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9, 2026

Ken Geunyoun YI - 내가 꿈꾸는 회사 1,2,3 2108, 2108, 2406

Ken Geunyoun YI - 내가 꿈꾸는 회사 3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 Facebook

내가 꿈꾸는 회사 1
‘너는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 가지에 푸른 열매처럼,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삶에 가득히 넘쳐 날거야.’
‘너는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 있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와 언제나 함께 하시니’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죽기 전에 요셉에게 남긴 축복의 기도를 노래로 바꿔 부른 것이다.
창세기의 원래 축복시도 매우 예술성이 뛰어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노래의 재해석을 좋아한다.
사우디 집에는 태어날 때부터 앞다리에 장애가 있는 토끼 ‘쾅이’가 있다.
처음 데려올 때는 너무 어려서 아픈 아이인줄 몰랐는데, 와서 보니 앞 다리 하나가 접혀서 떨어지지 않는다.
상처가 곪고 피가 나서 치료해 주었지만, 워낙 많은 아기 토끼의 죽음을 지켜본 터라 쾅이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줄 알았는데, 결국은 고비를 이겨내고 지금은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우람한 어른 토끼가 되었다.
어느날 셋째 준하가, 이 찬양을 부르다가, ‘쾅인 하나님의 토깽, 사랑스런 하나님의 토깽, 나는 널 위해 기도하며, 널 위해 축복할거야.’라고 하고부터 이 노래는 ‘쾅이송’이 되었고, 우리집 예배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18번이 되었다.
쾅이와 함께 우리 집에 온 콩이는 덩치는 쾅이보다 작지만, 빠르고 힘이 세서 건강한 앞다리도 땅굴도 잘파고, 도망도 잘 다녀서, 혹시 집에서 도망쳐도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리라 생각하지만,
한 다리에 장애가 있는 쾅이는 혼자서는 땅도 파지 못하고, 느려서 혼자 살아남기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쾅이에게 이 노래를 불러 줄 때마다 살짝 눈물이 난다. 아픔이 있는 쾅이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히 넘쳐 날거라 생각하니 눙무리…ㅜㅜ
찬양 시간마다 눈물을 흘리는 아내와는 달리, 나는 그리 자주 눈물 흘리는 편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신나는 곡조의 이 찬양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낯선 땅에 와서 사업을 하는 나에게 요셉과 다니엘처럼 어려서부터 이방인의 나라에 와서 신앙의 거인으로 우뚝 선 분들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거부가 되어 돌아 온 사업가 야곱도 어떤 면에서는 부럽기도 하다.(물론 그의 고달픈 삶은 그리 본받고 싶지는 않지만…)
‘너는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 가지에 푸른 열매처럼,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삶에 가득히 넘쳐 날거야’
야곱은 어려서 잃어버린 요셉이 장성하여 이집트의 2인자가 된 모습을 보았을 때, 아마도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던 하나님의 비전은 늘 가나안 땅 안에 갇혀 있었다.
그 속에서는 푸르고 푸른 행복과 기쁨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가정 안에 국한된 것이었고, 그것이 가정 밖으로 흘러 나가지는 못했다.
비극적인 과정이기는 했지만, 요셉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나간 것은, 아브라함-이삭-야곱 가정의 축복이 처음으로 담장 밖으로 흘러 나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집트에서의 요셉의 삶은 그리 평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야곱의 말처럼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삶에 가득히 넘쳐 나는 것이었다.
비록 그 자신은 숱한 시련을 겪었지만, 그가 가는 곳은 어디나 이유 없는 번영과 축복을 누리는 아이러니한 만사형통을 경험했다.
‘너는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 있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와 언제나 함께하시니.’
야곱의 두번째 구절도 요셉의 삶에 그대로 이뤄졌다. 위태로운 순간을 많이 만났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강한 팔이 요셉과 함께 했고,
그의 목숨을 건져 내셨을 뿐만 아니라, 당시 알려진 온 세계를 구원하는 기적적인 구원의 역사까지 이어 가셨다.
나는 사우디에 와 있는 우리 가정이 예배 드릴 때마다, 담을 넘고 가지를 뻗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싱그러운 열매를 맺는 뿌리 깊은 나무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간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많은 은혜를 베푸셨다. 거의 빈털터리로 조그마한 월세방에, 여기저기서 얻은 살림으로 시작한 신혼집이 지금은 다섯 아이들이 마음껏 꽃피는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되었다.
많은 분들이 다섯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는 덕담을 건네시는데,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유없이 많은 축복과 은혜를 경험했고, 숱한 경제적인 고비를 거짓말처럼 통과하는 기적도 많이 경험했다.
그리고 우리의 사우디 생활은 우리 가족 안에 부어진 축복이 담, 즉 경계를 넘어, 가족 밖으로 흘러 나가는 첫번째 시도였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경계를 넘는 다는 것은, 이전에 내가 안정감을 누리던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모험을 동반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이라는 경계 속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던 우리 가정이, 그 경계를 넘어 가자, 그곳에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다양한 국적의 무슬림 이웃들이 나타났고, 정치적인 색깔이 다른 사람, 종교적인 색채가 다른 사람, 심지어 성 정체성이 다른 사람 등. 낯선 풍경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담을 넘는 과정은 그리 nice하지 않았다. 숱한 논쟁과 토론을 거듭했고, 기존의 안전지대에서 누리던 많은 관계들이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제는 깨달아 가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부르신 이상, 더 이상 우리는 담 안에서만 살아갈 수 없고, 담을 넘어 낯선 곳에 가서 푸르고 푸른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는 것을…
내가 꿈꾸는 회사는 바로 그런 곳이다.
사람보다, 가치보다, ‘이익’이 최우선시 되는 자본주의의 광풍이 불어 닥치는 세상 속에서
다양한 우리의 이웃들과 서로의 다름을 즐기고, 인정하며, 조화롭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곳.
나는 company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회사’라고 하면 뭔가 쪼이는 느낌이지만, company라고 하면 뭔가 친구같고, 동반자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partners라는 단어도 좋아한다.
내가 꿈꾸는 회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직원들의 다양한 관심과 개성 넘치는 삶이 희생되는 그런 곳이 아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숨긴 체,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위해 꾸역꾸역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그런 회사는 정말 no thank you다.
나는 개인의 삶과 회사 업무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그런 회사를 꿈꾼다.
마음은 딴 데 가 있지만, 월급을 위해 몸만 와 있는 그런 직원들을 원치 않는다. 몸은 어디에 있든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든지 업무가 가능한 그런 회사를 원한다.
내가 꿈꾸는 회사는 출퇴근이 없다. 사무실도 없고, 휴가도 따로 없다.
오늘 사우디에서 일하다, 내일 발리에서 노트북을 열고 급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회사라면, 늘 가족과 함께 업무를 보고 있다면, 굳이 휴가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냥 근무지만, 파리로, 로마로, 바로셀로나로, 치앙마이로, 세렝게티로, 경주로, 제주도로 바뀌는 것이지, 휴가라는 이름을 굳이 붙일 필요가 없다.
어느 곳에 있든지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곳을 치열한 비즈니스 전쟁이 벌어지는 사무실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회사들이 이런 비대면 업무가 얼마나 효율적인지 깨닫고 있다 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face to face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안다.
수십 번 통화하고, 줌으로 미팅해도 감이 오지 않던 일들이, 단 한번의 짧은 대면 회의를 통해 해결되는 일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분명 대면 업무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전체 업무 시간의 20%를 넘지 않는 대면 업무를 위해 굳이 사무실을 지키고 앉아 있는 것은 몹시 비효율적이라 생각한다.
물론 모든 업무 영역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맞다. 작업장에서 이뤄져야만 하는 많은 일들은 분명 일정 시간을 정해 함께 근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회사가 직원들을 통제해야 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통제당하는 인간은 편안함을 느낄 지는 모르지만, 결코 즐거움이나 행복감을 느끼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통해 보여주신 인간의 본성이다.
이집트에서의 노예살이는 철저히 통제된 삶이다. 강제노역을 마치면, 맛있는 빵과 고기로 배를 불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의 개성과 자유는 철저하게 빼앗긴 삶이다.
반면 가나안에서의 삶은 좀 불안정 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유가 주는 기쁨과 개성 넘치는 삶이 주는 행복이 있다.
나는 이집트 방식의 대기업보다, 가나안 방식의 작고 개성 있는 회사를 꿈꾼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집트나 바벨론과 같은 대제국을 제사장 나라로 삼지 않고, 작디 작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고자 했던 이유라 생각한다. (물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도를 배반하여 제국을 지향하다 제사장 나라의 비전을 저버리고 말았다.)
나는 나의 창업을 통해, 내가 갑부가 되는 것보다, 내 회사를 통해 많은 직원들이 삶의 행복과 즐거움을 얻고, 또 나의 고객들이 일의 즐거움을 회복하기를 원한다.
같은 이유로 우리 가정은 지금껏 학교가 아닌 홈스쿨을 택하고, 대형교회가 아닌 가정교회를 지향해 왔다.
내가 꿈꾸는 회사는 지금껏 많은 은혜와 복을 누려온 우리 가정의 확장판이다.
하나님이 꿈꿨던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 가정의 확장판이었던 것처럼, 나는 우리 가정이 지금껏 누린 따뜻한 복과 행복이 새로이 새워지는 회사에도 가득히 넘쳐 나기를 원한다.
그래서 콩이처럼 건강하고 힘쎈 토끼만 아니라, 쾅이처럼 장애를 가진 토끼도 함께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그런 회사를 꿈꾼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희의 새 회사가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 가지의 푸른 열매처럼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 넘쳐나고,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 있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도록…
* 사진은 경유지인 카타르 도하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태양이 새벽 날개를 치며 구름 바다 끝에 거하는 장면.(이것이 윈도우에 앉아야 하는 이유)


Ken Geunyoun YI is with Kyunghee Eom.

내가 꿈꾸는 회사 2 - Divine Connection

내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고, 그래서 아이들과도 여러차례 재미있게 나눈 바 있는 스토리는 지중해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던 바울의 선교여행 이야기다.
남자들은 천성적으로 ‘모험’에 끌리는 경향이 있나 보다. 물론 그것이 모든 이에게 외적으로 발현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남자는 어딘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게 마련이고, 그 동경을 어떤 방식으로든 풀게 마련이다.(리니지 같은 게임이 지금까지 인기 있는 이유)
바울의 여행은 어떤 이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exiting하고, 파란만장하며, 긴장과 스릴이 넘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일단 바울이란 캐릭터 자체가 스토리가 가져야할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두루두루 갖춘 흥미진진 덩어리다.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번 베스트셀러를 써내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1.고귀한 혈통 2.출생의 비밀 3.살인사건 4.섹스 이 네 가지만 적절히 잘 버무리면 재미 없기 어렵다는 말을 한 기억이 난다.

바울은 드물게 이 모두를 다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자칭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라 하는 그는 당시 유대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다. 그리고 길리기아 다소라 하는 헬라 도시에서 자라서 헬라어(신약성경의 언어)와 히브리어(구약성경의 언어) 모두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선교 여행 과정을 지켜보면 당시 지중해 세계의 역사, 종교, 문화, 정치, 철학, 문학, 예술, 과학, 기술(장막 짓는 일, 향해술 등) 등 매우 다방면에 깨알 같은 소양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는 육체의 출생이라는 면에서는 비밀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영적인 출생, 즉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과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미스터리하고 드라마틱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성경에 처음 등장할 때 그의 손에는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의 피가 가득했다. 
바울이 등장하기 전 초대교회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단연 스데반이었다. 그는 빼어난 지식과 언변으로, 당시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에서부터 모여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스데반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돌로 쳐 죽일 정도로 냉혈한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고,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인물을 제거해 내는 데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잔혹함을 가졌다.
그러나 그렇게 스데반을 무참히 죽이고도 피에 대한 갈증이 식지 않아,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던 길에, 아직까지 이 세상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가장 미스테리한 회심을 경험하게 된다.
그 날 이후, 바울은 그가 만났던 신비의 인물 예수에게 깊이 빠져 들게 되고, 과연 그가 어떤 인물인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파헤치기 위해 아라비아와 고향 다소에서 10여년의 수행에 들어가게 된다.
한창 피 끓는 청년 바울은 그 과정에서 깊은 비밀을 터득한 중년의 수사가 되었고, 결국 평생 섹스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신부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이후 2천년간 이어진 수도사와 수녀 전통의 마중물이 된 셈이다.
그리고 바나바에 의해 예루살렘의 바통을 이어받아 지중해 시대의 중심 교회가 될 안디옥 교회의 산파역으로 추천받았을 때 그는 정말이지, 10년간 홀로 지냈던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멋지게 공동체를 일궈 낸다.

But the best is yet to come. 내가 바울에게 가장 반한 모습은, 안디옥에서의 엄청난 성공을 사뿐히 즈려 밟고, 자신이 양육하여 세운 제자들에게 교회를 일임한 후에 훌쩍 선교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다.
안디옥에 머물렀다면, 그는 온갖 추앙을 받으며 스승으로, 지도자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조롱당하고, 무시 받으며, 때로 돌을 맞아 죽을 뻔하면서도, 안주가 아닌 모험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려 10년의 시간을 홀로 고독 속에 지내던 바울에게 끊임없이 아름다운 동행들이 생겨 난다.
안디옥을 함께 세웠던 바나바가 가장 먼저 바울의 동행이 되어 주었고, 함께 채찍질을 당한 후 감옥에서 찬양을 드렸던 실라가 그 뒤를 이었으며, 마가, 누가 등 복음서 저자들이 함께 했고, 빌립보의 첫 열매이자, 첫 여성이었던 자주장사 루디아, 자살의 위기에서 살아난 후 온 식솔들과 함께 회심한 빌립보의 간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알렉산드리아 출신 황금의 입 아볼로, 바울의 노년에 큰 힘이 되어 주었던 후계자 디모데 등 정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물밀 듯 연결될까 싶을 정도로 끝없이 인맥 파도타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 이 정도고,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과 눈물을 흘리며 작별 인사를 나눴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울의 서신에는 어떤 다른 성경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온다. 바울의 편지가 성경으로 편찬되었기에 당연한지 모르겠지만, 그가 깨알같이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사람들을 아꼈는지? 그리고 또 그가 아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바울을 소중히 여겼는지를 여실히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바울에 대해 부러운 것은 그가 이룬 찬란한 업적, 그가 남긴 아름다운 글들, 때로는 용맹하게, 때로는 지혜롭게 숱한 역경을 딛고 전진했던 놀라운 리더십, 가는 곳마다 수많은 군중을 끌어 모았던 웅장한 설교…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했던, 아니 세상 모두가 그를 버릴 때에도 유일하게 그의 곁에 머물러 주었던 그의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손에 스데반의 피를 묻히고도 모자라, 더 많은 피를 보기 위해 다메섹으로 달려 가던 냉혈인간 바울이 어떻게 이렇게 숱한 사람들의 사랑과 충성을 한 몸에 받는 사랑의 사도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여기서 다메섹에서 그를 만나, 이후 끝없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divine connection의 첫 연결을 시작하신, 예수님의 따뜻한 계획을 본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렇게 아끼던(죽음 직전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실 정도로) 스데반의 살인자, 바울을 넉넉히 안아 주셨다.
훗날 바울이 회고하듯, 예수님이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을 용서해 주신 그 사실이, 이후 그가 겪은 모진 고초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도 예수님처럼 많은 이들을 넉넉히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게 만들었다.
물론 고집스런 그의 성격 때문에, 때로 다투고, 갈라서기도 했지만, 결국 목숨을 포함한 그의 모든 것을 걸어 지중해를 종횡무진 다닌 끝에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사람들이었다.


지난 글에서 나는 회사라는 단어 보다, company, partners 같은 단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총아인 자본이 중심이 되는 회사보다,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회사를 일굴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제 사우디에서 첫 한 주를 보내고 보니,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다행히 사우디는 코로나 방역에 선방하여 1300명까지 치솟던 지난달 상황을 잘 수습하고, 현재는 500명대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백신 접종하지 않은 사람은 쇼핑몰, 식당, 은행, 공공기관 등 공공장소에 출입을 금지시키는 등 강력한 백신 드라이브를 걸어 높은 백신 접종률을 끌어 낸 것도 방역 성공의 중요한 이유겠지만,
한국과 달리 일찌감치 델타변이 발생국들을 여행금지, 입국금지시켜서 대문을 걸어 잠근 것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방역은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방글라데시, 네팔 등 사우디에 가장 많은 노동력을 공급하고 있는 국가들을 다 막아 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든 들어오려는 사람들은 제 3국에서 14일을 체류하고 나서 들어오는 등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에 수천명에서 수만명의 일꾼들이 와서 일을 해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들은 길이 꽉 막혀 버린 상황이다.
현대의 공사가 아무리 장비나 돈이 큰 비중을 차지해도, 결국 그 장비나 돈도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막히니, 장비도 서 있고, 돈도 막혀 있다.
결국 나처럼 장비가 일해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로서는 매우 어려운 여건인 셈이다.


내가 처음에는 머뭇거리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데는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싶은 욕심,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정도가 큰 역할을 했는데,
갑자기 지금 상황에 사람들이 들어올 길이 막히고 보니, 나의 자신감도 급감하고 있다.
물론 멀리서는 순탄하게만 보이는 바울의 선교여행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정말 환란과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애초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부지기수였다.
내가 무슨 통 뼈라고 고초들이 나만 보면 피해가겠나? 앞으로 당할 일을 생각하면 앞이 좀 캄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서 물러설 수 없는 것은, divine connection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도 와 본적이 없는 사우디에 와서, 해본적도 없는 장비 사업을 8년간 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시작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끝없는 divine connection의 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 사업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심지어 때론 즐기며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에서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올해 닥친 내 삶의 혹한기에 정말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겨우 이제 다시 사우디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사우디에서의 시작이 막막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난 8년간 경험했던 아름다운 divine connection의 파도타기를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거뜬히 넘어가 보고 싶다.


기도해 주시라, 나와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누군가와 세워갈 새로운 회사가, 바울이 2000년 전 경험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신령한 인맥의 파도가 넘실 거리는, 그래서 마지막까지 다른 것은 몰라도 나에게 사람이 남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되도록…
* 사진은 사우디의 소중한 이웃들에게 대접 받은 음식들과 4개월을 비워둔 집에서 나를 반겨 준 토끼들과 고양이들.. 나의 소중한 divine connection들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에 의한 복귀였다.
한국도 36년만에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났지만, 자력에 의한 독립이 아니라 미국에 의한 독립을 경험한 바 있기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이 독립 80년이 다되어 가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심지어 아직 일본에 기대어 있는 분야도 적지 않다.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돌려 보내면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약탈해 온 성전의 보물들을 함께 돌려 보낸다. 그리고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한다.
마치 미국이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인 점, 그리고 이전에 일본인들이 소유하던 기업들을 한국 관리자들에게 불하하여, 삼성, LG, 두산, SK 등 오늘날의 재벌 기업의 씨앗을 만들어 준 것과 오버랩 된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한국이 형식적으로는 재건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전 독립국가였을 때와 같은 강력한 정체성을 회복하지는 못한다.
물리적으로는 많은 것들이 독립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정신과 문화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독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에서 독립해 나온 출애굽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혹독한 광야 생활과 거친 정복전쟁을 거치며 독립국가의 야성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이스라엘 역사 내내 과거 이집트에서의 버릇을 버리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은 멸망하고 만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한 독립은 아니한만 못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민족국가로서의 정체성이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돌아온 이스라엘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형태로 진화한다. 간간히 극우적인 움직임으로 지배세력과의 충돌을 겪기도 하지만, 대체로 헬레니즘과 로마제국의 문명을 흡수하며 세계 시민으로 성장해 나간다.

그리고 그들이 구축한 디아스포라(흩어진 이스라엘) 네트워크는 예수님 이후 기독교가 세계종교로 성장해 나가는 기반이 된다. 물론 마지막까지 극우로 남은 세력들이 지금까지도 시오니즘 유대인으로 남아서 여럿을 괴롭히고 있기는 하다.
한국도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는 여전히 미국, 일본, 중국에서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솔직히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이 보여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에 비해 훨씬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문화를 구축하여 사실상 단군이래 최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재벌기업들도 시작은 일제시대 일본인들로부터 불하를 받아 시작했지만, 현재는 일본을 넘어 미국의 신기술을 받아 들인 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가고 있다.
비단 한국과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 이슬람 제국, 당나라, 원나라, 대영제국, 미국 등 당대를 제패했던 제국들은 대부분 다양한 문화가 개방과 포용을 통해 융합하며 이뤄진 세계 제국이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볼 때도, 종교개혁으로 구교와 신교가 나눠지며 많은 피를 흘렸지만, 그렇게 다양성을 갖게 된 교회가 대항해 시대를 만나며 여러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다양성과 포용력을 갖추게된 바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도 하나님은 고레스와 같은 이방인 통치자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고 계시는가?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놀랍게도 현재 세계에서 기독교 인구 성장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내가 살고 있는 아라비아 반도의 산유국들이다. 물론 여전히 기독교 인구 비율은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들 중 하나지만,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성장의 대부분을 필리핀, 인도, 레바논 등에서 온 기독교인 이민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 나도 포함되고 말이다.
그런면에서 UAE의 빈자예드 대통령과 사우디의 빈살만 왕세자는 현대판 고레스 왕인지도 모른다. 바라기는 최근 대통령에 당선된 이란의 페제시키안도 고레스 대왕의 직계 후손인만큼 이 길을 따라 오래 닫혀 있었던 이란의 문을 활짝 열어 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고레스 왕의 명을 받아 가나안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아오자마자 무너진 제단부터 세우고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포로기간동안 오래 지키지 못했던 초막절을 지킴으로써 무너진 율법을 재건한다. 마지막으로 고레스의 지원과 돌아온 백성들의 자발적인 헌금과 봉사로 무너진 성전을 재건한다.
개방과 포용이 중요하긴 하지만, 정체성을 잃어 버린다면 그냥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 율법, 성전은 그들의 정체성이며 잃어 버려선 안될 정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 역시 낯선 땅 사우디에서 사업을 하며 살아가지만, 한국인으로 또 기독교인으로 잃어 버려선 안될 정체성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새기게 된다.
친절하고 따뜻한 무슬림들은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더할나위 없지만, 사업 파트너로서는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인다. 그런면에서는 이미 성공의 모델을 보여준 한국과 기독교인으로서 이 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내가 꿈꾸는 회사는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가진 직원들이 각자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어 버리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포용하고 배움으로써 더욱 유연하고 창의적이며 진취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국가의 대표적 사례이던 중동에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문화를 가진 다국적 기업을 일구어 경제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이 지역의 발전과 변화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다.

창업 후 3년동안 페북에 사업 관련한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다. 여러번 존폐의 위기에 처할만큼 아슬아슬한 상황을 넘은 적이 많아, 회사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꾸역꾸역 버티던 사업이 올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새로운 직원들을 많이 맞아야 하는 시점에서 또 다시 내가 잃지 말아야할 정체성은 무엇인지? 사업을 통해 이뤄가야할 핵심가치는 무엇인지? 어떤 기업문화를 일궈가야할지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바라기는 꿈으로만 존재하던 여러 그림들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응원 부탁 드린다.

사진은 두브로브니크에서 찍은 오랜만의 완전체 가족사진
댓글에 3년전 처음 창업할 때 썼던, 내가 꿈꾸는 회사 1편과 2편 링크도 걸어 두었으니,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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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wi Jun

근윤 형제님!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이 긴 글을 끝까지 다 읽고 페북에 링크한 글까지 읽게 만드시니 말입니다. 전직 전도사 출신이라 그런지 한 편의 잘 쓰여진 설교 본문을 읽는 느낌도 듭니다. 은혜스럽고 영감을 주는 글입니다. 저도 세 번 창업해서 망하고 이번이 네 번째 창업입니다. 시작한 지 6개월 밖에 안 되는 따끈따끈한 신생 기업이지요. 지난 세 번의 시행착오들을 밑천 삼아 한 번 멋진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네요^^



Seung Min Shin

사업 정착기에 들어선것 같아 다행입니다. 가장 가정적이신 분이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점이 아쉽긴 하나. 창업자의 철학과 다짐이 보이는 문장입니다. 저도 20여년 만에 회사라는곳을 다니다 보니 철학이 없는 창업은 방향성도 없고, 그저 돈만 쫒아 가다 사람잃고, 돈도 못벌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되네요. 사우디 고속도로 이것저곳 오늘도 쌩쌩 달릴 ken 렌탈의 유콘을 응원 합니다




AuthorKen Geunyoun 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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