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February 25, 2026

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이란 2부] - YouTube

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이란 2부] - YouTube


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이란 2부]

압권 Apkwon
17,327 views  Jun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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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5. 6. 20.
▶ 출연 : 권순우, 임명묵
▶ 편집 : 한상우
▶ 협업제안 : apkwon105@gmail.com

00:00 이란 혁명의 배경과 혁명수비대의 탄생
00:43 이란 혁명의 사회적 배경과 주요 사건
02:41 이란 혁명의 전개와 권력 투쟁
08:02 이슬람 혁명과 종교 네트워크
08:49 1979년 이란 혁명과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10:48 이라크의 침공과 시아파 혁명
12:10 이라크와 이란의 갈등과 전쟁의 시작
13:39 이란의 내부 정리와 혁명수비대의 성장
17:40 전쟁의 결과와 이란의 근대화
20:34 이란 혁명과 지도자 교체
21:35 혁명의 피로와 국제적 영향
24:37 이란의 내부 갈등과 혁명 사상
28:30 이란의 개혁파와 하타미 대통령의 등장
32:56 9.11 테러와 이란-미국 관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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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의 배경과 혁명수비대의 탄생
모든 나라에서이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서 계속해서 혁명을 해야 된다라는게 일란 혁명 당시의 컨센서스였습니다. 사다세인의
억압받는 60%의 시야파들을 우리가 해방시켜야 된다라는 식으로 호메이니가 막 하는 느낌이 나니까 이라크가 치어
들어옵니다. 무려 8년간 양측 합쳐서 100만 명 정도가 죽었다고 평가받는데 근데이 과정에서 눈의
가시들을 제거를 하는 거죠. 공산주의자들 소련에 지금 나라 팔아먹겠다는 거 아니냐? 이라크도 쏘른 편이고 좌파들을 다 정리를 한
다음에 전쟁을 하니까 나를 중심으로 뭉철하면서 홈메인이 체제가 만들어지고이 과정에서 탄생하는게 혁명
수습이 됩니다. 총만 들고 있는 소년병들이 그냥 돌격해 가지고 인간 지뢰 제거 같은 것도 하거든요. 너희들은 이제부터 우리 체제
엘리트다. 보훈 개념으로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면서 이들이 이제 체제의 이제 반석이 되어집니다.
이란 혁명의 사회적 배경과 주요 사건
노동자층은 전통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이제 장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이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뭔가 이제
사회주적인 얘기를 해야 됐던 거죠. 반대로. 그니까 이슬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얘기를 막하기 시작하고
사회주의자들은 이슬람 얘기를 하는 상황이 7, 70년대의 상황이었고 그것을 가장 성공적으로 통합한 사람이
이제 알리샤리아티라는 사상가인데요. 뭐 이분 얘기만 해도 너무 길어지니까 그냥 이런 사람이 있었다 정도.
그래서 이제 이슬람과 사회주의를 통합한 알리샤리아티라는 사람 그리고 이슬람에 기반한 통치를 제한한
호메인이라는 사람이이란 혁명기에 투톱이네요. 투톱으로 이제 등장을 합니다. 뭐 수많은 사람들
있었지만. 어쨌든 샤 2대왕은 이런 일이 일어난 줄을 뭐 별로 생각을 안
하고 핵무기를 만들겠네. 페르시아 제국 건국 2500주년 행사를 하네. 그다음에 공장을 더 짓고 뭐 건물을
더 올리고 이런 식으로 막 이제 하고 있었죠. 근데 이제 경제적으로는 뭔가 이제 빈부격차는 계속 확대가 되고
그다음에 이제 테란의 부촌에 가면은 이제 미국인들이 이제 앉아 가지고 술 먹고 뭐 여성들이 막 자유롭게 이제
하는 것을 보면서 보수적인 이인들은 분노를 하게 되고 그런 와중에 이제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하는데 하나가 이제 콤이란 신학교에서 12가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호메이니를이란
정부 관영 매체에서 비난을 이제 하거든요. 이런 뭐 노인내가 종교에
미쳐 가지고 이런 식으로 이제 비난을 하니까 콤에 있는 신학생들이 우리 스승님을 어떻게 너희가 하면서 이제 시위를 하고이 과정에서 뭐 당연히
사람 뭐 다치고 죽고 이런 일이 있었고요. 그다음에 이제 아바단이라는 남서 쪽에 이제 석유가 굉장히 많이
나는 도시에 그 영화관에서 불이 나 가지고 그 400명이 타 죽습니다. 그 몇백 명이 400명 어쨌든 몇백
명이 타 죽는데 이때 이제 이거를 가지고 그 약간 음모론이 돌았어요. 음. 그니까 정부에서는 이게
공산주의자들이 부르다고 했지만은 반정부 세력 입장에서는 이거는 이제
공산주의 때로잡다가 내지는 뭐 어떤간에 그 페르시아 아 팔레비의 비밀 경찰 사와크라는 애들이 있는데
사와크가 불러질렀다라는 식으로 이제 그 얘의가 됩니다. 그이 두 사건을
이란 혁명의 전개와 권력 투쟁
기점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이제 벌어지는데 당연히 이제 사람들은 이거이 시위는 금방 진압이 될 거라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은 샤가 이제 워낙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고 어 근데 봐도 나름 잘했고 테랑가 보면은
정말 현대적인 도시에 어 여성들 막 자유롭게 하고 다니고 교육도 많이 받았고 사람들 뭐 잘 살고 이러던데
했는데 그 밑에 있는 어떤 그 분노의 규모를 몰랐던 거죠. 예. 혁명이 이제 일어납니다. 정확히 처음에
시작했는데 이제 40일 주기로 걷잡을 수 없이 약간 지수적으로 기하급수로
증가를 합니다. 이맨이 40일이 재밌는 숫자인게 이게 장례식 그거예요. 한국도 49제잖아요.
이란도 이제 40일 주기로 이제 장례 문화가 있는데 예예. 그러니까 한번 시위가 일어나서 누가 죽어요? 발포를
해서 본에 맞아서. 예. 그럼 40일 있다가 그 장례식하로 사람들이 더 모이는 거예요. 근데 아까 말했지만
시아파 사상은 그 순교라는게 진짜 중요하거든요. 그니까 이한님들이나 그 정부에서 말하는 거 보면은 뭐만 하면
순교했다, 순교했다, 순교했다 하는게 시아파에서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죽어 나간 그 이맘 후세인의 그 카르발라 참극이라는게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거를 계속해서 소환이 되는
거죠. 음. 음. 그래 갖고 40일이 되면은 순교자에 대한 추모가 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여기에 또 이렇게 강제적으로 진압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또
40일이 지나면은 또 순교자를 위한 수모이 커지고 막 이런 거라는 거죠. 예. 그 과정에서 이제 정권이 그냥
뒤집힌 거죠. 너무 많은 시비대를 감당하지 못해서. 그래서 왕이 그냥 탈출을 합니다. 뭐 이집트로
탈출했다가 뭐 멕시코였나 뭐 어쨌든 막 그쪽으로 가는데 그 이제 정권이 뒤엎혔으니까 이제 임시 정부가
들어서죠. 근데 아까 전에 아까 누구죠? 보사데크 그리고 이제 호메인이요 두 사람이 있는데 지금
말씀들어 보면은 일종의 그 민중봉기 같은 거잖아요. 뭔가이 호메이니가 뭐 이거를이 뭐 해서 우리 왕을 뒤집자
뭐 아니면은 모사데크가 야 왕을 뒤집자 뭐 이래서 만든 건 아닌 거잖아요. 모사데크는 왕을 뒤집자가
아니라 이제 이판 군주정에서 총리인 내가 좀 권력을 가져야 되고 총리인 나를 중심으로이라는 석유를
구교하자라는 근데 어쨌든 그 민중들을 본기케 해서 그니까 형 그 봉기를
이끌고 내가 나를 따르라 해가지고 왕을 뒤집은 건 아닌 거죠. 맞습니다. 예. 그러니까 러시아
혁명도 똑같은게 그 러시아 혁명에서도 그 차르죠. 예. 차라 뒤집힐 때 아무도 그 뒤집힐 거라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냥 거리에서 누군가 시위를 했는데 갑자기 그게 진압이 되고 갑자기 그게 사람들이 이미 이제
약간 건초처럼 쌓여 있었던 장작처럼 쌓여 있었던 불만에 불씨가 당겨진 거고 홈메인이나 뭐 다른 어떤 이런
혁명의 주역들도 어 이거 뭐야 하면서 빨리이 사태에 대응을 해야 된다라고 하면서 이제 들어가기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혁명을 주도했다라기보다 혁명은 일어났고 그 혁명을 누가
주도할 거냐 그죠. 도한 사람들이 먹은게 아니라 일어난 혁명의 주권을 누가 극복할 것이냐로 정말 혈투가
이제 벌어지게 되는 거죠. 거리에 이제 그 아까 말한 수많은 그 학생 단체들이 있어요. 그 그다음에 비밀
지하 단체들 예예. 한국도 예자 뭐 그랬듯이 그 단체들끼리 정말 패싸움하고 막 총으로 싸고 막 이러
약간 탈레반이 약간 그런 느낌 아니에요. 공부하고 탈레반은 이제 근데 도시가 아니라 농촌의 기반을
뒀다는 점에서 좀 다르고이 사람들은 다 교육을 엄청 잘 받은 사람들이 주도를 하죠. 옛날에 386 블랙서클
지하 서클 같은 느낌. 예. 그렇죠. 예. 그렇죠. 그런 상황에서 이제이 혁명의 조속권을 누가 가지냐로 가지고
싸움을 했을 때 이제 아까 말했지만은 샤가 이제 왕이 이렇게 있으면은 공산주의자가 있고 이슬람주의자가
있는데이 둘이 이제 서로 이제 일단은 약간 동맹을 맺은 느낌이었잖아요. 이쪽에선. 공산주의자들은 이슬람
말하고 이슬람주의자들은 공산주의 말하는 거 같고 이제 그렇게 동맹을하면서 샤를 뒤집었으니까 이제 누가 이거를 주도할 것이냐 이제
경쟁이 되게 되는데 이때 소련이 지시를 내립니다. 일단 미국은이 사태를 파악을 못 하고 있었고 뭐지
이거 하면서 있었고 소련은 이때 이제 종교에 대한 약간 생각을 바꿉니다.
자기가 보니까이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종교를 무시하면 안 될 것 같다. 음 종교가 그리고 좀 진보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면 있는 거 같아. 이용자면 이란공산당이라고 하는 투대당인데요.이
당을 비롯한 소련이 통지하는 사회주한테 일단은 호메인이 편에 붙어라라고 지시를 내니다. 아 그리고
여기서 굉장히 큰 오판을 한게 성직자들이 어떻게 제철소와 탱크를
갖고 있는 나라를 통치를 하겠어. 음. 음들도 통치를 하려면은 일단 샤를 왕정이 만들어낸 엘리트들은 쓸
수가 없으니까 통치를 하려면 그래도 공장 굴려본 노동자들과 공산당원들이 필요할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을 해서이
사회주의자들한테 이제 호메인이한테 이제 붙으라고 지령을 내렸고 그걸 충실히 따릅니다. 그러면서 이제
호메인이를 중심으로 하는 권력 작업들이 시작이 되고 있었죠. 왜냐면 조직이 근데 있어야 되잖아요. 모든 어떤 정치운동은 모스크가 이제 정치
조직이 돼줍니다.이란 같은 경우에는 이제 시합하니까 성직자들이 하나하나가 이제 교육을 많이 받고 번위가 있는
편인데이 위계가 이제 있거든요. 그니까 어떤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누구 밑에서 배웠고 얼마나 여기서
높은 명성을 쌓았냐 이게 중요하고 그래서 만들어진 말이 이제 아야라 신의 뭐 눈 신의 증거 뭐 이런
뜻인데 그니까 이제 시아파에서 굉장히 학식이 높은 사람이 이제 아톨라고 그 아톨라 중에서도 더 이제 높은 사람을
이제 마르자의 딱끌리더라고 하는데 이제 모방의 원천이란 뜻입니다. 약간 약간 큰 스님들 보면서 저 스님만
따라하면 그니까 주교 축기경 약간 요런 느낌도 나네요. 예. 예. 그 명식적인 관 조직이 있는 거
아니지만은 뭐 그런 위계가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이 어떤 학교에서 배워서 누구 밑에서 배워서 내가 이제 어느
이슬람 혁명과 종교 네트워크
사원에서 가르치느냐 이게 다 이제 중요한 네트워크고요.이 전국에 깔려
있는 모스크들을 통해서 도시의 이제 빈촌부터 농촌 마을까지 이제 이슬람
주의자들이 이제 자기 설교를 막 퍼트리는 거죠. 이슬람 공화국을 만들어야 됩니다. 이슬람 혁명을 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혁명은 낫고 그러면이 혁명이 났으면은 샤의 그 체계 다음 체계가 무엇일까에
대한 주도권 자툼에서 종교 쪽으로 모였고 거기에 대한 전국적으로 이제
그러면은 그 내가이 나라를 어떻게 하겠습니다라는 그런 조직은 그 종교의
그 체계 그 행정 체계라 그래야 되나 어떤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렇게 쭉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는 거군요. 네.
1979년 이란 혁명과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어 그런 와중에 자유주의자도 있습니다.이 세력 구도에서. 그니까 왕을 지지하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이
있는 거죠. 당연히. 그니까 왕정이라게 독재정이고 비밀 경찰 운영하고 막 감옥 정치범 소용소
만드니까 당연히 이제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던 또 미국에서 공부한 그런 사람들이 이제 있었고 이제 메어디
마자르간이라는 그 임시정부 총리였나 뭐 맡으신 분이 이제 있었는데 어
그나 이제 사회주의 이슬람주의 자유주의 뭐 이런 식으로 세력이 있었다가 사건이 터지죠. 1979년
그 혁명 한창 와중에 미국 대사관에 이제 그 앞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이제 담을 넘어 가지고 대사관에
들어갑니다. 음. 인질극을 버리죠. 그다음에 무려 444일간. 오 400일간 인질극 1년 넘게 한
거네요. 예. 그러니까 요구 사항은 미국이 이제 미국에 갖고 간 왕과의 금미라든가 재산 같은 거 다 반환하고
왕도 넘겨라. 우리가 이제 재판해야 된다. 이런 요구 사항이 이제 있었고 미국 입장에서 이걸 받아 줄 수가
없죠. 어쨌든 자기 동맹인데 이란이 자기 동맹이었는데 이제 그러면서 이제이 대사관 문제로
들러싸고 미국 대사관에서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을 가지고 이제 대치가 이제 크게 벌어지는데 저 여기 이제
테란 갔을 때 제 숙소 앞이 바로 여겨 가지고 제 바로 갔는데 그 이제 제가 이제 한국에서 왔습니다. 뭐
역사 공부해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하니까 저한테 딱 묻더라고요. 혹시 영화 아르고 봤냐? 아 아르고 아르고
영화가 이제 밴 애플렉이 아마 주연을 맡았을 텐데이 사건을 다룬 이제 미국의 구출 작전을 다룬 영화죠.음
음. 그러면서 이제 봤습니다라고 하니까 우린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어라고 하면서 자기들 입장을 막
이제 보여주는 아 그 아르고는 아무래도 미국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니까 예. 어 어쨌든 이제 그
444일간에 이제 인질극 과정에서 미국과 대치가 벌어졌을 때 호메인이라는 사람이 이미 이제이
사람이 혁명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한 명씩 한 명씩 자기에 동의하지 않은 세력들을 쳐내기
시작하는데 어 지금 미국하고 지금 우리가 지금 대치를 하고 있고 미국이 지금 모사데크를 날렸듯이 우리 혁명을
또 이렇게 위협하고 있는데 자유주의자들은 뭐지 하면서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탄압과 숙청이
이라크의 침공과 시아파 혁명
시작이 됩니다. 근데 이제이 상황에서 한 번 더 나가죠. 이게 그 사유주의자들만 해도 그렇게까지 세력 기반이 많지 않았는데 공산주의자들은
또 다른 문제였죠. 노동자들의 이제 편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죠. 거기는 소련도 뒤에 붙어 있고 예. 네.
근데 그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혁명을 막 하면서 어떻게 나라를 만들어야 될까 막 국민 투표를 해야 되나 이러고 있는데 갑자기 이라크가
치들어옵니다. 아 전쟁이 났다고요? 어 왜 왜 쳐 들어왔어요? 이라크는 갑자기 뭐 몇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이
가장 뭐 이제 일반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하나는 이제 이라크 내부에 있는 시아파들 중요했다는 거죠. 그
이라크라는 나라가 이제 인구의 10%의 소수민정이 쿠르드가 있고 그 90%의 아랍인들은 30%의 순리파와
60%의 시아파로 나뉘는데 있는데 사다무세인는 순위파의 대표였단 말이죠.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었고
세속적이자였는데 그냥 동네 친구들을 모으다 보니까 나라 엘리터를 다 순입하러 채운 건데 시아파들이 굉장히
소수 그 뭐랄까 소해감을 느끼고 있었고 근데 이제 아까 말했지만은 이런 혁명이라는 거는 그 시아파
혁명이고 그 기본적으로 이제 그 사회주의 물을 좀 먹었기 때문에 냉전 시대에 있었던 그 사상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네.이 이 혁명은 한 나라에서 끝나면 안 되는 거고 모든 나라에서 혁명이 있어야 되는 거고
이란노로 이제 모스타자핀이라고 하는데 피역합자 고통받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이 모든 고통받은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서 계속해서 혁명을 해야 된다라는게 그 이런 혁명 당시의 컨센서스였습니다. 어주의
혁명 같은 느낌이네요. 그 그걸 배 거기서 배웠죠.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 이라크 바로
이라크와 이란의 갈등과 전쟁의 시작
이란에 붙어 있는 나라의 저 바트당 정권 사다세인의 억압받는 60%의
시아파들을 우리가 해방시켜야 된다라는 식으로 호메이니가 막 얘기를 하는 느낌이 나니까 사다무생 입장에서는
우리는 잘 살고 있었는데 네. 네가 왜 우리 애들 선동해 가지고 불란을 일으켜라고 해서 이란을 공격했다.
하나가 더 있는 게 그 이제 쿠웨이트가 있고 이라크가 있고 이란이 있는데 여기가 하나같이 다 석유와
가스가 엄청나게 묻혀 있는데 여기에 이제 그 메소포타미아죠. 이가 그니까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가 하구에 강
따라서 사실 수로가 많이 바뀌기 때문에이 국경 문제가 엄청 분쟁이 많았고요. 아 혁명 직전에 이제 그
샤 팔레비랑 그 후세이랑 국경 거의 조약을 약간 협의를 합니다. 예.
근데 딱 보니까 이란이란 나라가 지금 혁명이 나와서 휘청거리고 있고 저 나라가 그래도 그니까 이라크는 쏘렌
편이었는데 저 나라가 이제 미국산 무기, 미국에서 훈련받은 장교, 미국의
지원 같은 거로 엄청나게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어서 좀 무서운 나라였는데 보니까 혁명한다고 장교들은
다 감옥에 가두고 군대도 뭔가 좀 약간 상태가 안 좋은 거 같고 음 이거는 해 볼 만 하겠는데 그러면은
우리가이 섬들 그다음에 국경 지대 다 먹은 다음에 여기는 유전을 우리가 다 먹을 수 있지 않나? 음. 명분과
실리가 다 있는 상황이었죠. 그렇죠. 그러면서 전격적으로 공격을 취하게 되고요. 사다분세인이 무려 8년간
양측 합쳐서 100만 명 정도가 죽었다고 평가받는 아 이게 이란이라크 전쟁이죠. 어 그니까 혁명하고 되게
이란의 내부 정리와 혁명수비대의 성장
맞붙어 있네요. 그렇죠. 예. 이제 그런 상황에서 이라크군이 엄청난 기세로 이제 공세를 시작을 하는데
아까 말했지만 실제로 이란이 취약했습니다. 왜냐면은 혁명의 나라의 혼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이제
쳐들어오니까요. 그다음에 이라크이 상당한 강군입니다. 그러니까 오일쇼크로이 나라도 이제 이득을 받기
때문에 소련제 무기들을 굉장히 많이 사고 있었고 어 그런 상황에서 이제
몰려 들어오니까 이런 입장에서 굉장히 당황을 했고 네 호메이니가 여기서 이제 측명을 내리죠. 그 일단은
감옥에가 있던 자기가 잡아가둔 장들을 풀어 줍니다. 야, 너희들이 비록 저
왕에게 이제 부역하면서 우리 민중을 짓밟지만은 그래도 우리 조국인을 지켜야지 그렇지
하면서 뭐 외세가 쳐들어오면은 뭐 내부 세력들은 단합을 해야죠. 그죠? 그러면서 이제 일치단결 그 순간을
만들어 냈는데이 과정에서 눈의 가시들을 제거를 하는 거죠. 공산주의자들을 소련에 지금 나라
팔아먹겠다는 거 아니냐? 이라크도 소련 편이고 그러네. 예. 뭔가 이제 분위기가 좋게 그렇게 흘러가면서
당시에 이제 원래 혁명할 때는 같은 편이었던 수많은 사회주의 단체들이 있거든요.이란 투대당이라는 공산당도
있고 뭐 모자헤딘의 할 인민 모자딘이라는 이름도 무시무시하죠.
이 다 이제 거의 뭐 감옥에 가거나 교수하거나 총하거나 이런 식으로 좌파들을 다정 한 다음에 전쟁을
하니까 나를 중심으로 뭉쳐하면서 홈메인이 체제가 만들어지고이 과정에서 탄생하는게 혁명숲이 됩니다. 아
그러니까 어쨌든 이제 군대는 그 풀어져 가지고 장교들을 이제 이라크군과 싸우게 했잖아요. 근데
혁명이 싫다고이 장교들이 총뿌리를 돌려버리면은 아 그래서 군인하고 혁명 수비대가 따로 있는 거군요. 못 믿는
거죠. 혁명에 대해서 충성을 할지 그러니까 그 샤를 중심으로 했었던 군조직이 있었던 거고이 사람을
잡아넣는데 전쟁이 나니까 얘를 다시 풀어서 전쟁을 하게 했고 근데 얘네한테 무기를 지어 주니까 다시
총뿌리를 돌려올 거에 대비해서이 군대를 견제하기 위한 또 다른
군인으로서의 혁명 수비대가 나오는 어 뭐 혁명 수비대의 탄생 에피소드도
되게 재밌는데 그 당시에 이제 테란에 이제 그 여러 정치 졸지이 있다 했잖아요. 당연히 호메인이를 지지하는
그 정치 세력들도 개파가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걔들끼리도 막 세력 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누가 이제
호메니의 말을 제일 잘 듣냐? 누가 해계먼을 가질 것이냐? 근데 그렇기 때문에 얘들이 단압이 안 됐는데 이걸
단합의 필요성이 느껴지니까 어떤 한 정치 조직의 이제 수장이 이제 다른
조직들을 다 초청을 해가지고 회의를 열었어요. 그다음에 이제 문을 딱 닫은 다음에 총 딱 꺼내들고 오늘부로
통합 안 하면 다 죽는 거로 하자 해가지고 이제 이때 이제 혁명 소비대의 원형이 탄생을 하는데요.
어, 근데 이제이 과정에서 그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모두 모여라고 이제
했을 때 젊은 남자들 그니까 이란이 이제 어쨌든 전통 국가는 이제 인구 구조가 피라미드 형이니까 예. 그
젊은 그 남성들이 대부분 어떤 사람들이냐면 아까 말했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에요. 음.
음 마을 농촌 도시민 이런 사람들이 이제 그 남자애들이 이제 딱히 뭐
이제 그 삶이란게 팍팍한 상태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난 가야 되나라고 하면서 자원 입대를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수가 혁명 수비대로 들어갑니다. 야심가들이 들어가죠. 이념형보다는 이번 전쟁에서
활약을 하면은 나라를 지키면서 나도 이제 뭔가이 나라를 위해서 출세할 수
있다. 내지는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좀 공적인 마인드가 있다면은 이제 그런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이라크 전선을 향해서 돌격을 하고요. 이때 이제 근데 이라크이 더 강난 장비와 무력과 막
화학탄도 쓰는데 이때를 거의이 총만 들고 있는이 소년병들이 그냥 돌격해
가지고 인간 지뢰 제거 같은 것도 하거든요. 어 지레밭을 그냥 돌격으로
몸으로 돌파해라. 화학탄이 막 쏟아지는데 화학 장비도 없이 막 뒤집어 쓰고 이런 식으로 전쟁을 해
가지고 이란과 이라크 이란에 이라크에게 뺏겼던 땅들을 거의 다 되찾아요. 그니까 이라크가 이제
상황이 보니까 사다모세인이 어 이대로 가면은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라고 하면서 휴전 제의를 하는데 이런
호메이니가 그런 거 없다. 끝까지 가자라는 식으로 이제 전쟁을 계속하면서 8년간 전쟁을 하게 되는
거죠. 예. 예. 그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냐면은 어 전면적인 근대화가 일어납니다.
전쟁의 결과와 이란의 근대화
왜냐면은 그 아까 말했지만은 그 레자샤와 모아마드 레자샤를 거치면서 근대화를 위한 기반은 만들어진
거예요. 관료도 생겼고 전문가 엔지니어도 생겼고 유학파도 생겼고 과학 기술도 있고 대학도 있고 있는
건 있어. 근데 이들이 좀 약간 그 기득권층 중심으로 근대화를 진행했기 때문에 그 농촌이라든가 도시 비밀을
소외를 시켰기 때문에 그 간극으로 이제 불만이 터진 건데 근데 이번 혁명은 그 농촌민과 도시 비밀이
정권을 잡은 거잖아요. 어쨌든 그리고 모스크를 통해서 전국 네트워크도 있고 그래서 이제 판례 만들어 둔이 근대화의 기반들 엔지니어들 대학
학자들 관료 공무원들을 싹다 이제 국가 근대화를 위해 총동원을 시켜라 해가지고 음 약간 한국 세마을
운동하듯이 근데 전쟁이 났으니까 어쨌든 내부에서의 그런 불란들이나 이런 거는 어느 정도 좀 정리가 됐을
거고 도시민이나 그 농촌에 있는 어떻게 군이 됐든 뭐가 됐든 어딘가에서 뭔가 역할을 하게 됐고
자기들이 권력을 또 잡은 상황이니까이 체계 안에서의 불란이 사라지면서 체계
자체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아이런이네요. 그 예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슬람 공화국 정부에서
여성들이 훨씬 더 글을 많이 읽게 됐고요. 어 어 유아 사망률 확 줄어들고 문회율 뭐 보건 관련한
지표가 전면적으로 개선이 됩니다. 그럼 어쨌든 이슬람 혁명은 성공한 혁명이 됐네요. 그렇게 된 거죠.
그러니까 혁명과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지만은 혁명 그니까이란 이라크 전쟁이 88년에
끝난 시점에서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진맥 맥진했죠. 전쟁 당연히 힘들고 가난해지고 일란이 그동안 싸운 부도
막 날아가고 이랬지만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뭔가 이거 혁명인데 삶을 바꾼 거예요. 음. 나는 원래 학교
교육도 못 받았는데 내가 교육도 받게 되고 출세도 하고 이렇게 되는 거죠. 이제 그런 과정에서 이제 특히 어떤
사람들이 수혜를 받냐면은이란 이라크 전쟁에서 몸을 바쳐 싸웠던 사람들이 수혜를 받는 거야. 체제 입장에서
당연히 이들이 충성심을 입증했으니까 보상을 해 줘야 되죠. 그렇죠. 군인들에게 보상을 해야죠. 이면은 그
어떤 마을에서 100명 정도가 지원을 해요. 뭐 모함마드니 레자니 뭐 핫산이니 이런 애들이 100명 정도
이제 이라크 전쟁에 뛰어주겠다고 중대를 결성해 가지고이 사람들 혁명 수비자 하나로 소년병으로 나가서
이라크고 미사일 하나 맞아서 50명 죽고 화학탄 맞아서 한 30명 죽고 지레바 돌격하다가 다섯 명 또 죽고 남은 막 15명이 사람들은 엄청난
엘리트들이 되는 거예요. 음 최대 입장에서는 너희들은 폭탄의 저 지밭을 뚫고 성공 승리에서 돌아왔으니까
너희들은 이제부터 우리 최제 엘리트다.음 음.이 죽은 사람들 있죠. 100명 중에
죽었으면이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 엄청난 보상이 순국 선열의 이제 그 약간 보훈 개념으로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면서 이들이 이제 체제의 이제 반석이 되어집니다. 어 그리고이 사람들 수가 만만치 엄청 아까
말했지만은 이게 총력전이기 때문에 그 지금이란 이스라엘 싸우는 건 비교도 아닐 정도로 무시무시한 수준으로 싸운
전쟁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수가이 전쟁을 통해서 이슬람적 근대와의 세례를게 되는 거고 당연히이 사람들
입장에서 혁명이 너무 고마운 거죠. 근데 이제 시대가 이제 바뀌게 되는 거죠. 역설적으로 89년이 됐을 때
이란 혁명과 지도자 교체
이제 소련이 망하죠. 그리고 호메인이가 죽습니다. 음.이 과정에서 이제 호메이니가 어 마지막으로
정적들을 다 죽이고 가거든요. 아 그래요? 최후의 정적들을 다 죽이고 가는데 이제 내 제자인 하메이를 시켜
가지고 한국 나이로 51세이 젊은 지도자였는데 전문가 회의라고 하는 그니까 이란의 이제 체제가 민선
대통령이 있고 국민 투표를 통해 당선되는 대통령이 있고 그다음에 최고 지도자 맨날 요즘에 문제가 되는 그
지위에 라흐르라고 하는데요.이 라흐르는 뭐 여러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선정이 된 전문가 회의라고
하는 이슬람 신학과 법학의 권의자들이 이제 간선제로 선출을 합니다. 그니까이 과정에서 이제 근데
간선제라는게 별 의미가 없는 거 아니에요. 2분 된 다음에 지금 계속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정신이기
때문에 다음에 어떻게 될지 우리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게 뭐 간선인지 아닌지 뭐 한 번 했는데 뭐 어떻게 하겠어? 어쨌든 이제 그
상황에서 호메이니 다음에 하메네이라는 분이 최고 지도자가 되고 그다음에 이제 대통령은 랍프산잔이라고 하는
사람이 됐는데요. 예. 그러니까 이제 89년이 됐을 때 사람들이 혁명에 또 지쳤어요. 그러니까 혁명을 통해서
혁명의 피로와 국제적 영향
당연히 아까 말했지만 수회받은 사람이 생기고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생기고 발 사회 개층 이동이 엄청나게 일어나
가지고 중산층이 된 사람도 생겼지만은 네 혁명 시대 끝난 거죠. 소련이 망했으니까. 근데 사실 혁명이라는게
계속 혁명을 할 수 없는 거잖아요. 혁명은 되고 나면은 그다음에 뭔가 새로운 레짐이 만들어지는 거지.
그리고이 레짐이 마음에 안 들면 체계가 마음에 안 들면 또 혁명을 하는 거지. 그게 혁명만 계속하는 건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한나라에서만 혁명이 있으면 상관없는데 네. 뭐 한국의 8, 7년 혁명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만 민주하면 끝나는 거죠. 말씀하신 대로. 근데이 소련이라든가 이란이라든가 이런 나라는 이게 한
나라 단위에 끝나는 혁명이 아니에요. 그럼 뭐예요? 그니까 소련 같은 경우에는 전 세계가 공산주의가 되는데잖아요. 아, 자기는 공산주의
국가라도 옆에 국가를 혁명을 일으키게 해서 공산주의와 해야 되는 거고 이게 계속 반복되는 거라고요. 그죠? 이게
인류의 사명인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는. 어 그러면 이슬람 혁명도 소 이란에서 그 정치 지도자
그니까 종교 지도자가 최후 지도자가 된 걸로 끝난게 아니라 옆에 있는 나라를 또 이슬람 혁명을 시키고
이슬람 혁명을 그니까 뭐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지구는 둥구니까 자꾸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이 다 이슬람 혁명이 돼야 이슬람 혁명이 끝나는 거라고요. 그렇죠. 그러니까 근데 뭐 그 그 뭐
전 세계가 물론 이제 이슬람 혁명할 필요는 없는데 근데 이슬람은 상징적인 어떤 건 중요한 거죠. 그니까
제국주의를 용납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슬람이라는 그 문명이 찬란했던 문명이 근대에 저격을 못
했다는 이유로 저 제국주의 짓밟히고 어 우리 이제 서양화가 돼 가지고
사람들이 이슬람도 잊고 살고 막 독재자들이 이렇게 아니면 사우디의 이제 왕가 같은 그런 사람들 이런
불리한 사람들 아까 말 그니까 미국에 지원 받아 가지고 자기네 권력만 유지하고 종교는이 잃어버리고 뭐 이런
걸 얘기하는 거 그니까 아까 이제 이슬람 그 시아파 혁명사상이란 혁명사상이라는 것이 그게 중요하됐잖아요. 압재자와 피역합자이
구도 그다음에 정의를 위한 순교 뭐 이런게 중요한데이 사우디 왕 너무 불리한 애들인 거고 음 사담 후세
얘는 진짜 용납이 안 되는 놈인 거고 그다음에 이제 이스라엘도 이제 있던 거죠 그중에 음 팔레스타인이라는
이슬람의 예루살렘이라는 이슬람의 성질을이 제국주의자들이 갑자기 들어와 가지고 유대인 국가를 세우고 미국의
비호를 받는다. 이건 용납이 안 된다는 거고 코메이니가 그래서 미국은 큰 사탄, 이스라엘은 작은 사탄이라는
말을 합니다. 음. 그니까 이게 무슨 중국이나 뭐 러시아까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이라는 나라, 이슬람
세계를 가장 이제 뭔가 억압하는 거 같은이 나라는이 없어져야 된다라고 그니까 정확히 없어지는게 아니라
이슬람 세계에서 나가라는 그거를 추구를 했던 거고. 근데 심지어 동족인 팔레스타인 이슬람 사람들을
억압도해. 억압도해. 불리해. 심지어 미국이랑 친해. 그렇죠. 이스라엘은
그거는 이제 용납이 안 된다는 거였죠. 음. 어 사실은 소련도 싫어. 그 같은 이유로 소련도 싫어했는데 소련도 이제 이슬람을
억압하고 있었으니까 소련 알아서 망했고 어 이제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이란
내부에서는 이제 그게 두 가지가 있는 거죠. 국내 계속해서 혁명을 해야 된다. 뭔
이란의 내부 갈등과 혁명 사상
혁명을 계속해요? 그러니까 이슬람의 율법과 도덕을 모든 사람들이 철저하게
따르도록 그 혁명을 해야 된다는게 있었고요. 이렇테면 뭐 체스 같은 것도 금지시키거든요. 아, 근데 거기는 혁명이란 단어를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 좀 다르게 쓰는 거 같아요. 그니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수적인 룰에 따라야 된다라고 한다
그러면은 그거는 혁명이 아니라 그냥 뭐 개몽이라든지 아니면 좀 더 법치 그니까 거기는 법이 또 종교니까 뭐
그런 건데 혁명이라는 단어를 그냥 다 그런데 같다 쓰네요. 어떻게 보면 약간 북한하고 좀 비슷한
면이 있는 거죠. 뭐마 하면 혁명적으로 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아, 공산주의 영향을 아, 그런
의미의 혁명 사회주의 영향을 좀 받 혁명적으로 종교의 윤리를 지켜야 된다. 예, 진짜. 아, 그거 진짜
너무 정확한 말씀이에요. 아, 진짜요? 그런식이 이제 이런 혁명의 사상인 거죠. 어, 우리 혁명에 대한
태직 이름도 혁명 수비되잖아요. 그러네. 예. 어쨌든 이제 그래서 막
국내적으로 막 음악도 약간 막 금지하려고 하고 뭐 체스도 못 하게 하려고 하고 여성들이면은 막 교육
같은 것 하는데 이제 가정법 같은 거는 엄청 다시 옛날로 막 돌아가게 하려고 하고 당연히 근데 사람들이
반발을 하죠. 왜냐면 이런 아까 말했지만 이슬람 혁명이라는게 호메이니를 따르는 사람만 산게 아니라
일단 뒤집어 놓고 패권을 호메이가 차지한 형태기 때문에 그네요. 이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갑자기 이게
왜 날벼락이냐 이거죠. 아니 내가 샤를 무너뜨렸지만은 이런 걸 원하는 거 아니었어. 그 그래서 이제
혁명과정에서는 엄청 중요한 사건이 뭐냐면은 희부터도 나는 희절대로 못 쓴다라고 하는 그 그 무조건 자유의
영역이야 된다는 희압을 벗는 여성들과 차도로를 뒤집어 쓰고 모든 여성들은 희압을 써야 된다라는 여성들이
거리에서 막 난투까지 아니고 대치를 하는 막 그런 식의 상황들이 막 벌어지니까이 정권 입장에서는 혁명을
계속돼야 된다. 아직도 저렇게 미국물 먹어 가지고 뭔가 도덕적으로 살지 못하는 애들이 있으니까 이거는 우리가
혁명적으로 억압을 해야 된다라는 시골에서 도덕 경찰 같은 것도 만들고 그런 거고 바깥에서는 이제 근데 그
혁명이라는 그니까 혁명이라는 단어가 자꾸 이제 제가 좀 헷갈리었던 부분이 저것도 혁명이네. 그러니까 혁명이라고
하면 우리는 뭔가 이게 있는 체제 그 현재 기득권에 대한 권력이 부분의 체제를 바꾸는 거를 우리는 혁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위를 바꾸는 거지. 근데 여기는 그냥 삶을 바꾸는 거 자체를 혁명이라고 하는 거네요.
그죠. 인간 존재 전체를 이제 혁명적인 주체로 만드는 거죠. 어. 그러다 보니까 저는 오히려 이슬람
혁명이라는게 자꾸 이게 헷갈렸던 부분들이이 부분이었던 거 같아요. 그 혁명을 일반인들의 어떤 사고 방식,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도 혁명이란 단어를 쓰는 거예요. 음. 그래서 이제 세계 전체에 대한 그 정확히
이제 중동 이슬람 이스라엘에 대한 혁명 그다음에 국내의 사회문화에 대한 혁명까지 해가지고 혁명을 계속 해야
된다라는 파벌이 있었고 코메인이 사후에 그다음에 이제 이미 10년이 넘게 지났으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고 그리고 계속 이제 말하는 소련 망한 이후에 혁명이라 거 없다. 미국의 시대가 열렸다. 우리도
적응해야 된다라고 하는 파벌로 나니다. 그리고 하메네이란 사람은이 사람은 굉장히 신중한 사람이고 약간
중제자 느낌이 강하거든요. 아 그 종교의 레디컬한 보수주의자가 아니에요. 그니까 당연히 이제이
사람은 그 혁명파죠. 그러나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그 나라를 통치하게 됐으니까. 그리고 이슬람 공화국이
어쨌든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가 있는 나라기 때문에 두 가지를 신경을 써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미니 어느
정도는이 사회의 불안, 불만 이런 것들을 우리가 챙겨야 돼. 안 그러면 우리가 또 반 혁명을 맞이할 수가
있다. 카운터 레루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그 불안이 당연히 있을 거고. 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이란이란 나라가 어쨌든 생존을 해야이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는 언제까지고이 무한한 혁명을 할 수 없다는 현실주의가 이제 작용을 이제 한
거죠. 음. 그렇기 때문에 이제 혁명의 가장 중심적인 가치는 지키되 어 이것을 이제 어떻게 이제
실용적으로 타협해갈 것인가 그 선을 내가 잡아주는게 이제 하메이의이 사람의 이제 역할이었던 것이고
89년도에 이제 됐을 때 그 라프산잔이라고 하는 사람 딱 중독파요.이 사람도 중파해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딱 한번 가운데를 잘
이란의 개혁파와 하타미 대통령의 등장
잡아 봅시다라는 식으로 이제 했었죠. 예. 그러다가 이제 97년 8년 뭐 이쯤에 이제 선거가 있는데 이때 이제
하타미라는 사람이 이번에 개혁파가 당선이 됩니다. 이제 어 개혁파가 라프산자니마에서 중독파. 근데 제가
예전에 들었을 때는 뭐 일하는 종교 지도자들 모여서 하는 회의에서 뭐 대통령 후보도 나가나 마나 막 정해
줘 가지고 그냥 보수 쪽에 사람들이 무조건 대통령이 되게끔 한다 그러던데 그때는 그런 정도는 아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정확히는 이게 어쨌든 선거를 이제 냉소적으로 보면은 혁명이나 이슬람 공학의 냉소적으로 보면은
이거는 짜고치는 사실 게임이 거죠. 자기들이 후보 정해 놓고 거기서 뽑으라고 하면은이 선거가 선거는
맞냐인 건데 근데 우리가 어떻게든 그 일단 반장 선거가 있어서도 다민
선생님이 조금 약간 연애력을 행사하잖아요. 민우가 반장이 되면 좀 좋겠는데 뭐 이런 식으로 그런 식으로
이제 후보들을 이제 그 몇 명을 지명을 해 주는 건데 그중에서 이제 개혁파 중에서 얘는 그래도 너무
막나가진 않을 것 같아라고 하는데 얘는 그래도 우리랑 좀 많은 통하는 애야라는 개혁 파들을 올려 주면은이
국민들 입장에서는음 공정하다고 느끼는 거구나. 공정하다까진 아니더라도 뭐라도 바꾸려면은 저 사람은 뽑아야 돼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아, 그러니까 개혁파 중에 제일 보수적인 애 하나 올려 놓으면 국민들은 야, 저 후보
중에 제일 개혁적인 애 이렇게 뽑는 그죠. 그런 구도네요. 예. 그리고 하타미 때만 하더라도 이란이 지금
같은 상황은 아니었어요. 일단 핵개발도 안 한다고 하고 있. 택개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어 화탐이라는
사람은 상당히 개혁적인 사람으로서 이제 적 굉장히 전향적으로 이제이 사람이 뽑혔고이 사람은 심지어
경제적인 신자유주의화도 합니다. 어 근데 대통령이 권한이 있어요? 내각을
이제 선임을 할 수가 있고 경제 정책이라든가 여러 사회 정책이라든가
상당한 이제 자율성이 있습니다. 다만 이제 그 핵심적인 국가의 외교 정책
그다음에 혁명 수비대에 대한 통제 권한 이제 이런 건 없는 거죠. 혁명 수비되는 종교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부서예요. 어, 군은 따로 있고. 네. 군은 따로 있고. 근데 둘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 혁명 수비대하고. 그러니까 처음에는 군을
이제 지키 군을 감시하기 위해서 혁명 수비대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가니까 혁명 수비대가 아까 말했지만은이란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이 사람들이 말 그대로 혁명성을 보여줬기 때문에이는 뭐 혁명이란 단어는 되게 여기다
저기. 그니까 제일 센게 혁명이네. 페르시아오로 이제 앵겔러이라고 하는데 그 일하는 젊은 애들한테 앵겔럽
얘기하면 제 치를 뜹니다. 진짜 그놈의 앵겔업 좀 그만 얘기하라. 제가 이제 앵겔 공부하러 왔다라고
하면은 진짜 미쳤냐는 말을 직접 많이 들었기 때문에 어쨌든 이제 그 이제음
대통령 개혁적인 대통령이 됐어요. 아 그니까 혁명 소비대가 자신의 어떤 정치적인 충성도를 입증을 해서 엄청난
보상을 받은 거고 엘리트로 이제 들어갔으니까이 사람들이 구경 기업들이나 막 이런 기업들을 장악을
해요. 아 군해만 있는게 아니고 네. 그니까 경제적인 이권까지도 굉장히 보상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 국방 예산에서도이 혁명 소비대 위조로 엘리트 병사들이 들어가고 그게
아까 전에 100명 나갔다가 85명 죽고 나무 15명요 사람들이 군뿐만
아니라 군 예산도 많이 받아다쓰고 장비도 첨단으로 받고 장비도 첨반으로 받고 기업 쪽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거죠. 경제력도 예. 그러니까 싸우면은 걔네가이기는 거죠. 이젠 처음에는 역전 관계가 역전된
거죠, 이제는. 그러네요. 네. 그리고 뭐 당연히 아무나 못 들어가고요. 대부분은 그냥 우리처럼 이제 징집돼서 군대에 들어가죠.
어쨌든 이제 개혁을 할 때 있어서 그 하타이라는 사람이 이제 그니까 이슬람 혁명이 아까 말했지만 사회주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형 혁명인데 소련님하고 사회주의가 사라지니까 그리고 워싱턴 컨센서스 경제 자유와
시대가 열리니까 이란도 이제 야 우리 좀 자본주의를 해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하면서 대대적으로
비즈니스를 풀어 줍니다. 국제 무역이 엄청 많이 나서게 되고요. 그때 한국 기업들도 당연히 많이 이제 진출을
했죠. 그러니까 그러면 어쨌든 그 아까 제가 대통령의 권한이 있냐라고 물어봤었던 부분이 그러니까 종교
지도자는 이제 나라의 어떤 정신적인 부분들에 대한 가이드를 주는 거고 그
안에서 경제를 어떻게 돌릴 거냐 이런 부분들은 충분히 유효성이 있다는 거네요. 그게 심지어 그게 사회주의자냐 공산주의자는
굉장히 큰사 결정인데 그런 부분도 대통령이 좀 권한이 있긴 있는 거네요. 네. 그렇죠. 그렇죠. 음. 그러니까 이게 아예 막 뭐랄까 중
그니까 역설적는중중동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를 이스라엘로 뽑고 그다음을 이란으로 뽑는다. 농담이
이제 터키를 제외하면은 어쨌든 이제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이 하이라는
분이 이제 미국하고의 관계 개선도 시도를 해요.이 혁명을 하고이 테란에 이제 대사관에 444일간의 인재극을
9.11 테러와 이란-미국 관계 변화
이제 펼쳤잖아요. 미국하고는 이제 관계가 엄청나게 나빠졌고 그리고 해즈볼라 문제 때문에 그 이것도 엄청
복잡한 얘긴데 어쨌든 이제 헤즈볼라 문제 때문에 미국 학원은 정말 사이가 안 좋아졌는데 어쨌든 우리가이
하이라는 대통령이 보기에는 우리가 다시 미국 주도의 세계에 돌아가야 되고 그 혁명의 어떤 그이 본질을
우리가 지키되 그래도 남들처럼 사는게 맞지 않나라는 운명간 대화를 해야 되지 않나라는 그런 이제 인식을
바탕으로 이분이 이제 굉장히 개혁적이고 전향적인 정책을 했고 하메이도 떨하지만은 시대가 그렇다니까
적은 적응해야지라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그런 협력을 할 만한 느낌도 열립니다. 91 테러가
이란에게 굉장히 호재처럼 보였어요. 어 2001년 911 테러 어제는 뭐
되게 현대적인 시기까지 왔네. 이제 밀레니까지 왔네요. 그니까 이게 어
이슬람 극단주의자 알카이다가 미국을 공격을 했었고 그러면 이스라엘 그 제
상상에는이란 입장에서는 미국이랑 좀 관계 개선을 좀 해보고 싶다 그러면은 이게 미국에서 이쪽에 알카이다를
공격할 때 약간 좀 도움을 준다거나 이런 방식으로 한번 우리 미국이랑 한번 관계 개설을 해 볼까 요런
시나리오라는 거죠. 저 정확합니다. 그러니까 일단은이이란 이슬람 공항국 그리고 혁명 사상이라는게 어쨌든
현대화를 지향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문명을 지키고 싶고 우리 그 문명에이 사람 도덕이 필요한 거지.
우리는 뭐 여성들 다 운전도 시켜주고 어 의사도 해주고 공학자도 만들어 주고 우리 이렇게 문명적인 체제인데
그냥 뭐 차도를 좀 쓰라고 하는 것뿐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데 이제 알카에다나 탈레반 아프가니스
탈레반은 완전히 다른 애들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음. 음. 그니까 이거는 이제 진짜로 이제 알카이다 좀
다른데 탈레바 같은 경우는 진짜 농촌 기반의 그 무장 혁명 세력이었고 그니까 완전히 그 옛날 시계 한국으로
치면제 조선 시대를 제현하고 싶어 했던 그런게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프가인스타이도 시아파가 있거든요.
탈레바는 순위파에 주도하는 애들인데 탈레반이 이제 아프가니스탄 시아파를
탄압을 하면서 또 억압 나왔으면 우리 또 혁명해야 되겠네. 그럼요. 아프간 시아파들이 엄청나게 탈출을
합니다.이란 지금도 그 40년째 남민으로 살고 계신 분들이 있어요. 엄청 많습니다. 이란에. 음. 어
그러면서 이제 탈레반이 안 그래도이란 입장에서는 뭔가 이제 위험한 거죠. 그니까 우리 시아파 친구들도 탄압을
하고 저기 애들은 이슬람 우리는 그래도 좀 운명적인 이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는데 쟤들은 좀 너무
야만적인 이슬람. 혁명이 좀 필요한 애들이네. 혁명이 좀 필요한 애들이다 생각했는데 마침 이제 91테로 이제
미국과 관객선을 원한 예예. 타미라는이 대통령 입장에서 보기에는 이걸 바탕으로 우리가 유거 협조를 할
수가 있겠다. 문명관 대화에서 같이 야만을 음 통제하자라는 어떤 그런 그
수사를 구사를 한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미국이 아프가이스에 침공을 하죠. 알카에다 지도자를 숨겨졌던 이유로. 근데 미국이 아프가 아무것도
몰라요. 진짜 그니까이 산악지대에 있는 부족들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근데 이런 사람들 아는 거죠. 음적
관계가 있기 때에 부족마다 다 세력이 다르잖아요. 얘네는 여기랑 친하고 쟤네는 저기랑 친하고 이거를 잘
알아야지 통제가 되는 건데 그때 등장한 사람이 솔레이만입니다. 아, 솔레이만이. 어, 솔레이만이는 거의
주인공급의 인물인데. 어, 주인공급의 인물이죠. [음악]
==

Gemini said



세진님, 요청하신 <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이란 2부]> 영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약: 혁명의 역설과 체제 공고화의 과정

1979년 이란 혁명은 단순히 왕정을 타도한 사건을 넘어, 종교와 정치가 결합한 독특한 신권 통치 체제를 구축한 전환점이었다 <cite>[1]</cite>. 혁명 초기, 이란 사회는 빈부격차의 확대와 팔레비 왕조의 서구화 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로 들끓고 있었다 <cite>[14]</cite>. 이 과정에서 이슬람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하려 했던 알리 샤리아티와 이슬람 기반 통치를 주장한 호메이니가 혁명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다 <cite>[11, 12]</cite>.

혁명 이후 발생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호메이니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cite>[3, 5]</cite>. 8년간 이어진 전쟁 과정에서 이란은 내부의 반대 세력인 좌파와 공산주의자들을 '국가 반역자'로 몰아 숙청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권의 핵심 보위 기구인 혁명수비대가 급격히 성장했다 <cite>[4, 5]</cite>. 특히 소년병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형성된 혁명수비대는 단순한 군사 조직을 넘어 체제의 경제적, 정치적 반석으로 자리 잡았다 <cite>[6, 7]</cite>.

이후 이란은 혁명의 피로감 속에서 하타미 대통령과 같은 개혁파의 등장으로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cite>[2, 238]</cite>. 9.11 테러 당시 이란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며 알카에다 소탕에 협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결국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cite>[239]</cite>. 이란 혁명은 현대적 문명을 지향하면서도 이슬람 도덕 체계를 강요하는 이중적 구조 속에서 내부 갈등과 국제적 고립이라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cite>[2, 15]</cite>.

평론: 신념이 삼킨 근대화와 잃어버린 시간

본 영상은 이란 혁명을 단순한 종교적 광기로 치부하지 않고, 당시의 사회적 불평등과 민족적 자존심이 어떻게 종교라는 틀을 통해 폭발했는지를 예리하게 분석한다 <cite>[8, 14]</cite>. 특히 이란-이라크 전쟁이 혁명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전이 아니라, 내부 숙청과 독재 체제 구축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통찰은 매우 날카롭다 <cite>[4, 5]</cite>.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혁명이 약속했던 '해방'이 또 다른 형태의 억압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이다 <cite>[2, 241]</cite>. 혁명수비대의 탄생과 성장은 국가의 자원을 특정 엘리트 집단에 집중시켰고, 이는 결국 '잃어버린 40년'이라 불리는 경제적 정체와 사회적 경직성을 초래했다 <cite>[7, 247]</cite>. 서구적 근대화에 반대하며 시작된 혁명이 역설적으로 종교의 이름 아래 권위주의적 통제 시스템을 근대화했다는 점은 현대 정치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론적으로 이란의 사례는 민중의 분노가 구체적인 대안이나 민주적 절차 없이 특정 이데올로기에 매몰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슬람 혁명은 이란 국민에게 자부심을 주었을지는 모르나, 세계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와 번영이라는 기회비용을 지나치게 크게 치르게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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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슬람 혁명 40년: 혁명·전쟁·근대화의 역설>

이 영상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의 배경과 전개, 그리고 그 이후 40년간 이란 체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를 설명한다. 핵심 축은 세 가지다. 첫째, 혁명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둘째, 왜 전쟁과 숙청을 거치며 종교 권력이 공고화되었는가. 셋째, 그 결과 이란 사회는 퇴보했는가, 아니면 역설적 근대화를 경험했는가.

혁명의 배경에는 팔레비 왕조의 급속한 서구화와 권위주의 통치가 있었다. 외형상 테헤란은 현대화되었고 여성의 사회 진출과 교육 수준도 상승했지만, 농촌과 도시 빈민층은 소외되었다. 빈부격차와 문화적 박탈감이 누적된 상태에서 콤 신학교 시위와 아바단 영화관 방화 사건이 기폭제가 되었다. 시아파 특유의 ‘순교’ 서사는 40일 주기의 장례 집회를 통해 시위를 기하급수적으로 확대시켰다. 혁명은 특정 지도자가 계획해 일으킨 것이 아니라, 폭발한 대중 봉기를 누가 장악하느냐의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두 인물이 중요했다. 알리 샤리아티는 이슬람과 사회주의를 결합해 혁명 이념을 제공했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종교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 조직화를 이끌었다. 모스크와 성직자 위계 구조는 혁명 이후 권력 장악의 기반이 되었다. 혁명 직후에는 이슬람주의자,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가 공존했으나, 1979년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분수령이 되었다. 미국과의 대치 속에서 호메이니는 자유주의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집중했다.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체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혁명 확산을 우려하고 국경 분쟁과 전략적 계산을 바탕으로 침공했다. 8년간 100만 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총력전은 혁명수비대(IRGC)의 부상을 낳았다. 혁명수비대는 기존 군을 견제하기 위해 창설되었으나, 전쟁을 통해 정치·군사·경제 엘리트로 성장했다. 전쟁 참전 세대는 체제의 핵심 지지 기반이 되었고, 그 가족들은 국가적 보상을 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쟁과 혁명이 ‘근대화’를 촉진했다는 주장이다. 팔레비 시대에 축적된 관료·교육·기술 인프라를 동원해 보건, 문해율, 여성 교육 지표가 개선되었다. 농촌 출신 청년들이 사회 이동을 경험하며 새로운 중산층이 형성되었다. 이는 혁명을 단순한 퇴행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1989년 호메이니 사망과 소련 붕괴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최고지도자로 <알리 하메네이>가 선출되고, 대통령으로 라프산자니가 등장하면서 실용주의가 강화되었다. 이후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은 개혁 노선을 추진하며 경제 개방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그러나 핵심 권력은 여전히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에 있었다. 이중 권력 구조는 선거와 종교 통치가 병존하는 독특한 체제를 형성했다.

이란 혁명 사상의 특징은 ‘혁명’을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 도덕·문화 개조 과정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종교적 규범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혁명적 사명으로 본다. 동시에 탈레반이나 알카에다와는 다른 ‘문명적 이슬람’을 자임한다. 9·11 이후 미국과 협력 가능성도 잠시 모색되었으나, 이후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이 영상의 강점은 혁명을 선악 이분법이 아닌 구조적 과정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종교 네트워크, 전쟁 동원, 계층 이동, 국제정세가 얽혀 체제가 굳어졌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특히 혁명수비대의 성장과 전쟁 세대의 사회적 보상 구조를 통해 오늘날 이란 권력의 실체를 이해하게 한다.

다만 한계도 있다. 내부 반대 세력의 목소리, 여성과 소수자의 경험, 경제 제재의 구체적 영향은 상대적으로 축약되어 있다. 또한 “혁명이 근대화를 낳았다”는 평가는 부분적 사실일 수 있으나, 정치적 억압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 영상은 이란의 40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 단정하기보다, 혁명·전쟁·근대화가 뒤엉킨 복합적 역사로 제시한다. 이란 체제는 단순한 신정 독재가 아니라, 전쟁 동원 체제와 종교적 정당성, 제한적 선거 정치가 결합된 독특한 국가 모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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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이란 현대사에 남긴 궤적과 그 이면에 숨겨진 권력의 메커니즘을 심층 분석하여 서술한다.

이란의 잃어버린 40년: 혁명의 역설과 신권 통치의 빛과 그림자

1979년 이란 혁명은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친서구적 근대화를 밀어붙이던 팔레비 왕조의 몰락과 호메이니를 정점으로 하는 이슬람 공화국의 탄생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중동의 지정학적 질서와 이슬람 세계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란이 마주한 현실은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냉혹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 혁명의 도화선: 근대화의 피로감과 종교적 네트워크

혁명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레비 왕조의 '백색 혁명'이 남긴 상흔을 들여다봐야 한다. 급격한 서구화와 세속화는 도시 중산층을 키워냈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시하던 보수층과 소외된 빈곤층의 반발을 샀다. 이때 알리 샤리아티와 같은 사상가들은 이슬람주의에 사회주의적 해방 신학을 결합하여 대중의 분노에 방향을 제시했다. 결정적으로, 세속 권력이 통제할 수 없었던 사원(모스크) 기반의 종교 네트워크는 혁명의 거대한 병참 기지 역할을 수행하며 호메이니라는 상징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2. 전쟁이라는 촉매제: 체제 공고화와 혁명수비대의 부상

혁명 직후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란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지점이자, 현 체제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다. 외부의 침략은 내부의 분열을 봉합하는 강력한 기제가 되었으며, 호메이니 정권은 이 시기를 틈타 내부의 반대 세력인 좌파와 자유주의 세력을 숙청하며 일당 독재 체제를 완성했다. 특히 이 시기에 탄생한 '혁명수비대'는 정규군을 견제하고 체제를 보위하는 핵심 조직으로 성장했다. 소년병들의 희생과 순교 정신을 바탕으로 구축된 이들의 영향력은 오늘날 군사를 넘어 정치, 경제 전반을 장악하는 거대 카르텔로 변모했다.

3. 문명적 지향과 도덕적 통제의 충돌

이란 체제의 독특함은 그들이 근대적 문명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공학자와 의사를 양성하며 현대적인 국가 시스템을 운영하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현대적 성취 위에는 '이슬람 도덕'이라는 엄격한 통제의 굴레가 씌워져 있다. 히잡 착용 강요와 같은 도덕적 규제는 단순한 종교적 실천을 넘어, 국민을 체제의 틀 안에 가두는 효율적인 감시 수단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현대적 가치를 향유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욕구와 사멸해가는 혁명 1세대의 교조주의적 신념 사이에서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킨다.

4. 잃어버린 40년의 본질: 고립과 정체의 늪

이란의 지난 40년은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정체로 요약된다.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이후 시작된 서방과의 갈등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낙인찍히게 했으며, 이는 만성적인 경제 제재로 이어졌다. 하타미 대통령 시절의 개혁 시도나 9.11 테러 이후의 전략적 협력 모색도 결국 불신과 강경파의 득세로 무산되었다. 국가의 자원이 생산적인 산업이 아닌 체제 유지와 혁명수비대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 속에서, 이란의 찬란했던 문명적 잠재력은 서서히 고갈되었다.

결론: 혁명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이슬람 혁명은 이란 국민에게 주권의 회복과 자부심을 약속했으나, 그 대가로 개인의 자유와 미래의 번영을 저당 잡았다. 종교가 정치를 삼키고 군대가 경제를 장악한 체제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란의 잃어버린 40년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특정 신념이 국가의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지울 때, 그 국가는 진보가 아닌 과거의 영광 속에 갇힌 화석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이란이 마주한 과제는 혁명의 유산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유산으로부터 어떻게 용기 있게 작별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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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잃어버린 40년,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전환이면서 동시에, 세속적 근대화 프로젝트에 대한 종교적·사회적 반란이었다. “잃어버린 40년”이라는 표현은 혁명이 약속했던 정의와 번영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전제한다. 그러나 그 40년은 단선적으로 ‘퇴보’라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혁명·전쟁·근대화가 얽힌 복합적 과정이었다.

혁명의 배경은 팔레비 왕조의 급속한 서구화 정책에 있다.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는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며 산업화·도시화를 추진했고, 여성 교육과 사회 참여도 확대했다. 겉으로 보면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현대화된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발전은 불균등했다. 농촌과 도시 빈민층은 소외되었고, 전통적 상인층과 종교 엘리트는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다. 비밀경찰 사바크(SAVAK)에 의한 탄압은 정치적 불만을 누적시켰다. 경제 성장과 문화적 서구화는 곧 “정체성의 위기”로 인식되었다.

이때 이슬람 사상가 알리 샤리아티는 시아파의 순교 전통과 사회주의적 정의론을 결합해 혁명의 언어를 제공했다.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구도, 정의를 위한 순교의 의미는 대중 동원의 강력한 서사였다.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망명지에서 이 담론을 정치화했다. 그는 이슬람 법학자가 통치의 정당성을 갖는다는 ‘벨라야테 파키흐’ 이론을 제시하며, 종교 권위를 국가 권력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혁명은 계획된 쿠데타가 아니라,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대중 봉기였다. 장례식 40일 주기를 통해 시위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왕은 해외로 떠났다. 이후 문제는 “누가 혁명을 장악할 것인가”였다.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이슬람주의자가 경쟁했지만, 모스크 네트워크와 성직자 위계를 가진 이슬람 세력이 조직력에서 우위에 있었다. 1979년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은 체제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미국과의 대치 속에서 자유주의 세력은 배제되었고, 혁명은 반제국주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혁명을 공고화한 결정적 계기였다. 사담 후세인은 국경 분쟁과 혁명 확산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이란을 침공했다. 8년간 이어진 전쟁은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지만, 내부 결속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혁명수비대(IRGC)는 군사 조직을 넘어 정치·경제 엘리트 집단으로 성장했다. 전쟁 참전 세대는 체제의 핵심 지지층이 되었고, 국가적 보상을 통해 사회 이동을 경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국가 동원을 통해 근대화를 촉진했다. 팔레비 시대에 구축된 관료제·교육·기술 인프라가 전면 동원되면서 보건, 문해율, 여성 교육 지표는 개선되었다. 특히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급증했다. 이는 “이슬람 혁명은 여성 억압만을 낳았다”는 단순한 서술을 수정하게 한다. 동시에 표현의 자유 제한, 문화 검열, 도덕 경찰의 활동은 개인의 삶을 통제했다. 혁명은 사회 이동의 기회를 열었지만, 정치적 다원성은 축소되었다.

1989년 호메이니 사망과 소련 붕괴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최고지도자로 <알리 하메네이>가 선출되었고, 대통령 라프산자니와 이후의 <모하마드 하타미>는 실용주의와 개혁을 시도했다. 하타미는 ‘문명 간 대화’를 내세우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고, 경제 개방과 시민 사회 확대를 추진했다. 그러나 혁명수비대와 최고지도자가 핵심 안보·외교 권한을 쥐고 있는 구조는 유지되었다. 이란 체제는 선거와 종교 권위가 공존하는 이중 권력 구조로 굳어졌다.

“잃어버린 40년”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잃었다는 의미인가. 하나는 국제적 고립이다. 미국과의 적대, 핵 문제, 경제 제재는 성장 잠재력을 제약했다. 또 하나는 정치적 다양성이다. 혁명은 다원적 연합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종교 엘리트 중심의 체제로 수렴했다. 그러나 동시에 잃지 않은 것도 있다. 국가 정체성의 자율성, 지역 강국으로서의 영향력, 그리고 사회적 이동의 경험이다.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민 사회와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국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슬람 혁명의 본질은 단순한 신정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반제국주의, 사회 정의, 종교적 정체성 회복이라는 세 요소의 결합이었다. 문제는 이 이상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권력 집중과 지속적 동원 논리가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혁명은 사건이 아니라 상태가 되었고, ‘혁명적 윤리’는 사회 전반을 규율하는 언어가 되었다.

따라서 이란의 40년은 잃어버린 시간이라기보다, 미완의 실험에 가깝다. 근대화와 종교, 민주주의와 혁명, 자율성과 고립 사이의 긴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실험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환될지는 이란 내부 세대 교체와 국제 질서의 변화에 달려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란 혁명은 중동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이며, 그 본질은 단순한 보수적 반동이 아니라 근대성 자체를 재해석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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