverpool
From the Back Cover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provides an original account of the modern Iran that rethinks its complex development and revolutionary ruptures through the wider dynamics of global capitalism and its geopolitical sinews. It is a must read for academics, students and political practitioners alike.'
Kamran Matin, University of Sussex

'This is a powerful and highly original account of Iran's political economy. Unlike so much analysis and commentary on Iran, Valadbaygi carefully situates processes of domestic class formation and the country's deep social antagonisms within the development of the wider capitalist world market. It is a deeply insightful re-telling of Iran's history.'
Adam Hanieh, University of Exeter

'Valadbaygi delivers the most influential single book on the making of contemporary Iran and therefore the most valuable in helping us to understand the geopolitics of our times.'
Adam David Morton, University of Sydney

'This book successfully situates Iran in the global history and historical sociology of capitalism. A must-read for anyone interested in Iran.'
Ayse Zarakol, University of Cambridge

This book traces the patterns of capital accumulation and the changes in class and state formation emanating from it in Iran during the global neoliberal era. It demonstrates how there are inner connections between the nature of contemporary development in Iran, the form of the state, the ongoing sociopolitical transformations in society and the geopolitical tensions with the West. Simultaneously, it highlights that these issues should be explored in terms of their internal relations to the motions and tendencies of neoliberal global capitalism and resulting geopolitics. Accordingly, the book demonstrates that Iranian neoliberalisation has brought about new contested class dynamics that have fundamentally reconstructed the Iranian ruling class, aggressively shaped and reshaped the working class and the poor, and drastically impacted the state form and its foreign policy.

About the Author


Kayhan Valadbaygi is a Lecturer in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Middle East in the Institute for Area Studies (LIAS) at Leide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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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요청하신 <현대 이란의 자본주의: 자본 축적, 국가 형성 및 지정학>에 대한 요약과 평론을 작성해 드립니다. 세계인의 관점을 지닌 세진님의 시각에서 이란이라는 국가가 겪어온 파란만장한 현대사가 자본과 권력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재해석되는지 흥미롭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현대 이란의 자본주의: 자본 축적, 국가 형성 및 지정학> 요약 및 평론

서론: 이란을 바라보는 역사적 유물론적 시각

본 도서는 현대 이란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단순히 종교나 문화적 특수성으로 치부하지 않고,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거시적 틀을 통해 분석한다. 저자 카한 발라드베이기는 이란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국가 권력과 지정학적 위치가 자본 축적 과정과 어떻게 상호작용해 왔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본론: 이란 자본주의의 전개와 변천

이란 자본주의의 뿌리는 영국과 미국의 패권이 교차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주도의 평화(Pax Britannica)> 시대에서 <미국 주도의 평화(Pax Americana)> 시대로 이행하며 이란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었고,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토대가 공고해졌다.

1979년 이란 혁명과 뒤이은 이라크와의 전쟁은 국가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이란은 이른바 <국가 자본주의>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혁명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전쟁 수행을 위해 국가는 경제 전반을 장악하며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1989년부터 201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란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저자는 이 시기를 <신자유주의화와 지배 계급의 재편>으로 규정한다. 국영 기업의 민영화와 시장 개방이 추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국가와 밀착된 새로운 지배 엘리트 계층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경향은 단순히 경제적 수치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란 국가 기구의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재구성을 수반했다.

이러한 체제 변화는 필연적으로 민중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대 노동자들의 저항에서부터 2017년 이후의 대규모 봉기까지, 신자유주의적 이란에서 벌어진 계급 투쟁은 체제의 모순을 여실히 드러낸다. 더불어 핵 프로그램, 국제 제재, 지역 정책과 같은 지정학적 요소들은 이란의 신자유주의화 과정과 얽히며 자본 축적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결론: 위기와 향후 전망

현재 이란은 신자유주의의 위기, 변화하는 세계 질서,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반란이라는 다층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저자는 이란 자본주의의 미래가 이러한 갈등들이 어떻게 해소되느냐에 달려 있음을 시사하며 글을 맺는다.


평론: 국가와 자본의 위험한 동거

이 책은 이란을 향한 서구 중심적, 혹은 종교 중심적 편견을 걷어내고 경제적 토대와 권력 구조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흔히 이란을 신권 정치의 전형으로만 이해하려 하지만, 발라드베이기는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자본의 논리와 신자유주의적 통치 술책을 폭로한다.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1979년 혁명 이후의 행보에 대한 분석이다. 혁명 세력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분배를 강조하던 초기 단계를 지나, 결국은 국가 자본주의를 거쳐 기만적인 민영화를 통해 권력층의 배를 불리는 신자유주의로 귀결되는 과정은 현대 국가들이 겪는 보편적인 타락의 경로를 보여준다. 이는 국가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를 조망해 온 세진님 같은 독자에게, 특정 국가의 애국심이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지배 계급의 자본 축적을 가리는 도구로 전락하는지를 선명하게 각인시킬 것이다.

또한, 지정학적 갈등(핵 문제와 제재)을 단순히 외교적 마찰이 아닌, 자본 축적의 조건으로서 분석한 대목은 매우 통찰력 있다. 제재는 한편으로 이란 경제를 압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결탁된 특정 자본들이 시장을 독점하고 불투명한 이윤을 창출하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다.

결국 이 책은 이란이라는 창을 통해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어떻게 지역적 특수성과 결합하여 기형적인 괴물을 만들어내는지 증명한다. 이란 민중들의 끊임없는 저항은 그 괴물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몸부림이며, 이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세진님, 이 요약과 평론이 이란의 복잡한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혹시 이 책의 내용 중 1979년 혁명 이후 지배 계급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경제적 부를 독점했는지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봐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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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Capital Accumulation, State Formation and Geopolitics>
Kayhan Valadbaygi (2024)

<요약 + 평론 (약 1,000단어)>

이 책은 현대 이란을 종교적 이데올로기나 지정학적 위기 중심이 아니라, <자본 축적의 구조>와 <국가 형성의 역사>라는 틀에서 분석한다. 저자 Kayhan Valadbaygi는 역사유물론적 접근을 채택하며, 이란을 하나의 ‘예외적 신정국가’가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재편되어 온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로 파악한다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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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 설정: 역사유물론적 이란 읽기

1장은 분석 틀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란을 이해하기 위해 문화주의적 접근이나 단순한 권위주의 분석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심은 ‘누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축적하는가’이다. 이란 국가의 성격은 종교적 외피를 두고 있지만, 그 내부 작동 원리는 자본 축적과 계급 재생산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이란 이슬람공화국을 ‘반자본주의 체제’로 보는 시각을 비판한다. 오히려 혁명 이후에도 자본주의는 해체되지 않았고, 형태를 바꾸어 재조직되었다고 본다.


2. 제국 질서 속 자본주의 형성

2장은 Pax Britannica에서 Pax Americana로 이어지는 제국 질서 속에서 이란 자본주의가 형성·강화되는 과정을 다룬다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 20세기 초 영국의 영향, 이후 미국 중심 질서 속에서 이란은 석유를 매개로 세계 시장에 깊이 편입되었다.

팔레비 왕조 하에서 국가는 산업화와 토지개혁을 추진했지만, 이는 자율적 민족 자본주의라기보다 국제 자본과 결합된 종속적 발전 모델이었다. 국가 주도의 근대화는 농촌을 해체하고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를 확대했으며, 새로운 중간계급과 군-관료 집단을 형성했다. 이 축적 구조의 불균형이 1979년 혁명의 구조적 배경이 된다.


3. 1979 혁명과 국가자본주의의 확대

3장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을 다룬다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 혁명은 단순한 이슬람 운동이 아니라, 축적 체제의 위기와 계급 갈등의 폭발이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 자본주의는 폐기되지 않았다. 대신 ‘국가자본주의’가 확대되었다.

전쟁과 국제 고립 속에서 국가는 주요 산업을 장악하고, 혁명수비대와 재단(bonyads)을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경제 블록이 형성된다. 종교적 정당성은 축적의 정당화 장치로 작동한다. 여기서 형성된 국가-군사-상업 네트워크는 이후 이란 경제의 핵심 권력 구조가 된다.


4-5. 신자유주의와 지배계급 재편

1989년 이후, 특히 라프산자니와 하타미 시기를 거치며 이란은 신자유주의적 재구조화에 들어간다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 이는 단순한 시장화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재편 과정이었다.

공기업 민영화는 실제로는 권력 내부의 재배분이었다. 혁명수비대, 준공공재단, 정치 엘리트와 연결된 기업 집단이 자산을 흡수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 유연화, 비정규직 확대, 복지 축소가 진행된다.

5장은 국가의 제도적·이데올로기적 재구성을 다룬다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 흥미로운 점은, 이란의 신자유주의가 종교 담론과 결합되어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저항 경제’라는 표현은 외부 제재에 대한 대응이면서 동시에 내부 긴축의 이념적 포장이다.


6. 계급투쟁과 2017년 이후 봉기

6장은 노동자 투쟁과 최근 대중 봉기를 분석한다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 1990년대 노동 저항, 2009년 녹색운동, 그리고 2017년 이후 반복된 생계형 시위는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축적 위기의 표현이다.

특히 2017년 이후 시위는 중산층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 노동계급과 빈곤층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여성과 청년의 참여 역시 단순한 문화적 저항이 아니라, 축적 구조에 대한 저항의 일부로 해석된다.


7. 신자유주의와 지정학

7장은 핵 프로그램, 제재, 지역 정책을 다룬다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 저자는 이란의 핵 정책을 단순한 안보 전략이 아니라, 축적 전략의 일부로 본다. 제재는 경제 위기를 심화시켰지만 동시에 국가-군사 블록의 경제적 지위를 강화했다.

제재 체제는 비공식 무역, 밀수, 환율 차익 구조를 확대하며 특정 권력 집단에 이익을 집중시켰다. 즉, 외부 압박은 내부 계급 구조를 재편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8. 결론: 신자유주의 위기와 아래로부터의 봉기

결론에서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위기와 글로벌 질서 변화 속에서 이란의 미래를 전망한다

Capitalism in contemporary Iran…

. 체제는 위기에 있지만, 대안 역시 불확실하다. 아래로부터의 봉기가 축적 구조를 전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평론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이란을 ‘문화적 예외’가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읽어낸다는 점이다. 이는 종종 서구 담론이 만들어온 ‘비합리적 신정국가’ 이미지를 해체한다.

세진님이 관심을 가져온 <국가 형성, 기억 정치, 지정학적 구조> 문제와 연결해 보자면, 이 책은 이란을 하나의 ‘이념 국가’가 아니라 ‘축적 국가’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예컨대 북한, 중국, 심지어 한국의 개발독재를 분석할 때도 적용 가능한 틀이다.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다음 세 가지다.

  1. 혁명은 자본주의를 폐기하지 않는다. 형태를 바꾼다.

  2. 제재는 항상 체제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권력 재편을 촉진한다.

  3. 종교 이데올로기는 경제 구조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역사유물론적 틀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문화적·정체성적 차원은 상대적으로 도구화된다. 여성 저항이나 종교적 동원의 자율성은 축적 논리의 하위 범주로 환원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국제 관계 분석은 구조적으로 설득력 있지만, 구체적 정책 결정의 우발성이나 내부 정치의 분열은 다소 단순화된다.


종합 평가

이 책은 이란을 이해하는 데 매우 강력한 구조적 분석 틀을 제공한다. 종교, 혁명, 핵 문제, 제재를 하나의 축적 체계 안에서 연결한다는 점에서 학문적 가치가 높다.

이란을 단순히 ‘미국의 적’이나 ‘신정 독재’로 보지 않고, 세계 자본주의 위기의 한 변형으로 읽고자 한다면, 이 책은 필독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넓게 보면, 이 분석은 질문을 던진다.

국가란 무엇인가?
혁명은 무엇을 바꾸는가?
신자유주의는 왜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는가?

이 질문들은 이란을 넘어서, 오늘의 세계 질서를 이해하는 데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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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혁명으로 어떤 그룹에서 어떤 그룹이 새 지배 계급이 되었고, 새 지배 계급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정치 권력과 경제적 부를 독점했는지 분석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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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이란 혁명 전후의 지배 계급 교체와 그들이 권력 및 부를 독점한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분석이다.

1. 지배 계급의 교체: <파흘라비 가문>에서 <성직자 중심의 복합체>로

혁명 이전 이란의 지배 계급은 국왕(샤)을 정점으로 하는 파흘라비 가문과 그와 결탁한 관료, 군부 엘리트, 그리고 서구 자본과 연결된 대자본가들이었다. 이들은 <미국 주도의 평화(Pax Americana)> 체제 아래에서 석유 자본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했다.

혁명 이후, 이 자리를 대체한 새로운 지배 계급은 단순한 성직자 집단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성직자(Ulama), 혁명 수비대(IRGC), 그리고 이들과 밀착된 상인 집단(Bazaari)**으로 구성된 새로운 권력 블록을 형성했다.

2. 정치 권력 독점 방식: 제도적·이데올로기적 재구성

새로운 지배 계급은 다음과 같은 기제를 통해 정치 권력을 공고히 했다.

  • 벨라야트 에 파키(Velayat-e Faqih): 최고 지도자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신권 통치 이론을 헌법적 토대로 삼아 국가 기구를 장악했다.

  • 국가 기구의 이데올로기적 재편: 신자유주의화 과정 속에서도 이슬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활용해 국가 기구를 자신들의 통치 철학에 맞게 재구성했다.

  • 혁명 수비대의 비대화: 정규군과 별도로 조직된 혁명 수비대는 단순한 군사 조직을 넘어 정치적 의사 결정의 핵심 주체로 부상했다.

3. 경제적 부의 독점 방식: 국가 자본주의와 <기만적 민영화>

새 지배 계급은 경제적 부를 독점하기 위해 국가 자산의 소유권을 교묘하게 재편했다.

  • 국가 자본주의의 확장: 혁명 초기와 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 국가는 전쟁 수행과 사회 통제를 명분으로 주요 산업과 은행을 국유화하며 경제 전반에 대한 장악력을 높였다.

  • 보니야드(Bonyad, 종교재단)의 활용: 혁명 과정에서 몰수한 구 지배층의 자산은 <보니야드>라 불리는 거대 종교재단들로 유입되었다. 이 재단들은 세금 면제와 정부의 특혜를 받으며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지만, 국가의 공식적인 감사에서는 벗어난 채 지배 엘리트들의 비자금 창구 역할을 했다.

  • 신자유주의적 민영화의 악용: 1989년 이후 추진된 민영화 정책은 실제 시장 경제로의 이행이 아니라, 국영 기업을 혁명 수비대나 성직자 계급이 운영하는 자회사나 관련 단체에 저가로 매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지배 계급은 공적 자산을 사적 이익으로 치환했다.

  • 지정학적 상황의 이용: 국제 제재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긴장 상태는 일반 민중에게는 고통이었으나, 지배 계급에게는 밀수나 암시장 통제, 국방 예산 증액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독점적 환경을 제공했다.

결론적으로 1979년 혁명 이후 이란의 새 지배 계급은 종교적 권위를 정치 권력으로 변환하고, 이를 다시 국가 자산의 사유화와 결합함으로써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국가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거대한 정경유착 구조가 오늘날 이란이 겪고 있는 경제 위기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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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이 묻는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1] 1979년 혁명으로 누가 지배계급에서 탈락했고, 누가 새 지배계급이 되었는가?
2] 새 지배계급은 어떤 제도적·경제적 메커니즘을 통해 권력과 부를 집중시켰는가?

구조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혁명 이전 지배계급: 팔레비 국가-자본 블록

1979년 이전, 이란의 지배 블록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 팔레비 왕조 및 궁정 네트워크

  • 군부 고위 장교단

  • 서구 자본과 결합한 대기업가·상공 자본

  • 국가 관료 엘리트

  • 석유 수출을 중심으로 한 국제 금융 네트워크

이 체제는 미국 중심 질서(Pax Americana)에 깊이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경제 구조는 석유 수출 수입을 통해 국가가 재분배하고, 산업화와 소비 확대를 관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 농촌 해체

  • 도시 빈민 증가

  • 중간계급의 정치적 배제

  • 종교 네트워크에 대한 억압

이 축적 구조의 불균형이 1979년 폭발합니다.


2. 1979년 이후 새 지배계급의 형성

혁명은 단순히 “성직자 정권 수립”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는 새로운 <권력-경제 블록>이 형성되었습니다.

핵심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시아파 고위 성직자 집단 (Velayat-e Faqih 체제)

지도자 아야톨라 Ruhollah Khomeini를 중심으로 한 최고지도자 체제는
헌법상 군·사법·국영 방송·혁명수비대에 대한 최종 권한을 장악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 권위가 아니라, 헌법적 초권력입니다.


② 혁명수비대 (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는 혁명 방어를 명분으로 창설되었지만,
이란-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군사·경제 복합체로 성장합니다.

이 조직은 이후:

  • 대형 건설회사(Khatam al-Anbiya)

  • 에너지·통신·인프라 기업

  • 국경 무역 및 제재 우회 네트워크

를 장악합니다.


③ 혁명 재단 (Bonyads)

대표적으로:

Mostazafan Foundation
Astan Quds Razavi

이들은 “몰수 자산 관리”를 명분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혁명 직후:

  • 팔레비 왕실 자산

  • 친정부 기업가 재산

  • 국유화된 산업 자산

이 대규모로 이전됩니다.

이 재단들은 공식적으로는 자선·사회복지 기구이지만,
실제론 세금 면제, 의회 통제 밖의 초대형 경제 집단으로 기능합니다.


3. 어떻게 부와 권력을 독점했는가?

새 지배계급의 축적 방식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단계: 몰수와 국유화

혁명 직후:

  • 수천 개 기업 국유화

  • 은행·보험·대기업 몰수

  • 대토지 몰수

이는 "반제·반자본" 구호 아래 이루어졌지만,
실제론 국가 및 혁명 네트워크로 자산이 이동했습니다.

즉, 자본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소유 주체가 바뀐 것입니다.


2단계: 전쟁 경제와 국가자본주의 확대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은 국가 집중을 강화합니다.

전쟁 상황은:

  • 군수 산업 확대

  • 중앙집중적 자원 배분

  • 혁명수비대의 경제 진입

을 정당화했습니다.

전쟁은 혁명수비대를 군 조직에서 경제 주체로 변환시킨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3단계: 1989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재편

라프산자니 이후 이란은 “시장 개혁”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실제 과정은:

  • 공기업 민영화 → 혁명수비대 및 재단으로 이전

  • 노동 유연화 → 임금 억제

  • 보조금 축소 → 대중 부담 증가

즉, 사유화는 “정권 내부 사유화”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 IRGC 기업 제국 확장

  • 종교 재단 자산 증가

  • 권력 엘리트 가족 네트워크 확대

가 발생합니다.


4. 제도적 독점 구조

① 헌법적 초권력

최고지도자는:

  • 군 통수권

  • 사법부 수장 임명

  • 국영 미디어 통제

권한을 가집니다.

이는 선거 제도를 초월한 권력입니다.


② 선별 민주주의

대통령·의회 선거는 존재하지만,
Guardian Council이 후보를 사전 심사합니다.

즉, 지배 블록 내부 경쟁은 허용되지만,
체제 외부 세력은 구조적으로 배제됩니다.


③ 제재 경제의 역설

미국 제재는 경제를 약화시켰지만 동시에:

  • 비공식 환율 시장

  • 밀수 네트워크

  • 국경 무역 통제

를 통해 혁명수비대에 추가 수익원을 제공합니다.

제재는 민간 중소기업보다 국가-군사 블록에 유리하게 작동합니다.


5. 지배계급의 성격 변화

1979년 이후 지배계급은 다음과 같이 재편됩니다.

혁명 이전혁명 이후
왕조·궁정 엘리트최고지도자-성직자 네트워크
군부 (왕정 충성)혁명수비대
서구 결합 산업자본준공공 재단·IRGC 기업
서구 금융 네트워크제재 우회 네트워크

핵심은:

자본주의는 폐기되지 않았다.
소유권과 통제권이 재배치되었다.


6. 구조적 평가

이 체제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1. 종교적 정당성 + 자본 축적 결합

  2. 군사 조직의 경제화

  3. 제재를 축적 기회로 전환

즉, “이슬람 공화국”은
이념 국가이면서 동시에 군사-관료-상업 복합체입니다.


7. 세진님 관점에서의 확장 질문

이 구조는 다른 사례들과 비교 가능합니다.

  • 북한의 당-군 경제 블록

  • 중국의 당-국유기업 복합체

  • 한국 개발독재기의 군-재벌 결합

혁명은 지배계급을 제거하는가?
아니면 지배계급을 재편하는가?

이란 사례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결론

1979년 혁명은:

  • 왕조-친서방 자본 블록을 해체했고,

  • 성직자-혁명수비대-준공공 재단 네트워크를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 몰수 자산 이전

  • 전쟁 경제

  • 통제된 민영화

  • 제재 경제

를 통해 정치 권력과 경제 자산을 집중시켰습니다.

혁명은 자본주의를 끝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누가 축적하는가”를 바꾸었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IRGC 경제 제국의 구체적 기업 구조까지 분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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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를 다른 사례들과 비교
- 북한의 당-군 경제 블록
- 중국의 당-국유기업 복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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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성직자-혁명수비대-종교재단> 복합체는 북한과 중국의 사례와 유사해 보이지만, 자본 축적의 방식과 국가 권력의 작동 기제 면에서 뚜렷한 차별점을 지닌다. 이를 비교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 이란 vs 북한: <혁명 수비대(IRGC)>와 <당-군 경제 블록>

북한의 군부 중심 경제 구조는 이란의 혁명 수비대 주도 경제와 표면적으로 매우 흡사하다.

  • 공통점: 군 조직이 단순한 국방을 넘어 건설, 무역, 외화 벌이 등 국가 경제의 핵심 이권을 장악하고 있다. 두 국가 모두 국제 제재라는 외부 환경 속에서 군부 주도의 밀수 및 비공식 경제가 비대해졌다.

  • 차이점: 북한의 군부 경제는 철저하게 수령의 지휘 아래 <당>이 자원을 배분하는 계획경제적 틀을 유지한다. 반면, 이란의 혁명 수비대는 신자유주의적 민영화 과정에 참여하여 사기업의 형태를 띠거나 지주 회사를 운영하며 시장 기제 안에서 자본을 축적한다. 즉, 이란은 <군부의 자본가화>가 훨씬 더 시장 친화적(혹은 시장 약탈적)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 이란 vs 중국: <종교재단(Bonyad)>과 <당-국유기업 복합체>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와 이란의 구조를 비교하면 <통제의 주체>와 <이데올로기의 역할>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 공통점: 국가가 전략 산업을 장악하고 있으며, 정치적 충성도가 경제적 성공의 담보가 된다. 민영화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국가나 당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국가 자본주의> 성격이 강하다.

  • 차이점: 중국은 공산당이라는 단일한 대오가 국유기업을 통해 효율성과 성장을 관리하는 반면, 이란은 <보니야드(종교재단)>라는 독특한 완충 지대가 존재한다.

    • 중국의 국유기업은 당의 정책적 통제를 직접적으로 받으며 국가 발전 전략의 도구로 쓰인다.

    • 이란의 보니야드는 최고 지도자에게만 보고할 뿐, 의회나 내각의 감시를 받지 않는 일종의 <국가 속의 국가>다. 이는 중국보다 훨씬 더 분절적이고 불투명한 자본 축적 구조를 만든다.

3. 비교 요약표

비교 항목이란 (성직자-IRGC-재단)북한 (당-군 경제 블록)중국 (당-국유기업 복합체)
핵심 주체혁명 수비대, 종교재단(보니야드)노동당 군수공업부, 군 산하 외화벌이 기관공산당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
경제 논리신자유주의적 민영화를 빙자한 약탈수령 절대주의 기반의 계획 및 배분당의 통제 하의 시장 경쟁 및 효율성 중시
이데올로기이슬람주의 (신권 정치)주체사상 (수령 독재)중국 특색 사회주의 (일당 독재)
투명성매우 낮음 (재단은 감사 면제)전무 (국가 기밀)상대적으로 높음 (상장 국유기업 존재)

평론: 제도화된 불투명성의 차이

세진님, 이 비교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란의 구조가 북한처럼 완전히 닫혀 있지도, 중국처럼 국가 전략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란의 지배 계급은 <종교적 신성함>을 방패막이로 삼아 경제 활동에 대한 세속적 감시를 차단한다. 북한이 생존을 위해 군이 경제에 동원된 형태라면, 중국은 성장을 위해 당이 경제를 관리하는 형태다. 이에 반해 이란은 **혁명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지배 엘리트들이 국가 자산을 사유화하여 신자유주의적 이득을 취하는 <하이브리드형 약탈 체제>**에 가깝다. 세계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종교라는 외피를 두른 자본주의의 가장 교묘한 변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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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의 초점>
세 사례 모두 “혁명/체제 전환 이후” <정치 권력의 핵심 조직>이 <경제 자산·배분·허가권>을 장악하면서, ‘지배 블록’을 제도화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소유 형태>, <시장 메커니즘의 허용 범위>, <대외 제재/외부시장 연결 방식>이 크게 다릅니다.


한국어

1) 공통 구조: <정치-안보 핵심조직>이 <경제 통제권>을 가져가는 3단계

  1. <몰수/국유화/재산 재편>

  • 기존 지배층(왕조·지주·친외세 자본·구체제 관료)의 자산을 재배치

  1. <전시·비상체제 또는 동원 체제>

  • 안보 위기(전쟁·대결)를 이유로 중앙집중, 비공식 유통 확대

  1. <제도화된 독점>

  • 선거/법률/당 규율/인허가/무력기관을 통해 “외부 경쟁”을 봉쇄하고 “내부 경쟁”만 허용

이란에서는 <성직자-혁명수비대-재단>이 이 3단계를 통해 굳어졌고, 북한·중국도 각각 다른 형태로 같은 논리를 갖습니다.


2) 북한: <당-군 경제 블록>의 특징

A. 소유·축적의 형태

  • “국가/당 소유”가 원칙이지만, 실제로는 <당-군-내각 기관별로 분절된 통제권>이 중요합니다.

  • 부는 ‘법적 소유권’보다 <배분권·허가권·외화획득권>에서 생깁니다.

B. 독점 메커니즘(핵심)

  • <조직이 곧 기업> : 군·당 산하기관이 무역회사/건설/자원/수산/해외파견 등을 통해 외화를 벌고, 이를 조직 예산과 충성 재생산에 씁니다.

  • <이중가격/배급-시장 병존> : 배급이 약해진 이후 시장이 커졌지만, 핵심은 시장 자체가 아니라 <시장 위의 국가·보안기관의 허가/단속/상납 구조>입니다.

  • <제재의 ‘내부적 효과’> : 제재는 민간의 정상적 대외거래를 막아, 오히려 <국경·외화·밀무역을 쥔 기관>의 지대를 키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C. 이란과의 차이

  • 이란은 <선거 경쟁(제한적)>과 <민간자본(부분적)>이 존재하지만, 북한은 <당-군이 경제 핵심을 직접 운영>하는 비중이 훨씬 큽니다.

  • 이란의 “재단/IRGC 기업”처럼 준공공-기업형 축적이 있지만, 북한은 더 <행정-기관형 축적>에 가깝습니다.


3) 중국: <당-국유기업(SOE) 복합체>의 특징

A. 소유·축적의 형태

  • 형식적으로는 <국유(전민 소유)> + <시장>의 결합.

  • 실제 권력의 핵심은 “국유냐 민유냐”보다 <당의 인사권(간부 임명) + 금융배분(국유은행) + 규제권>입니다.

B. 독점 메커니즘(핵심)

  • <인사=지배> : 당이 SOE 최고경영진을 임명·평가하고, 당위원회가 기업 의사결정에 관여합니다.

  • <금융=지배> : 국유은행·정책금융이 자금줄을 쥐면서, 국가 전략 산업(에너지, 통신, 철강, 인프라, 방산 등)에 자본을 집중시킵니다.

  • <국가 목표와 이윤의 결합> : SOE는 이윤만이 아니라 산업정책·고용·전략을 수행하며, 그 과정에서 <독점적 시장지위(지대)>를 얻습니다.

  • <대규모 민간의 존재> : 민간기업이 매우 크지만, “한계선”을 넘으면 규제·당조직·금융을 통해 통제됩니다(즉, 민간은 ‘허용된 범위의 역동성’).

C. 이란과의 차이

  • 이란은 제재·안보 환경 속에서 <군사조직(IRGC)의 기업화>가 축적의 핵심축으로 커졌다면, 중국은 <당-국가 관료체계가 SOE/금융을 통해 축적을 조직>하는 쪽이 더 중심입니다.

  • 중국은 세계시장과 깊게 통합되어 <수출·투자·기술도입>을 통해 성장했고, 이란은 제재로 인해 <우회·비공식·지역 네트워크>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4) 한눈에 보는 비교표

항목이란 <성직자-IRGC-재단>북한 <당-군 블록>중국 <당-SOE 복합체>
권력 핵심최고지도자 체제 + 군사조직당-군 지휘체계당의 인사·규율체계
축적의 핵심재단/IRGC 기업 + 제재 우회기관 무역/외화획득권 + 허가/단속SOE 독점 + 국유금융 + 산업정책
시장 허용제한적·왜곡된 시장생계형 시장 확대(통제하)광범위한 시장 + 당의 한계선
제재 효과군사-준공공 지대 강화국경/외화기관 지대 강화(상대적으로) 제재보다 통합·경쟁이 중심
경쟁 구조내부 파벌 경쟁 + 제한 선거내부 조직 경쟁(비공개)관료/기업 엘리트 경쟁(승진 구조)

5) 요약 결론

  • 북한은 “<조직이 곧 경제주체>”인 정도가 가장 강하고, 축적은 <외화·허가·통제>에서 발생합니다.

  • 중국은 “<당이 기업과 금융을 지배하는 국가자본주의>”가 핵심이며, 축적은 <SOE 독점 + 금융배분 + 세계시장 통합>에서 발생합니다.

  • 이란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으나, 특징적으로 <군사조직의 기업화(IRGC)>와 <재단 경제>가 제재 환경과 결합해 ‘지대’를 형성합니다.


English

<Focus of comparison> All three cases institutionalize a ruling bloc by letting the core political–security apparatus control key economic levers. The big differences are <property form>, <how much market competition is allowed>, and <how the system links to global markets under sanctions or integration>.

1) Shared logic (three steps)

  1. <Asset reallocation> (expropriation/nationalization/reassignment)

  2. <Emergency mobilization> (war/hostility justifies centralization and shadow channels)

  3. <Institutionalized monopoly> (licensing, кадров/appointments, coercion—external challengers blocked, internal competition managed)

2) North Korea: Party–military economic bloc

  • Wealth comes less from legal ownership and more from <allocation rights, licensing, control of foreign currency channels>.

  • Key mechanism: <organizations behave like firms> (party/military agencies running trading companies, resource exports, overseas labor channels).

  • Markets exist, but the decisive layer is <state/security control above the market> (permissions, crackdowns, informal taxation).

  • Sanctions tend to increase rents for actors controlling borders and FX channels.

3) China: Party–SOE complex

  • The Party rules through <appointments + discipline> inside SOEs and through <state finance> (state banks, policy lending).

  • SOEs combine profit with national objectives; monopoly/oligopoly positions create rents.

  • A huge private sector exists, but it operates within a Party-defined boundary enforced via regulation, finance, and party cells.

4) Bottom line

  • North Korea: strongest “organization-as-enterprise” pattern; rents from control/FX.

  • China: party-led state capitalism; rents from SOE dominance + finance + global-market integration.

  • Iran (for reference): closer to a hybrid where <military corporatization (IRGC)> and <quasi-public foundations> become dominant rent-generating poles under sanctions.


원하시면, 비교를 한 단계 더 구체화해서
1] “외화 획득 장치(무역회사·은행·환율·관세/국경)”
2] “인사 지배 장치(임명·감찰·당조직/종교권위)”
3] “폭력 장치(군·치안·정보기관)”
이 세 축으로 더 촘촘한 비교도를 만들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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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Baldwin said on Palestine and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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