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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탈무드가 시오니즘(Zionist project)을 지지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유대교 내부에서 역사적·신학적으로 가장 치열하게 대립해 온 쟁점 중 하나입니다. 탈무드는 근대 민족주의적 국가 건설 프로젝트로서의 시오니즘이 출현하기 1천 년도 훨씬 전에 편찬된 문헌이므로 직접적으로 현대 시오니즘을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탈무드 텍스트의 해석을 두고 찬반 양측이 정반대의 입장을 견지해 왔다.
<1. 반시오니즘 및 비시오니즘 전통: '세 가지 맹세(Three Oaths)'>
전통적인 정통파(하레디) 유대인 중 반시오니즘 입장을 취하는 진영(예: 네투레이 카르타, 사트마르 하시디즘 등)은 탈무드의 대표적 구절인 <케투봇(Ketubot) 111a>에 등장하는 '세 가지 맹세'를 근거로 시오니즘을 전면 거부한다.
<인위적 귀환 금지>: 유대인은 메시아의 개입 없이 집단적으로 무력을 행사하여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 성벽을 쌓아서는(장벽을 넘어서는) 안 된다.
<이방 민족에 대한 반역 금지>: 유대인은 디아스포라 기간 동안 거주하는 지배 국가와 민족에 반역해서는 안 된다.
<이방 민족의 맹세>: 하나님은 이방 민족들에게 유대인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억압하지 말 것을 맹세하게 했다.
사트마르 라비 요엘 타이텔바움(Joel Teitelbaum)과 같은 정통파 랍비들은 19세기 말 등장한 시오니즘이 하나님의 뜻과 메시아 구원 신앙을 세속적 인간의 힘으로 대체하려는 우상숭배적·배교적 시도라고 보았다. 그들은 현대 이스라엘 국가 건설이 이 맹세를 위반한 행위이며, 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2. 종교 시오니즘(Religious Zionism) 전통: 계명과 구속의 시작>
반면, 랍비 아브라함 이삭 쿡(Abraham Isaac Kook) 등으로 대표되는 종교 시오니즘 진영은 탈무드의 전혀 다른 구절들을 근거로 시오니즘을 적극 지지하거나 신의 섭리로 해석한다.
<에레츠 이스라엘 정주 계명>: 탈무드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것은 토라의 모든 계명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는 등의 전승을 강조한다. 나흐마니데스(람반) 등의 주석을 인용해, 이스라엘 땅을 정복하고 거주하는 것은 세대를 불문하고 적용되는 적극적 의무(미츠바)라고 주장한다.
<세 가지 맹세의 효력 소멸 주장>: 종교 시오니즘 학자들은 1917년 벨푸어 선언이나 1947년 유엔 분할안 등을 들어, 세계 열강(이방 민족)이 유대인의 귀환을 승인했으므로 '세 가지 맹세' 중 이방 민족에 반역하지 말라는 조항이 이미 무효화되었거나 충족되었다고 해석한다. 또한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지나친 억압을 하지 말라'는 민족들의 맹세가 파기되었다고 본다.
<3. 세속적 시오니즘과 탈무드의 관계>
헤르츨(Theodor Herzl) 등 초기의 주류 시오니스트들은 탈무드의 종교적 법률보다는 19세기 유럽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반유대주의 박해에 대응하는 세속적 자결권을 동력으로 삼았다. 이들에게 탈무드는 종교적 금기를 내세워 디아스포라의 수동적인 삶을 영속화시킨 문헌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따라서 탈무드 자체는 근대 시오니즘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탈무드의 메시아 대망 사상과 디아스포라적 규범은 근대 정치적 시오니즘에 대한 강력한 신학적 비판의 근거(세 가지 맹세)로 작용해 왔으며, 동시에 정착 계명을 우선시하는 학파에 의해 사후적으로 시오니즘을 정당화하는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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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말하면, <탈무드 자체가 현대의 시오니즘 국가 프로젝트를 지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탈무드는 근대 민족국가, 유대인 주권국가, 팔레스타인 정착정책 같은 문제를 다루기 수천 년 전에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탈무드 안에는 후대의 시오니스트와 반시오니스트 양쪽이 서로 다르게 해석해 온 재료들이 있습니다.
핵심은 세 가지로 나눠보면 분명합니다.
첫째, 탈무드는 <이스라엘 땅(Eretz Yisrael)>을 특별한 장소로 봅니다. 그 땅에 거주하는 것, 예루살렘, 성전, 귀환에 대한 종교적 열망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Ketubot 110b–111a에는 이스라엘 땅에 사는 것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는 전승이 나옵니다. 이런 구절들은 종교적 시오니스트들이 “유대인의 이스라엘 땅 귀환은 유대교 전통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고 주장할 때 자주 인용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곧바로 “그러므로 현대 유대국가를 세워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도 된다”, “영토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는 명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 연결은 근대 정치적 해석입니다.
둘째, 오히려 같은 Ketubot 111a에는 유명한 <세 가지 맹세(Three Oaths)>가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유대인은 “벽을 넘어 집단적으로 올라가지 말 것”, “열방에 반역하지 말 것” 등의 맹세를 했다고 해석되어 왔습니다. Satmar 같은 반시오니스트 하시딤은 바로 이 구절을 근거로 인간이 정치적·군사적 힘으로 유대 국가를 세우는 것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흥미롭게도 같은 탈무드의 한 대목에서:
- 종교 시오니스트는 “이스라엘 땅에 사는 것은 미츠바”를 강조하고,
- 반시오니스트 정통파는 “Three Oaths”를 강조합니다.
따라서 “탈무드는 시오니즘을 지지한다”는 식의 단정은 유대교 내부의 오랜 논쟁을 지워버립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구별은 <성서·탈무드의 시온에 대한 종교적 애착>과 <19–20세기의 정치적 시오니즘> 사이입니다.
Herzl의 정치적 시오니즘은 근대 유럽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국민국가 개념 속에서 발생했습니다. Herzl 자신도 탈무드적 할라카에 근거해 국가 건설을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초기 시오니즘의 상당 부분은 오히려 세속적이었습니다. Ben-Gurion, Labor Zionists, Revisionist Zionists, Religious Zionists는 모두 “시오니즘”이라고 불렸지만 국가, 영토, 아랍 주민, 종교의 역할에 대해 상당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용자가 올린 Jewish Voice for Peace 자료의 문장도 이 점에서 구분해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자료는 시오니즘을 “Jewish-only state, with the maximum amount of land and a minimum of Palestinians”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JVP의 정치적 해석이자 비판적 정의이지, 탈무드가 제시하는 시오니즘의 정의는 아닙니다. 또한 모든 역사적 시오니즘을 포괄하는 중립적 학술 정의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탈무드가 비유대인을 어떻게 대하라고 하는가>입니다. 여기에서도 단순한 답은 없습니다. 탈무드에는 유대 공동체의 경계를 강하게 설정하는 법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 생명 보호, 평화를 위한 의무, 이방인의 생계와 복지를 돌보는 규범도 있습니다. 예컨대 Gittin 61a에는 “평화의 길(mipnei darkhei shalom)”을 위해 비유대인 가난한 사람을 유대인 가난한 사람과 함께 부양하고, 병자를 돌보고, 죽은 자를 장사해야 한다는 전승이 나옵니다.
따라서 군사적 점령, 민간인 추방, 마을 철거 같은 오늘날의 구체적 정책을 “탈무드가 명령한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텍스트적으로 무리입니다. 그런 행위에 대한 판단은 현대 국가법, 국제법, 안보 논리, 민족주의, 현대 랍비들의 할라카 해석이 뒤섞인 훨씬 후대의 정치적 문제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이스라엘 땅에 대한 강한 종교적 애착과 귀환의 희망을 뒷받침하지만, 현대 시오니스트 국가 프로젝트를 직접 명령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프로젝트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양쪽 모두가 탈무드에서 근거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The Essential Talmud>를 읽을 때 상당히 중요한 관점입니다. 탈무드를 읽다 보면 “유대교 → 시오니즘 → 이스라엘 국가정책”이라는 직선적인 연결이 실제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사이에는 약 1,500년의 디아스포라 역사와 메시아주의, 근대 민족주의, 홀로코스트, 세속 시오니즘, 종교 시오니즘이라는 여러 층이 끼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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