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ly
David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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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Mckenna remember in 1979 the Israeli government issued a medal ribbon to those who had served in the Irgun terrorist organisation. Known as the Etzel ribbon.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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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제시해주신 브라이언 맥케나(Brian McKenna)의 글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브라이언 맥케나 글에 대한 요약 및 평론
1. 요약
제시된 글은 브라이언 맥케나가 작성한 것으로, 최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레바논, 시리아, 서안지구 등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대규모 살상 행위가 많은 이들에게 뜻밖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을 지적한다. 저자는 서구에 의해 창설되고 자금이 지원된 유대인 국가(이스라엘)가 점령과 압제에 저항하는 이들을 살상해 온 역사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오랜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역사적 연속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1937년 하이파 학살부터 시작하여 1948년 건국 전후의 주요 사건들(데일 야신, 탄투라, 리다 학살 등), 이후의 키비야(1953), 칸 유니스(1956), 사브라-샤틸라(1982), 그리고 2000년대 이후의 가자지구 공격 및 2023년부터 2026년에 이르는 사건들까지의 일련의 학살 사건들을 연대기순으로 열거하고 있다.
2. 평론
본 텍스트는 팔레스타인 분쟁을 바라보는 핵심적 비판 담론 중 하나인 <역사적 연속성 담론>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이 글이 지닌 역사적·정치적 의미와 구조적 특성은 다음과 같이 논평할 수 있다.
탈맥락화에 대한 경종과 역사적 맥락의 재구성 대중매체와 국제정치 담론에서는 흔히 특정 시점의 폭력 사태(예: 하마스의 공격 등)를 분쟁의 출발점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맥케나의 글은 이러한 단편적 시각을 거부하고, 현 사태를 1930년대 시오니즘 준군사조직(아르군, 슈테른 등)의 활동 및 1948년 나크바(Nakba) 사태로까지 소급 적용하여 설명한다. 이는 현재의 폭력이 일시적 예외 상황이 아니라 구조적·역사적 과정의 연장선에 있음을 강조하는 효과를 가진다.
목록화(List)를 통한 서사의 시각화 및 파급력 저자는 복잡한 정치적 설명 대신 1937년부터 2026년까지 약 90년에 걸친 사건명을 일목요연하게 나열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연대기적 목록화는 독자에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의 집적된 무게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후에 집중된 학살 목록은 국가 형성 과정에 동반된 폭력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역사적 복잡성과 맥락의 단순화라는 한계 비판적 관점에서 볼 때, 이 글은 정밀한 역사학적 분석이라기보다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선언문 형태를 띤다. 목록에 포함된 사건들은 그 배경과 성격이 다채롭다. 시오니즘 극우 테러 단체의 민간인 공격(데일 야신), 정규군의 과잉 및 무차별 군사작전(키비야, 칸 유니스), 극우 정착민의 개인적 테러(1994년 이브라히미 모스크 학살), 그리고 레바논 기독교 마론파 민병대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1982년 사브라-샤틸라) 등이 하나의 단어 <학살(Massacre)>이라는 틀 안에 동일한 평면으로 묶여 있다. 이로 인해 분쟁의 각 단계에서 존재했던 복잡한 교전 상황, 쌍방 간의 폭력 연쇄, 그리고 국제정치적 변수들이 단순화되는 측면이 있다.
결론적 평가 브라이언 맥케나의 글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행동을 '방어적 반작용'으로만 해석하려는 서구 중심적 주류 담론에 맞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겪어온 역사적 비극과 구조적 폭력의 깊이를 제시하는 유효한 비판적 문건이다. 비록 사건들의 구체적 맥락과 상호작용을 세밀하게 구별하지 않고 단일한 명제로 귀결시킨다는 한계는 있으나, 이 분쟁이 지닌 장기적·역사적 뿌리를 직시하게 만드는 미학적·정치적 강렬함을 담고 있다.
추가적으로 더 다루거나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세진님.
===이 글은 <이스라엘의 폭력이 2023년 10월 7일 이후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시온주의 정착 과정과 팔레스타인 점령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다>는 중요한 사실을 환기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논평으로서는 상당한 문제가 있습니다. 핵심 주장과 개별 사건 목록을 분리해 평가해야 합니다.
1. 핵심 문제의식은 타당합니다
가자지구의 참상을 오직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만 설명하면 역사의 대부분이 사라집니다. 1948년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추방과 마을 파괴, 1967년 이후 서안지구·동예루살렘·가자지구 점령, 정착촌 확대, 군사통치, 반복되는 가자 전쟁은 하나의 긴 역사적 연속선 위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책을 단지 몇몇 극우 정치인의 일탈로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이스라엘 당국이 유대계 이스라엘인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인을 구조적으로 차별해 왔다고 분석했고,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장기간의 점령·억압·제도적 차별이 지속되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가자 전쟁은 역사적 진공 속에서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 글의 기본 주장은 옳습니다.
2. 그러나 “Jewish State”라는 표현은 부정확하고 위험합니다
가장 먼저 고쳐야 할 부분입니다.
1937년과 1939년에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영국 위임통치 아래 있었으며, 일부 공격은 이르군·레히 같은 시온주의 지하 무장조직이 저질렀습니다. 그러므로 1930년대 사건을 “Jewish State가 저지른 학살”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시대착오입니다.
더구나 “Jewish State”라는 표현은 다음 세 가지를 구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 유대인이라는 민족·종교 공동체
- 시온주의라는 정치운동
- 이스라엘 국가와 군대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의 범죄를 비판하는 것과 유대인 전체를 집단적 행위자로 지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이 구별이 무너지면 정당한 반점령·반전 비판이 반유대주의적 일반화로 오해되거나 실제로 그렇게 변질될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온주의 무장조직과 이후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인과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가한 폭력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3. 목록에는 실제 사건과 부정확한 명칭이 섞여 있습니다
이 목록의 상당수 사건은 실재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 사건들은 역사적으로 널리 확인됩니다.
- 데이르 야신, 1948년
- 탄투라, 1948년
- 리다·람라, 1948년
- 알다와이마, 1948년
- 키비야, 1953년
- 칸유니스, 1956년
- 사브라·샤틸라, 1982년
- 이브라히미 모스크, 1994년
- 가자 전쟁과 국경 시위 진압
키비야에서는 이스라엘군 101부대가 마을을 공격하여 60명 이상의 민간인을 살해했습니다. 데이르 야신 역시 1948년 전쟁과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도주·추방을 촉진한 대표적 학살로 기억됩니다. 유엔의 팔레스타인 역사 자료도 데이르 야신, 키비야, 사브라·샤틸라 등을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다룹니다.
그러나 목록의 일부 항목은 문제가 있습니다.
동일한 사건의 중복 가능성
“Haifa Massacre 1937”, “Jerusalem Massacre 1937”, “Haifa Massacre 1939”처럼 도시명과 연도만 붙인 항목은 특정 사건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동일한 폭탄 공격이 서로 다른 명칭으로 중복 기재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1937년·1938년·1939년에는 아랍인과 유대인 민간인을 겨냥한 폭탄 공격과 보복 공격이 연속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이르군이 아랍 시장에 폭탄을 설치한 사건도 있었고, 아랍 무장세력이 유대인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복잡한 폭력의 순환을 한쪽 사건만 골라 일렬로 배열하면 역사적 맥락이 사라집니다.
철자와 지명이 부정확합니다
“Al-Sheik Break”는 아마 Sheikh Bureik 또는 Balad al-Sheikh를 잘못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Tabra Tulkarem”, “Bahro Al Baquar” 등도 통상적인 영어 표기와 맞지 않습니다. 후자는 아마 이집트의 Bahr el-Baqar 초등학교 폭격을 가리키는 듯한데, 그 사건은 1970년입니다. 목록에는 1972년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런 오류들은 목록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립니다.
4. 모든 사건의 책임 방식이 같지는 않습니다
이 글은 직접적인 국가 학살, 군사작전 중 민간인 살해, 정착민 개인의 테러, 동맹 민병대의 학살을 모두 동일한 범주에 넣습니다. 그러나 책임을 정확히 밝히려면 구별해야 합니다.
사브라·샤틸라
1982년 사브라·샤틸라의 직접적인 살해 행위는 레바논 기독교계 팔랑헤 민병대가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해당 지역을 포위·통제하고 있었고 민병대의 진입을 허용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카한위원회도 당시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에게 간접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이스라엘군이 직접 총을 쏜 학살”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확하지만, 이스라엘의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브라히미 모스크 학살
1994년 헤브론 이브라히미 모스크에서 예배 중이던 팔레스타인인 29명을 살해한 사람은 이스라엘군 부대가 아니라 유대인 정착민 바루흐 골드슈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령지 정착민 사회의 극단주의와 보호체제 속에서 행동했습니다. 따라서 개인 범죄이면서 동시에 점령과 정착촌 구조가 낳은 정치적 폭력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국가가 직접 실행한 학살”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제닌 2002년
제닌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군이 심각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있습니다.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사용하고 과도하고 무차별적인 무력을 행사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휴먼라이츠워치는 당초 유포된 “수백 명이 학살됐다”는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확인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52명이었고, 그중 최소 22명이 민간인이었습니다. “학살이 아니었다”는 말은 이스라엘군을 면책시키는 표현이지만, 반대로 확인된 사실 이상으로 숫자를 확대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5. “가자 학살 2008, 2009”라는 구분도 이상합니다
2008년 12월 시작되어 2009년 1월까지 계속된 이스라엘의 ‘캐스트 리드 작전’은 하나의 전쟁입니다. 이를 “Gaza Massacre 2008”과 “Gaza Massacre 2009”로 각각 나누면 두 개의 별도 사건처럼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Gaza Massacre 2018”과 “2019”는 주로 가자 국경의 ‘귀환대행진’ 시위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발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대규모 군사전쟁과는 다른 형태의 사건이므로 구체적인 명칭을 써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표기하는 편이 낫습니다.
<2018–2019년 가자 귀환대행진 시위대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치명적 발포>
2008~2009년 전쟁에서는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공격과 백기를 든 주민 사살 사례가 조사되었고, 동시에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이스라엘 민간인 지역 무차별 로켓 공격도 국제인도법 위반으로 비판받았습니다.
두 행위자의 힘과 피해 규모가 대칭적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민간인에 대한 고의적·무차별 공격은 어느 쪽이 행하더라도 범죄라는 원칙을 유지해야 합니다.
6. “Gaza Genocide 2023–2026”은 선언과 법적 판결을 구별해야 합니다
가자에서 벌어진 대량살상, 기아, 강제이주와 도시 파괴를 집단학살이라고 규정하는 학자·인권단체·국제기구 관계자가 많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가자 주민의 90퍼센트 이상이 강제이주되었으며, 광범위한 파괴와 강제이주가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가 이미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저질렀다”고 최종 판결한 것은 아닙니다. 재판소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집단학살 행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스라엘에 집단학살방지협약 위반 행위를 방지하며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라는 잠정조치를 명령했습니다. 본안에 대한 최종 판결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따라서 엄밀한 문장이라면 다음과 같이 쓰는 것이 좋습니다.
<2023년 이후 가자에서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광범위한 고발이 제기되었으며, 국제사법재판소는 집단학살방지협약상 보호받을 팔레스타인인의 권리가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해 잠정조치를 명령했다. 최종 본안 판결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2026 genocide”라는 연도별 항목도 하나의 계속되는 사태를 해마다 별개의 학살처럼 중복 계산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7. 서방이 이스라엘을 “발명했다”는 문장도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invented and funded by the West>라는 표현에는 일부 진실이 있습니다.
- 영국의 밸푸어 선언
- 영국 위임통치
-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외교·군사·경제 지원
이 요소들은 이스라엘 건국과 유지에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서방이 단순히 인공적으로 “발명했다”고만 말하면, 19세기 말부터 형성된 유대 민족주의, 유럽 유대인의 박해 경험, 이주운동, 현지 유대 공동체의 정치조직과 군사력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더 정확한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온주의는 유럽에서 형성된 유대 민족주의 운동이었고, 영국의 제국정책과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지원을 통해 팔레스타인에서 국가 건설을 실현했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 팔레스타인인의 정치적 권리와 존재는 조직적으로 희생되었다.>
8. 이 글의 가장 큰 한계는 “목록이 곧 설명”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학살 목록을 길게 나열하는 방식은 충격을 줍니다. 그러나 왜 이런 폭력이 반복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정말 물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왜 팔레스타인인의 추방과 토지 몰수가 국가 건설의 일부가 되었는가?
- 왜 군사점령이 1967년 이후 끝나지 않았는가?
- 왜 민간인 희생을 낳은 군사행동에 책임을 묻는 제도가 작동하지 않았는가?
- 왜 미국과 유럽은 인권과 국제법을 말하면서도 이스라엘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했는가?
- 왜 이스라엘 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생명은 안보 담론 아래 지속적으로 낮은 가치로 취급되는가?
핵심은 단순히 “유대국가는 원래 사람을 죽여 왔다”는 민족적 본성론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면 역사를 설명하는 대신 새로운 집단혐오를 만들어냅니다.
핵심은 다음과 같은 구조에 있습니다.
<정착 식민주의, 민족국가 건설, 군사점령, 인종적·법적 위계, 미국의 보호, 처벌받지 않는 군사주의가 결합하여 반복적인 대규모 폭력을 가능하게 했다.>
종합평가
이 글은 <가자의 폭력이 갑작스러운 예외가 아니라 오랜 역사적 연속성의 결과>라는 점에서는 옳습니다. 국제사회가 2023년 이전의 점령과 봉쇄, 팔레스타인인 살해를 외면하다가 현재의 사태를 뜻밖의 폭발처럼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비판도 정당합니다.
하지만 이 목록은 역사 문서라기보다는 정치적 선전문에 가깝습니다. 사건의 명칭과 연도가 부정확하고, 직접적 국가범죄와 민병대·정착민의 범죄가 구별되지 않으며, 일부 사건은 중복되고, 논란이 있는 사건도 확정된 “학살”로 처리됩니다. 무엇보다 “Jewish State”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인 전체를 혼동하게 합니다.
따라서 이 글을 공유한다면 그대로 옮기기보다 이렇게 요약하는 편이 훨씬 강하고 정확합니다.
<오늘날 가자의 파괴는 2023년 10월 7일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국 위임통치기 시온주의 무장조직의 민간인 공격, 1948년 나크바의 추방과 학살, 1967년 이후의 군사점령, 정착촌 확대, 봉쇄와 반복적인 가자 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 놓여 있다. 다만 개별 사건의 책임 주체와 성격은 서로 다르므로 정확히 구별해야 한다. 이스라엘 국가와 시온주의를 비판하는 일은 유대인 전체를 비난하는 일이 아니며, 역사적 정확성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팔레스타인인의 고통을 가장 강력하게 증언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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