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5, 2026

인류본사 | 이희수 | 2022

인류본사 | 이희수 | 알라딘
인류본사 -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본 1만 2,000년 인류사
이희수 (지은이)휴머니스트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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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선택
"‘중양(中洋)’의 눈으로 되찾은 인류문명사"
제목의 '본사'는 인류역사의 본류를 의미한다. 저자 이희수 교수는 인류문명의 모태가 오리엔트-중동에서 발원되었다고 말한다. 신화, 문자, 정치, 기술 등 인간사의 필수 문물이 창조된 곳이자 동서양의 교류 발전을 주도한 허브. 이 책은 1만 2천 년의 인류사를 오리엔트-중동의 관점으로 다시 쓴다. 세계사라는 이름을 독점한 서양사도, 그에 반발하며 육성된 동양사도 아닌 오리엔트-중동 관점의 인류본사다.

중동-이슬람 권위자 이희수 교수가 40여 년간 연구한 내용을 집약한 책이다. 아나톨리아반도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이 일대의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를 복원해 문명의 흐름을 밝혀냈다. 그간 단절되고 왜곡되었던 인류문명의 뿌리를 다시 파내는 대대적 작업. 새로운 시각의 인류 역사를 심층적으로 살핀다.
- 역사 MD 김경영 (20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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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상은 동양과 서양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인류의 중심 문화를 펼쳐낸 것은 오리엔트 고대문명의 찬란한 역사다. 인류문명의 산실인 오리엔트 지역은 5,000년 세계사 가운데 적어도 4,800년 동안 인류의 진보를 주도했다. 인류 역사를 온전히 복원하고 보편적인 역사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인류문명의 뿌리인 오리엔트사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재구성한다.


목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문명의 요람, 아나톨리아에서 시작하는 인류 이야기

1부 아나톨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 1만 년의 역사

1장 아나톨리아 문명: 인류역사의 태동
1 괴베클리 테페
2 차탈회위크

2장 바빌로니아: 함무라비법의 나라
1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중간지대 문명의 복원
2 고바빌로니아 왕국
3 바빌로니아의 후계국가
4 바빌로니아의 문화

3장 히타이트: 철기시대를 연 첨단기술 강국
1 히타이트의 역사와 거버넌스
2 카데시 전투
3 철기 생산과 히타이트 멸망의 미스터리

4장 프리기아: 신화에서 역사로, 미다스 왕의 신비
1 프리기아의 역사와 문화

5장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인류 최초의 대제국
1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
2 페르시아의 거버넌스
3 페르시아의 문화
4 페르시아 전쟁과 제국의 멸망

6장 파르티아: 로마에 맞선 500년 대제국
1 알렉산드로스 왕의 정복과 파르티아의 수립
2 파르티아 제국의 성장과 멸망
3 파르티아 제국의 거버넌스와 문화

7장 사산조 페르시아: 1,200년 대제국의 종착지
1 사산조 페르시아의 등장과 발전
2 사산 제국의 종교
3 사산조 페르시아의 문화와 대외관계
4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


2부 인류 대번영을 이끈 이슬람 문명의 역사

8장 압바스: 이슬람의 황금기
1 이슬람 제국 시대의 개막
2 압바스 제국의 등장과 번영
3 압바스조의 쇠퇴와 튀르크인의 성장

9장 호라즘샤: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왕국
1 13세기 중앙아시아 최강의 이슬람 왕국 호라즘샤
2 호라즘샤의 성장과 종말

10장 티무르: 중앙아시아의 르네상스
1 티무르 제국의 성립
2 중앙아시아의 르네상스

11장 후우마이야와 나스르: 이베리아반도에 꽃 핀 이슬람 문화
1 후우마이야 왕조
2 나스르 왕조

12장 사파비: 이란 시아파의 자존심
1 사파비 왕조의 성립
2 압바스 1세의 통치와 사파비의 번성
3 사파비 제국의 쇠퇴와 멸망

13장 말리와 송가이: 아프리카의 르네상스
1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
2 아프리카 문화
3 아프리카의 이슬람화

14장 오스만: 인류 최대의 대제국
1 오스만 제국의 성립과 발전
2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3 오스만의 황금기
4 오스만 제국의 거버넌스와 문화
5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개혁운동

15장 무굴: 타지마할을 낳은 제국
1 무굴 제국의 건국
2 무굴 제국의 번영과 쇠퇴
3 무굴 제국의 거버넌스와 경제
4 무굴 제국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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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16 최초의 문명으로 인식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이 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 하류 지역에 집중됨으로써 두 강의 상류 지역, 즉 모태문명이 펄펄 살아있는 아나톨리아 동남부 지역은 거의 조망되지 못했다.
역사의 뿌리는 중양 문명에서 시작하였다. - sbsbsb2063
역사의 뿌리는 중앙 문명에서 시작하였다. - 알레아약타에스트


추천글
인류사의 중심은 중양(中洋), 즉 오리엔트였다. 유럽 중심주의가 왜곡한 역사의 참모습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압바스, 셀주크, 오스만, 무굴 등 오리엔트 열다섯 제국의 역사를 통해 되살린다.
- 2022년 청년 책의 해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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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희수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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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정부 장학생으로 튀르키예 국립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화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스탄불 마르마라 대학교 중세사학과에서 조교수로 2년간 유목문화론과 극동사를 강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튀니지, 우즈베키스탄, 이란 등 아랍-이슬람권 여러 나라에서 오랜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작 : <골목에서 배우는 인권>,<처음 문화인류학>,<이것이 아랍 문화다> … 총 12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동/서양을 횡단하는 ‘중간문명’의 대서사!
잃어버린 문명의 뿌리, 오리엔트-중동의 역사를 되살리다

오리엔트-중동 지역은 위대한 문명의 산실이자, 약 1만 2,000년간 인류의 진보를 주도해 온 역사적 중심축이다. 그러나 세계를 ‘서양’과 ‘동양’으로 갈라 그중에서도 서양의 역사 패턴을 중심으로 인류의 발자취를 추적한 기존의 ‘보편적 역사관’은 정작 인류문명의 뿌리를 간직한 오리엔트-중동을 철저히 외면해왔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인간사회를 발아시킨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선 전연 무지한 채로. 불균형하고 단절되고 왜곡된 반쪽짜리 역사인식을 무분별하게 추종하고 재생산해왔다.
《인류 본사》는 국내 최고 중동 전문가 이희수 교수가 오리엔트-중동 지역의 역사를 인류의 뿌리 역사, 즉 ‘본사(本史)’로서 선언하며 1만 2,000년 전 초고대 아나톨리아 문명부터 히타이트·프리기아 등 고대 오리엔트 문명과 7세기 이후 이슬람 왕국들의 역사를 거쳐 근대 오스만·무굴 제국의 성쇠까지, 오리엔트-중동의 인류사적 궤적을 완성한 국내 최초의 역작이다. 인류사회의 시원을 개창한 동시에 ‘중간문명’으로서 동/서양의 교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오리엔트-중동 지역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여 인류사를 그 핵심과 뿌리에서부터 다시 썼다. 최초의 문명이 발아하고 성숙해온 인류역사의 중심 무대,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중간문명’의 1만 2,000년 대서사가 펼쳐진다.


틀에 박힌 동/서양 이분법을 뛰어넘어
‘중양(中洋)’의 눈으로 되찾은 인류문명사의 찬란한 완전판

오늘날 ‘역사’라는 개념을 관성적으로 구분하면 누구나 자연스레 ‘서양사’와 ‘동양사’로 나누고 만다. ‘서양사’는 그리스-로마에서 출발해 중세-대항해시대-르네상스-종교개혁을 거쳐 산업혁명과 근대 문명으로 귀결되면서 ‘세계사(世界史)’라는 이름을 독점했고, 동서양의 균형을 내세우며 인위적으로 육성된 ‘동양사’는 중국사 일변도였다. 나머지 세상은 지역사, 변방사, 비주류 역사로 치부되었으며, 서양사와 동양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엄격히 분리된 채 이어져 오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서양이 동양을 개화시키며’ 융합되었다는 식으로 말해져 왔다.
그러나 이는 속속들이 잘못된 역사인식이다. 서양의 문명과 문물은 서양에서 기원하지 않았고, 동서양은 인류사의 모든 순간을 통틀어 교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구는 동전처럼 평평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서양과 동양을 촘촘히 이어준 ‘중간문명’이, 더 거슬러 올라가 ‘인류문명’이라는 것 자체를 탄생시킨 ‘중심문명’이 분명하게 존재해왔다. 그저 틀에 박힌 동/서양 이분법에 의해 외면되었을 뿐이다. 문명의 본향은 바로 ‘오리엔트-중동’이었다.
《인류 본사》는 오리엔트-중동 지역을 바탕으로 인류사를 다시 쓴다. 이러한 역사읽기 시도가 새로워 보이고 ‘본사(本史)’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실상 잃어버린 역사의 제자리를 되찾는 일이다. ‘해가 뜨는 곳’이란 의미의 라틴어 ‘오리엔스(Oriens)’에서 유래한 ‘오리엔트(Orient)’는 오늘날 터키 공화국의 영토인 아나톨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문명을 발아시킨 역사의 본토였다. 중동(中東)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기반으로 신화·문자·정치·기술 등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온갖 문물을 창조해낸 문명의 요람이었다.
나아가 오리엔트-중동은 인간사회가 등장하고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만 2,000년 동안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온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적인 중심지였고, 6,400킬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과 서양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주며 교류 발전을 주도한 문명의 핵심 기지였다. 그러므로 오리엔트-중동을 모른 채 문명사를 논하는 것은 곧 문명 없이 문명사를 외치는 아이러니와 다름없다. ‘중양(中洋)’의 눈으로 역사를 다시 읽는 것이야말로 인류문명의 완전판을 탐독하는 획기적 사건이며, 동/서양 이분법이 유발한 역사 왜곡과 인식 단절을 뛰어넘어 잃어버린 인류문명의 뿌리를 되찾는 위대한 첫걸음이다.


기원전 1만 년 아나톨리아 문명부터 근대 오스만 제국까지
국내 최초로 온전히 담아낸 오리엔트-중동 1만 2,000년 문명사

《인류 본사》는 아나톨리아반도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인도아대륙,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까지 아우르며 이 일대에서 일어나고 스러졌던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를 통해 오리엔트-중동 세계의 1만 2,000년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복원해냈다. 발굴과 동시에 역사학의 근간을 뒤흔든 괴베클리 테페와 차탈회위크를 필두로 한 아나톨리아 문명을 시작으로 바빌로니아,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사산조 페르시아 등 고대 중동을 호령했던 바빌로니아-페르시아 문명은 물론, 그간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히타이트, 프리기아, 파르티아 등 오리엔트 문명의 주요 제국들을 선명히 조명함으로써 척추가 끊어진 채 전해져오던 인류사의 뼈대를 바로 세운다.
7세기 무함마드의 등장 이후 압바스, 사파비, 오스만 등으로 유려하게 흘러가는 이슬람 제국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슬람 문명이 어떻게 인류 전체의 대번영을 이끌었는지 간명하게 파악하게 된다. 더불어 중앙아시아의 호라즘샤와 티무르, 이베리아반도의 후우마이야와 나스르, 아프리카의 말리와 송가이, 인도아대륙의 무굴까지 지리적 시야를 넓혀 다채로운 이슬람 제국들의 역사를 톺아보니 오늘날 20억 인구에 달하는 이슬람의 세계성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제국의 역사 일면을 훑는 수준을 넘어, 각 나라만의 정치적 맥락 안에서 구성된 거버넌스, 세계의 지정학적 판도를 뒤바꾼 주요 전쟁과 전투, 통치 이념의 밑바닥이자 제국 신민들의 삶의 지표로 자리 잡았던 다양한 종교들, 지금까지도 계승되어오는 예술·건축·생활 문화까지 문명사를 심도 있게 해석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역사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기원전 1만 년 아나톨리아 문명부터 근대의 오스만과 무굴 제국에 이르기까지 오리엔트-중동 문명의 1만 2,000년사를 이토록 풍성하고 온전하게 담아낸 시도는 국내에서는 지금껏 찾아볼 수 없었던 최초이자 유일한 성취이다.



언론과 학계가 인정하는 중동-이슬람 권위자 이희수 교수의
40여 년 현장답사와 연구성과를 집약한 기념비적 역작

이와 같은 전무후무한 역사적 결실은 터키 이스탄불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고 터키·사우디아라비아·튀니지·이란·우즈베키스탄 등 이슬람권 전역에서 40년간 현장 연구를 이어온 저자의 독보적인 역량에서 비롯했다. 이희수 교수는 ‘이슬람권의 유엔’이라 불리는 이슬람협력기구(OIC) 산하 이슬람역사문화연구소(IRCICA)와 중앙아시아국제학술연구소(IICAS), 튀니지 사회경제연구소(CERES) 등에서 활동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고, 국내에서도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 아프리카중동분과 위원장, 한국중동학회장, 한국이슬람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중동-이슬람에 관한 도움과 식견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역할을 다해왔다. 소위 ‘중동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현 상황에 관해 대중적 눈높이로 폭넓게 해설해주고, 반지성적 혐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국내 최고의 중동-이슬람 권위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인류 본사》는 괴베클리 테페, 페르세폴리스, 사마르칸트, 알람브라 궁전 등 오리엔트-중동 현지 유적지에 직접 다녀온 저자의 답사기를 곳곳에 실어, 실제로 접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은 중간문명 제국들의 문화적 향취를 독자 눈앞에 생생히 재현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상대주의적이고 현지 중심적인 관점으로 그곳만의 독특한 지리적 환경과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그려내는 저자의 답사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수천 년 전 유적지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200여 장에 달하는 컬러 사진과 지도 또한 현지의 기운을 한껏 또렷이 전달한다. 생경하기만 했던 오리엔트-중동 문명을 국내에 오롯이 알리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저자의 기념비적 역작으로 손색이 없다. 문명의 본토가 간직한 1만 2,000년의 찬연한 역사와 신비로운 문화를 따라 인류의 본사(本史)를 되찾아가는 이 여정에 함께하기를 권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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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책이 드디어 나왔네요. 지금 받아서 대충 훝어보았습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서양 위주로 기울어진 시각을 이희수 교수님 덕분에 바로 잡을 수 있겠습니다.
김씨 2022-06-13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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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지역을 떠나 균형있는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면 강추한다.
호~~잇! 2022-12-0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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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회적 성찰의 계기가되기를
터키술탄 2022-07-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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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교수님 믿고 구매
Qutb 2026-04-2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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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본사 - 다양성이 공존하는 세계사


인류 최초의 문명의 역사는 아나톨리아 반도와 메소포타미아 반도이다. 동서양의 교차점이었던 아나톨리아 반도는 동서양이 만나면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였다.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지만 19세기 이후 유럽 지역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문명을 바라보면서 타 문화는 야만과 미개로 치부했다. 저자는 1983년 이스탄불에서 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화를 공부하며 동서양을 양분하는 인식론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이 책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아나톨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괴베클리 테베-차탈회위크-아카드-바빌로니아-트로이-히타이트-페니키아-프리기아-헤브라이-아시리아-우라르투-신바빌로니아-리디아-메디아-페르시아-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가 7세기 중엽까지 이어졌고, 이후에는 이슬람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마이야-압바스-셀주크-호라즘샤-티무르-나스르-사파비-말리와 송가이-오스만-무굴 제국에 이르는 역사가 이어졌다. 이 기나긴 역사를 650 여페이지에 압축시키기 어려웠을 듯하다.



먼저 책의 장점부터 기술해보겠다. 각 단락의 서두에 한 제국의 일대기를 담은 도표와 설명이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다.(시간이 지나서 재독 시 이 부분만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또 영토의 분화 과정을 담은 지도, 문화재 같은 경우 사진이나 그림이 첨부되어 있어 좋았다. 그리고 저자가 문화 유적을 직접 답사한 여행기는 독자의 간접적인 여행 체험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코로나가 여전한 상황인데다 답사 지역이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마지막으로 문명과 관련하여 한반도의 역사와 연관성을 가지는 다양한 예시를 흥미롭게 설명해주어 저자에게 감사했다(이것은 국내 작가가 아니라면 경험해보기 어려운 것이다.).


단점은 많지 않다. 이 책을 읽기 전 궁금했던 질문이었는데 다양성을 존중한 이슬람 문화를 기반으로 한 이 곳이 왜 현대에 와서는 분쟁이 끊임없는 지역으로 변모했는지였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아무래도 핵심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서 짧게만 언급되는 정도라 아쉬웠다.(이 부분은 다른 책을 통해서 공부를 이어가야할 것 같다. - cf: 현대 중동의 탄생)
이건 책의 단점이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고 비슷한 듯한 인명, 지명들의 복잡도가 가져오는 피로도가 있다. 이건 어느 역사도 마찬가지이므로 감안하고 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집중해서 읽는수밖에 없다.


1994년 독일 출신의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가 이끄는 발굴조사단은 괴베클리 테페를 20 년간 집중탐사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곳은 인류 최초의 신전 유적으로 기원전 1만 2천년경 건설되었다. 수렵 채집시대에도 문명이 존재했음이 밝혀져 고고학계에 일대 사건이었다고 한다.
차탈회위크는 9,500년 전 인류 최초의 계획도시로 선사시대 거주지가 남아 있으며 도시문명의 기원인 장소이다. 특히 이곳은 남녀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고 차별이 거의 없었던 공동체 사회여서 주목하게 된다. 이는 차탈회위크의 가옥이나 테라코타 모신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2350년경 아카드 왕국은 바빌로니아 북부에서 시작하여 최초로 오리엔트 전역을 통합했다가 구티인에 의해서 멸망당한 후 기원전 1895년경 바빌로니아 왕국이 오리엔트를 재통일한다. 바빌로니아는 아카드를 기반으로 수메르 문명과 오리엔트 신앙을 받아들였다. 함무라비 왕때 전성기를 누렸으나 기원전 1595년경 히타이트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히타이트 제국은 아나톨리아에서 인류 최초로 철기문명을 일으킨 500년 제국이다. 히타이트법은 함무라비법을 발전시키면서도 여성의 권리를 이전에 비해 신장시키는 등 제국을 떠받치는 근간이 되었다. 히타이트는 영토 팽창을 가속화하면서 이집트 람세스 2세와의 정면 충돌하면서 카데시 전투(B.C. 1274)가 벌어졌다. 전투는 이집트의 판정패였지만 람세스 2세가 승리를 선전했고 이집트는 이후에도 살아남으면서 히타이트의 승리는 묻히고 말았다. 히타이트 제국의 멸망의 원인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천재지변, 기후변화, 전쟁, 화재 등을 꼽지만 가설일 뿐 밝혀진 것은 없다.


프리기아 왕국은 기원전 1200년경 수립되었으나 기원전 8세기 미다스 왕 때 아나톨리아 중서부를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프리기아는 그리스와 오랫동안 교류하여 그리스적 색채가 강한 문화를 띠었다. 미다스 왕이 사망한 후 기원전 620년이 되면 리디아가 프리기아를 빼앗고 기원전 540년에 페르시아군이 리디아를 빼앗으면서 결국 페르시아가 지역의 주인이 된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하다. 그리스와 전쟁을 벌인 역사로 여러 문헌이나 영화를 통해서 익숙한 탓이다. 페르시아는 인류 최초의 대제국이었고 이후 페르시아 국가와 구분하기 위해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라고 칭한다. 페르시아는 관용정책을 표방하며 지방분권 정책을 실시하였고 종교적으로는 유일신 기반인 조로아스터교를 받아들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수도 페르세폴리스가 세계유산으로 남아 있다.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 의한 침략으로 멸망하고 이후 파르티아가 이곳을 통일한다.


파르티아 제국은 로마 제국에 맞선 나라로 지금의 이란을 중심으로 500년을 이은 제국이다. 부끄럽지만 파르티아 제국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듯하다. 로마 제국의 위용이 있었다고는 해도 우리가 얼마나 서양 중심의 인식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용했는지 절감하는 대목이다. 파르티아는 오늘날의 이란과 이라크, 터키 일대를 포함하는 핵심 지역으로 로마와 중국, 동아시아 간 중개무역을 통해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고 한다. 한반도 문명과도 관련이 있는 곳이라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224년 건국되어 로마와 동로마 제국과 이웃하여 교역과 전쟁을 하면서 651년 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번영을 누린 이란계 제국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멸망으로 이란 민족에서 아랍 민족으로 지배 세력의 중심이 이동하게 된다.


압바스 제국은 610년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은 이후 651년 사산조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압바스 제국은 아랍인 중심에서 벗어나 피정복지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는 등 글로벌 국가의 면모를 보였다. 제국의 수도인 바그다드에는 세계 최초이자 최고 수준의 종합 아카데미 '바이트 알히크마'가 있었다. 이 때 신라와 고려에 관한 기록이 담긴 필사본이 작성되는 등 동시애 각지에 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10세기 이후 지방의 총독들의 힘이 커지면서 북아프리카 서부에는 파티마 왕조가 세워지고, 이베리아 반도에는 후우마이야 왕조가 칼리프를 자칭하게 도어 3인 칼리프 체제가 만들어진다. 10세기 중반이 되면 시아파의 부와이 왕조가 수도를 점령하고 실권을 장악하게 되어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종교적 권위에만 의존하게 되는 신세가 된다. 11세기 중반 셀주크 튀르크가 바그다드를 통합하지만 몽골이 1258년 바그다드에 침입하면서 500년 압바스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티무르 제국은 정치적으로는 몽골 제국을, 종족적으로는 튀르크를, 문화적으로는 이슬람을 표방하는 독특한 체계를 가진 제국이었다. 티무르는 이슬람 문화와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에 기반하여 14세기 중앙사이아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티무르는 정복지의 기술자와 장인을 수도에 데려와 학문의 발전에 밑받침하는 전략을 취하며 발전된 문화의 기반을 이끌었다. 티무르 사후 제국이 분열되고 16세기 초가 되면 우즈베크인의 무함마드 샤이바니가 중앙아시아 대부분을 가져가면서 멸망하였다(이 때 권력투쟁에서 밀린 자히르우드딘 바부르가 1526년 인도를 정복하면서 무굴 제국의 황제가 된다.).


이베리아반도에도 이슬람 문화가 번성한 시기가 있었다. 시리아의 우마이야 왕조가 750년 멸망하고 살아남은 왕족 일부가 이베리아반도로 넘어가 왕조를 세우는데, 그것이 후우마이야 왕조가 된다.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번영하면서 이슬람 문화를 전하는 창구로 기능했다. 1031년 후우마이야 왕조가 해체되고 나서 여러 이슬람 공국들이 난립하다 나스르 왕조가 1492년 에스파냐에 의해 통합되기까지 이어진다. 나스르 왕조의 역사적 건축물은 현재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으로 남아 있다. 나스르 왕조는 수도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루었으나 가톨릭교도에 의한 레콩키스타로 인해 국토가 축소되다 무함마드 12세가 모로코로 망명하면서 1492년 멸망한다.


사파비 왕조는 오늘날 이란의 중심도시인 이스파한을 수도로 오스만, 인도의 무굴 제국과 맞섰던 제국이었다.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하면서 기존의 순니파 이슬람 왕조 통치자들이 사용하던 '칼리프', '술탄', '아미르' 대신 '샤'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압바스 1세 전성기에 군제를 영국식으로 개혁하고 오스만의 영향을 받았다. 이스파한은 실크로드 중심도시로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로 성장한다. 현재 이스파한에 남아 있는 유적 대부분이 사파비 왕조 때 것이라 이란인들이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장소라고 한다.


오스만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과 함께 세계 3대 제국으로 불렸고 20세기까지 존속하면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제국으로 불린다. 1299년 수립되어 1922년 제국이 종말을 맞을 때까지 장장 623년의 역사를 영위하였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설립되면서 오스만의 문명은 터키로 이어지게 되었다. 소수집단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인재를 다양하게 등용하였고, 예니체리를 통해 남동부 유럽, 서아아시아,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이스탄불은 동서양, 이슬람과 기독교, 흑해와 지중해가 만나는 문명의 접점인 곳이어서 발전에 유리하기도 했으나 매너리즘이 만연하고 내부 권력의 다툼, 산업혁명 이후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18세기 이후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1922년 마지막 술탄 메흐메드 6세의 폐위로 제국은 종말을 맞이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슬람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용이었다. 공존과 다양성은 문명을 발전시키지만 반대로 다른 종교를 탄압하거나 자국의 문화만을 강조하게 되면 문명은 쇠퇴하는 길을 걷게 된다. 이는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이라고 보여지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종교, 민족의 갈등으로 인해 내전과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바뀔 수 없는건가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외면해온 문명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세계를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고 거시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세계는 동양과 서양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 유럽인들이 '오리엔트'라고 불렀던 중간문명이 존재한다. '해가 뜨는 곳'이란 의미의 라틴어 '오리엔스'에서 유래한 오리엔트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아나톨리아, 레반트, 중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인류 최초로 문명이 발아하고 성숙해 간 인류역사의 중심 무대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에서 고대 오리엔트나 중세 이후 중동의 역사는 동양사와 서양사 양쪽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보잘것없는 지역사에 불과하다. - P15


인류문명의 시원과 역사발전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왜 세계 4대 문명 중 세 곳이 아나톨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중동 일대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지중해를 통해 인류의 찬연한 역사와 문명이 꽃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좀 더 신선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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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8-07 공감(2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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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요람

이런 책이 있었다니 이희수님의 (이슬람)읽고 바로 사볼걸 안타깝다.

GILL HALE이 지은 (풍수) 읽어보십시오.

7일이 일주일의 단위가 된것도 바빌로니아인들이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한 결과 같은

그들의 문명이 현대에 미친 영향력은 과히 절대적이다.

P182 키루스의 관용과 다문화정책 오늘날의 한국이 배워야할 점이다.♡♡





내용에 종교와 유목민에 대해 많이 나오는데 오류가 좀 있습니다.

도안계풍수지리
법화경과 신약성서
대쥬신을찾아서 ㅡ 읽어보십시오

P314 고구려 각저총의 씨름선수 코도 보시고 김용운교수님의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와

(살아있는 백제사)도 참조해보십시오.☆☆




P337 (종이로 사라지는 숲이야기)읽어보십시오

진은 흉노계통이고 수와당은 선비계통입니다.(反중국역사)

P357 제1차 십자군 원정의 빌미가 된 만지케르트전투 이건 (십자군 이야기)에 안나왔던

내용인데 조사 많이 하셨네요.

P405 명은 1405년 티무르가 죽었기에 존속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책을 봐야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힐 수 있다.♡♡







P514 아프리카 평균자녀수 8명 르완다내전의 가장 근본원인은 인구폭발이었습니다

(진화의종말,제인구달평전)읽어보십시오.

코란에 여자는 아이를 많이 낳아야한다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하라 이남의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원인입니다.

16세기초 아프리카 인구 5천만 2012년 12억돌파☆☆





P524 설명을 너무 급하게하십니다.(빅맥이냐 김치냐,팔레스타인 현대사)읽어보십시오.

P539 하기아 소피아를 보면서 주식회사와 보험을 탄생시킨 동인도회사의 대표적 건축양식이며

한국의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 중앙청을 부수고 조선인구의 95%인 600년 서민들의 길인

종로 피맛골을 밀어버린 오세훈시장이 떠오른다.

종로3가 단성사는 한국영화의 태동지인데 밀어버렸고 영화인들은 관심도 없다.♡♡





책 전반에 걸쳐서 하나로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제국이건 소국이건 나라가 흥하려면

경제가 뒷받침되어야한다.

정도전이 기초를 닦은 조선은 상업을 억제하니 공업이 발전할 수 없고 공업이 발전할 수 없고

공업이 발전할 수 없으니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없고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없으니

나라에 부가 쌓이지 않고 나라에 부가 쌓일수 없으니 군대를 키울수 없고

군대를 키울수 없으니 변변한 싸움 한번 못해보고 식민지가된거 아니겠습니까 (한국,번영의 길)☆☆






내 아내 성진아는영부인이 되었습니다.

국제정치사, 나라의 흥망성쇠의 과정들, 우리역사도 아랍문화와 연계해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소재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제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통치체제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문화다.

책을 관통하는 시사점이 관용과 신분과 민족을 가리지 않고 능력만 있으면 차별없이

등용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만 매몰될때 국수주의나 인종주의의 망상에 빠지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세계는 넓고 문화교류는 많다.

드라비다어와한국어의 비교연구
훈민정음과 파스파문자. ㅡㅡㅡ 읽어보십시오 ☆☆

가을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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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88 2025-10-2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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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세계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실마리



인류 문명의 뿌리에 집중하면서 중간문명으로서 동서양 양 문명에 깊은 영향을 끼친 중동의 왕국과 제국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정리한 내용으로 구성했다고 해서 선택했는데...

휴~ 쉽지 않다. 세계사 책을 손 놓은 지도 너~~~무 오래되었고 내용도 너무 많아서 진짜 어렵다.

이 내용을 제대로 흡수하려면 한 번에는 불가능하고 마인드맵 같은 맵을 그려가면서 읽어야 어떻게 좀 정리가 되려나???

여튼 서양사에 기울어진 세계관에 빠져 있던 동양 역사를 잘 맞춰 넣으면 제대로 된 세계사를 만날 수 있을 거 같다. 단어도 낯설고 내용도 알던 것과 조금은 다른 듯도 하여 일반인들이 아무 생각 업이 읽기에는 진짜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지은이의 수고로움은 박수 받아 마땅할 것 같다.

덕분에 구멍을 좀 메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온전한 인류 역사의 복원이나 보편적인 역사 흐름의 이해를 위해서도 아카드,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페니키아, 트로이, 프리기아, 아시리아, 우라르투, 메디아, 페르시아,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 알바스 제국, 사파비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역사에 대해 그리스-로마 제국과 후속 유럽 국가들 못지 않은 비중을 두면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눈에는 누, 이에는 이 라는 구절로 상징되는 탈리오 법칙이 법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탈리오 법칙은 무제한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던 보복행위를 법을 근거로 제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리 정해진 운명이란 없으며, 타고난 이성과 자유 의지를 이용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이 그것이다. 좋은 생각을 하면 입밖으로 좋은 말이 나오고 자연히 좋은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좋은 삶으로 선순환된다는, 단순하지만 깊은 생활철학이 교리의 중심이다. 그래서 조로아스터 사원에 가면 항상 이 세 문구를 볼 수 있다.“

”지금은 고대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되면서 점점 더 많은 고대문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에 힘입어 동서양 역사인식이 점차 균형을 잡아가고 있지만, 아직 우리 세계사 교육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파르티아식 활쏘기는 중앙아시아 기마 유목민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수렵도에 보이는 고구려인의 활 쏘는 기술을 고구려의 고유한 기술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5세기에 제작된 수렵도보다 200년이나 앞선 파르티아의 문화적 요소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깊숙이 파고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산조 페르시아가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면서 우리가 이슬람 문화로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당초 페르시아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앙아시아와 한반도로 이어지는 육상 실크로드의 서단에 자리하면서 우리 문화의 성숙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이슬람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확산된 것은 무력을 통해 개종을 강요해서가 아니라 관용과 포용정책을 편 덕분이었다.“

”아랍의 증류법은 원의 간섭 하에 있던 고려에 전해져서 한국 소주 제조의 새로운 신기원이 되기도 했다.“

”아프리카는 ‘기록의로서의 역사’ 보다는 ‘기억으로서의 역사’라는 전통이 강한 사회였다. 기록은 처음부터 기록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큰 데다가 후일 권력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수정되고 미화되고 조작될 수 있지만, 공유된 기억은 가락 하나 숨소리 하나 틀릴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유형, 무형의 유산을 보존하고 전통을 이어가는 수백, 수천만 개의 공유되는 기억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종교에는 문자로 쓰인 경전이나 창시자, 외워야 할 기도문이 따로 없다. 구성원 모두의 기억에 살아 있고 일상의 삶 속에 녹아 역동적이고,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모든 제국의 존속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인재와 경제력, 체계화되고 정교한 통치체제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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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랑 2023-12-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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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본사 2부



2부 : 인류 대번영을 이끈 이슬람 문명의 역사



첫째, 세계사를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보기는 서구중심 세계사와 비교한다.

이슬람의 황금기 : 압바스(750~1258)

압바스 제국은 500년 이상 이슬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중동-서아시아 역사의 주도권이 페르시아인에서 아랍인으로 넘어갔다. 압바스 제국은 아랍인 중심에서 벗어나 피정복지의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고 차별과 배제를 최소화하면서 글로벌 국가로 거듭났다. 이슬람이 세계종교로 확산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 과학, 예술의 절정기를 이룬 무대가 압바스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였다. 1258년 바그다드는 몽골의 침략으로 초토화되면서 500년 압바스 제국의 수명을 다했다. 반세기가 지나서 오스만제국에 의해 재통일되어 아랍인에서 튀르크인으로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가 바뀐다.



이슬람은 예수의 신격을 부정하고, 철저한 일원론적 유일신으로 알라를 믿는 종교다. 이슬람에서는 아담에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로 이어지는, 《구약》에 기록된 많은 선지자를 시대적 임무를 띤 훌륭한 ‘인간 예언자’로 인정하고 추앙한다. 무함마드는 예수 이후 신이 보낸 마지막 인간 예언자로 여긴다.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떤 중재자를 두지 않기에 예수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기독교 사상과 근본정신이 다르다. 현세에서 행한 선악의 경중에 따라 신의 심판을 받고 천국의 구원과 지옥의 응징으로 운명이 나뉜다는 내세관과 모든 것은 신이 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예속된다는 정명 사상을 갖고 있다. (p. 325)



이슬람 공동체가 무함마드의 동료였던 아부바르크(재위 632~634) 칼리프 이후 30년 만에 이집트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제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를 서구에서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란 표현을 사용해 빗대곤 하지만, 당시 비잔티움 제국과 페르시아의 수탈과 착취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이슬람의 진출을 오히려 환영했고, 정복 과정에서 이슬람으로의 강제 개종은 실제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p. 327) 이슬람의 호전성과 종교의 강압적인 전파를 설명하려는 의도이다. 이슬람은 일단 무력을 사용해 정복한 후에는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살육하거나 직접 통치하기보다는 기존 토호 세력을 인정하며 그 지역에서 인두세(무슬림은 내지 않는다)를 거두어들이는 지방분권통치를 채택했고, 정복지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개종하면 세금 부담이 줄어드니 시간이 지날수록 개종하는 인구가 늘었다. 5대 칼리프 때에는 세금 감면을 노린 개종을 막기 위해 개종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꾸란》에는 강제 개종을 금하는 구절이 있다. “너희 주님이 원하시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게 될 터인데, 너희는 어찌하여 사람들을 강요해서 믿음을 갖게 하려는가”(《꾸란》10:99)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p.333) 이슬람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퍼진 것은 관용과 포용정책을 편 덕분이다.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적의에 가득 찬 수사는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 전역을 휩쓸던 이슬람 열풍을 막고 기독교 세계를 지키기 위해 당대 최고의 신학자이자 이슬람 연구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정립해 놓은 극도의 이슬람 혐오 사상의 영향이다. (p. 334) 7세기 이슬람이 태동하면서 취한 타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명백히 관용과 포용이다. 적어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중동의 이슬람 사회는 다양한 민족의 각기 다른 종교와 풍습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공존에 익숙했다. 중세 이슬람 사회에서 자신의 고유한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허용된 이교도를 ‘딤미(Dhimmi)’, 혹은 아홀 알딤마(ahl al-dhimma, 계약의 백성)라 불렀다. 딤미는 무슬림 국가에 의해 허용되고 보호받는 비무슬림 시민을 일컫는 법률 용어였다.



셀주크튀르크(1040~1157)

분열되었던 이슬람 세계는 11세기 셀주크튀르크 왕조에 의해 재통일 되었고, 압바스조의 칼리프로부터 ‘술탄’의 칭호를 받고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수호자를 자처했다. 1071년 셀주크조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티움 황제를 포로로 잡고 비잔티움군을 격퇴하였다. 아나톨리아 지역이 이슬람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제1차 십자군 원정의 빌미가 되었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은 기사 집단들 간에 통제 불능의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을 타개하고 1054년 동서 교회 분리 이후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간 비잔티움 제국의 동방 교회를 통합하여 로마 가톨릭의 관할 아래 둠으로써 교황권을 확대하는 데 있었다. (p.361) 예루살렘은 638년 무슬림에 의해 장악된 이후 종교적 차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한 번도 순례를 방해받지 않았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상황을 왜곡, 과장하면서 성지 탈환을 호소하며 유럽인들을 부추겼다. 일상적인 폭력과 성적 타락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칼을 포기할 수 없었던 기사들에게 이교로들 향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준 것이기도 했다. (p.362) 예루살렘을 정복(1099)한 십자군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학살했고, 제2차 전쟁 때부터는 주변국을 약탈하거나 콘스탄티노플을 초토화했다.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왕국 : 호라즘샤(1077~1231)

호라즘샤는 칭기즈칸이 등장하기 전까지 중앙아시아(아랄해 남쪽부터 오늘날 이란 영토까지)를 제패한 순니 이슬람 왕조다. 호라즘샤-몽골 전쟁에서 패하여 중앙아시아의 튀르크화와 이슬람 전파가 저지되고 이슬람 문화도시들(사마르칸드, 호라산, 헤라트 등)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유럽인들은 몽골에 호라즘샤가 무너지자 안도했다. 그래서인지 몽골의 문화 말살과 살육보다는 칭기즈칸의 통치정책, 몽골군의 군사 전략, 문화 교류를 통한 이류 문명에 대한 기여 등을 연구하여 칭기즈칸을 우상화하고 영웅담을 확대재생산 해왔다. (p.384)



인류 최대의 대제국 : 오스만(1299~1923)

오스만제국은 20세기까지 존속한 인류역사상 최대의 제국이다.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과 함께 ‘세계 3대 제국’이라고 한다. (p.523) 13년 만에 분할된 알렉산더 제국, 반세기 만에 와해한 몽골 제국에 견줄 때 인구, 지배영역, 문화 수준, 세계관 등에서 명실상부한 대제국이다. 소수집단에 자치권 부여, 밀레트 제도(인재 등용 정책), 예니체리 등을 통해 남동부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세 대륙을 석권했다. 흑해, 에게해, 지중해, 페르시아만 바다를 독점했으며, 카스피해와 대서양은 물론 인도양까지 영향을 미쳤다.

1453년 오스만제국의 공격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무너졌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군대에 함락되기 직전 교황청과 유럽 국가들로부터 군대를 파병하겠다는 제의가 왔다. 하지만 1204년 제4차 십자군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던 비잔티움 시민들은 콘스탄티누스 11세와는 달리 이교도의 터번에 무릎을 꿇을지언정 로마 가톨릭의 지배를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면 유럽의 파병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스스로 패망의 길을 택했다. (p.365) - 『인류 본사』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진출로 인해 오리엔트 지역을 통한 종래의 동서 교역로가 차단되면서 유럽인들이 동방으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P. 541) 신항로 탐험은 오스만이 유럽에 진출하기 전에 이미 포르투갈인들이 시작한 일이다. 게다가 튀르크인들이 유럽에 진출한 후 동서 교역로는 오히려 활성화되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신항로 탐험에 나선 것은 이탈리아 상인들이 ‘지중해-홍해-인도양 루트’를 이용하는 유럽과 동방 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소외된 이베리아반도의 상인들이 지중해와 홍해를 거치지 않고 대서양으로 나가는 또 다른 항로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둘째,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던 내용에 새로운 지식을 보탠다.

이슬람의 황금기 : 압바스(750~1258)

신라와 고려에 관한 기록이 담긴 수십 권의 필사본이 작성되고 보존된 것도 압바스 제국 때였다.

살라딘의 지도자로서의 덕성은 후일 유럽 기사도의 전형이 되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사자왕’ 리처드가 맨땅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백마 2필을 보내주며 왕의 권위와 체통을 지킬 수 있게 해줄 정도였다. 사후에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 말하고 세상을 떠났다.



중앙아시아의 르네상스 : 티무르(1361~1526)

티무르 제국은 정치적으로는 몽골 제국의 후예임을, 종족적으로는 튀르크 민족성을, 문화적으로는 페르시아 문화를,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을 표방한 독특한 통치체제를 갖춘 나라였다. 티무르는 30년이 넘는 재위 기간 대부분을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정복지에서 공예기술자, 장인을 데려다 사마르칸트를 세계적인 도시로 꾸몄고, 학자와 문인을 우대하여 학문의 발달을 밑받침했다. 천문학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동서 교통로를 통해 유럽과 동아시아로 전달해 주었다. 티무르 왕조 패망 시기에 권력 투쟁에서 밀린 자히르우드딘 바부르는 1526년 인도를 정복하여 무굴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티무르 제국의 문화와 종교, 제도 등은 고스란히 인도의 무굴제국에 계승되었다. 티무르 제국의 과학을 비롯한 학문상의 혁신 중 일부가 원과 명 시대 중국을 거쳐 15세기 조선, 특히 세종대 조선의 르네상스로 연결되었다. 저자는 당시 세계를 주도하던 이슬람 문명의 영향과 도입 없이 유럽의 르네상스나 조선의 과학 발달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p. 408)으로 본다.



이베리아반도에 꽃 핀 이슬람 문화 : 후우마이야와 나스르(756~1492)

후우마이야 왕조는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왕조가 압바스 왕조에 패망하고 6년 후인 756년부터 1031년까지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번성하며 중세 유럽에 이슬람 문화를 전하는 창구로 기능했다. 나스르 왕조는 이베리아반도에서 꽃 핀 800년 이슬람 문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왕조였다. 알함브라 궁전은 나스르 왕조의 유산이다. 후우마이야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에 전체 인구의 10%에 달했던 유대인들은 아랍 인구를 능가하는 비율이었다. 무슬림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비즈니스와 학문 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들은 세파르딤으로 디아스포라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한 유대인들의 후손이다. 오늘날 아슈케나짐(동유럽 거주 유대인), 미즈라힘(중동 및 남아시아 거주 유대인)과 함께 유대인 혈통의 주류를 이룬다. 나스르 왕조는 르네상스 이전에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놀라운 학문과 건축기술,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루었다. 1492년 나스르 왕조는 멸망하고 이베리아반도는 781년 만에 기독교 왕국의 손에 넘어갔다.





이란 시아파의 자존심 : 사파비(1500~1736)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받아들여 오늘날 이란이 시아파의 종주국이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칼리프’나 ‘술탄’, ‘아미르’ 대신 고대 페르시아 왕조의 황제 칭호였던 ‘샤’를 사용하며 이란 정체성의 뿌리를 분명히 했다. 이스파한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유적은 대부분 사파비 때의 것이다. 테헤란을 ‘이란의 두뇌’라 부르는데, ‘이스파한’은 ‘이란의 심장’으로 여긴다. 이란 역사에서는 사파비 왕조의 개창을 근대화의 시작으로 본다.

사파비의 영적 중심은 수피즘이다. 《꾸란》을 읽고 해석할 줄 몰라도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하면 알라께서 찾아오실 것이며, 자기 수양으로 알라를 영접할 수 있다고 하여 신앙의 길을 넓혔다.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

북아프리카에서는 아랍계 무슬림의 정복 활동을 통해 이슬람이 확산하였고, 동아프리카에서는 교역활동을 통해 이슬람이 확산하였다. 인류역사상 가장 짧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전쟁 기간은 총 38분밖에 안 되는 1896년 영국과 잔지바르 간 전쟁의 당사자인 잔지바르(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곳)는 아라비아 반도국인 오만 술탄령이었다. 무슬림인 아랍인들이 동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교역에 종사했음을 알 수 있다.



인류 최대의 대제국 :오스만(1299~1923)

1차대전에서 독일, 오스트리아와 함께 동맹국에 가담하여 패전함으로써 제국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무너졌다. 하나의 아랍공동체가 22개 개별 국가로 나뉘어 독립하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발칸반도를 뺏김으로써 보스니아 무슬림 학살, 코소보 내전, 체첸 사태와 같은 복잡한 갈등과 분열의 상처가 생겨난다.

소수민족 보호제도인 ‘밀레트(milet)’는 오스만제국 다문화 포용정책의 핵심이다. 밀레트는 아랍어 ‘밀라(mila)’에서 유래한 용어로, 터키어로 종교, 종교 공동체, 민족이라는 세 가지 뜻이나 민족보다는 종교 공동체의 성격이 강하다. 제국의 신민을 종교에 따라 구분하여 각 종교 공동체에 귀속하고, 자신들의 율법과 관습에 따른 자치를 허용하는 제도이다. 다만 오스만 술탄에게 복종해야 했다. 무슬림, 그리스 정교도, 아르메니아 기독교인, 유대교도로 구성된 4개 공동체가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밀레트였다. 각 밀레트는 무슬림과 관련된 송사 외에는 오스만 중앙정부의 간섭없이 결혼, 이혼, 출생, 사망, 교육, 언어, 전통 등에서 완전한 자치를 누렸다. 모든 밀레트 구성원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출세를 할 수도 있었고, 개종하여 다른 밀레트로 이주할 수도 있었으나 밀레트 이주를 권장하지 않았다. 밀레트는 오스만 제국 500년 역사를 통틀어 이질적이고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포용하고 오스만 제국이라는 이름아래 통합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면서, 민족 간의 갈등이나 분쟁 없이 안정된 국가를 유지하는 초석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은 아랍인들에게는 ‘후사인-맥마흔 서한(1915~1916)’을 통해 전후 오스만의 영토인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지지한다고 전하고, 유대인에게는 ‘밸푸어 선언(1917)’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민족 국가를 세우라고 부추겼다. 그러면서 정작 프랑스와는 비밀리에 ‘사이크스-피코 협정(1916)’을 맺어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를 약속받았다. (p.599) 실제로는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 건국을 도왔다. 모순된 영국의 행보는 중동 지역에 끊이지 않는 분쟁의 불씨다. 저자는 오늘날 중동의 갈등과 분열,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오스만 제국의 와해로 인한 역사적 후유증인 셈으로 본다.

타지마할을 낳은 제국 : 무굴(1206~1857)

무굴제국은 이슬람 문화에 페르시아와 힌두 문화를 융합한 독특한 문화를 창출했다. 돋보이는 예술 장르는 ‘라지푸티나 회화’와 ‘궁정 세밀화’이다.



셋째, 나름대로 아쉬운 부분은 더 깊게 배울 방향을 찾는 소재로 삼는다.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

기존 세계사에서 아프리카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최근 일부 소개하기 시작했으나 서양과 이슬람이 남긴 기록에 의지한다. 아프리카 역사 재구성의 한계다.

이집트 문명, 누비아 문명, 쿠시 왕국, 악숨 왕국이 기원전에 번성했다. 유럽 중세에 해당하는 시기에 아프리카 서부네 가나왕국(700~1240), 르네상스 시기에 말리 왕 (1235~1670), 송가이 왕국(1464~1591)이 수준 높은 문명을 주도했다. 아프리카 동남부에서는 짐바브웨 왕국(11세기~1450), 남부에는 무타파 왕욱(1430~1760), 동부에서는 에티오피아 왕국(1137~1987), 중부와 서부에 각각 콩고 왕국(1390~1914)과 베넹 왕국(1180~1987)이 번성했다.

가나왕국은 사하라 횡단 무역으로 금, 은, 상아, 소금을 낙타를 통해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유럽의 물품과 교환해 수익을 올렸다. 팀북투와 모로코의 시질마사를 잇는 서쪽 교역로가 가장 활발했다.

말리 왕국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였고, 당시 아랍-이슬람 세계와 폭넓게 교류했다. 이때 축조된 이슬람 대사원이 흙벽돌로 지은 ‘젠네 대모스크’이다. 말리 왕국의 무슬림 ‘만사 무사’는 1324년 메카로 순례를 떠났는데, 동원된 사람이 6만 명, 그 중 1만 2,000명는 그를 수행하는 노예였다. (p.501) 아랍인 역사학자 알마크리지와 이븐 할둔이 기록한 사실이다. 이슬람의 아프리카 수용은 종족성의 초월, 스와힐리어로 나타났다.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다시 읽을 기회다.



인류 최대의 대제국 : 오스만(1299~1923)

크림 전쟁 참전을 계기로 유럽 열강이 오스만제국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한 1876년에 등극한 술탄 압둘하미드 2세는 탄지마트 정책이 추구하던 서구 지향적인 정치개혁을 중단하고, 무슬림의 지주성과 이슬람 이념의 통일을 바탕으로 하는 보수 정치로 회귀했다. 제국 와해의 위기 속에서도 다방면의 협력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했고, 1909년에는 대한제국에 비밀리에 사절을 보내 한반도 사정을 정탐하기도 했다. (p.596)

제1차 세계대전 중 동맹국 편에 섰던 오스만제국은, “협상국의 한 축인 러시아가 제국의 동부를 침략해 옴에 따라 대안 없이 동맹국에 가담하여 국권을 지키려 했다.”(p.597) - 영국 편에 서려 했으나 받아 주지 않아 독일 편에 서게 됐다고 알고 있었다. 더 공부해야 할 역사적 배경이다 -



타지마할을 낳은 제국 : 무굴(1206~1857)

무굴제국은 330년 넘게 인도 아대륙에 번성했던 이슬람 왕조다. 무굴제국은 인도 아대륙에 국한된 지역 국가로 평가절하되면서 제국의 실체와 문명의 깊이를 제대로 고찰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무굴제국은 티무르 제국의 후예다. 무굴제국은 토착 문화와 융합하고 종교 간 화해와 다른 가치에 대한 관용을 바탕으로 독특하고 창의적인 문화를 이룩했고, 주변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목문화를 토착 힌두적 토양에 새롭게 이식함으로써 다원성이 발현되는 최고의 문화 용광로를 가동할 수 있었다. 수학, 천문학, 의학 분야는 물론 건축 분야에서도 타지마할로 대표되는 불멸의 문화를 꽃피웠다. 1857년 영국의 식민 통치받다가 1947년 간디 주도로 독립했으나, 800년 이상 인도 아대륙의 정치와 경제를 주름잡았던 북부의 이슬람 공동체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로 독립하였다. 무굴제국에 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

인도 남동부의 퐁디셰리는 힌두가 아닌 타밀족의 문화와 정신을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그중 ‘랑골리’는 쌀가루, 석회가루, 색모래, 꽃잎 등의 안료를 사용하여 마당이나 거실의 바닥을 장식하는 그림이다. 집을 나서거나 집에 들어올 때 밟는다. 세계적인 영적 공동체 오로빌(Aurovile) 도 있다. 40개 나라에서 온 1,800여 명이 공동체 생활을 한단다.



끝으로, 『인류 본사』가 가진 의미를 나름대로 적어본다.

낱권으로 중동 사람들의 종교, 역사, 문화를 다룬 책들이 있다. 40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책들이다. 머리가 커지면서 가졌던 지적 호기심은 이슬람 세계에 관한 관점을 갖고자 노력했다. 제국주의 국가와 서구 자본주의가 포장(왜곡, 축소 등)해 놓은 사실과 역사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막연했던 지적 호기심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물결을 따라 나온 책들을 보면서 일부 풀어간다. 하지만 완벽에 이를 수는 없다. 학교 교육으로 배운 것은 유럽 중심주의 관점에서 쓴 세계사 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글을 읽을 줄 알고, 지적 호기심이 있어 스스로 배우려는, 이른바 교양 쌓기를 하고 있어서 이희수의 『일류본사』를 만났다. 아마도 『일류본사』는 앞으로 읽게 될 오리엔트-중동에 관한 책들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기준으로 삼아야 할 듯하다. 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과 무굴제국의 정치 경제와 문화,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오스만제국의 국제 정세 판단에 대해서는 한 걸음 더 디뎌봐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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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hill 2024-03-1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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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본사 요약과 평론

1. 요약: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선 5,000년 이슬람·오리엔트 문명사

<인류본사>는 평생을 이슬람과 중동 지역 연구에 바친 역사학자 이희수가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인류 문명의 진정한 뿌리와 줄기를 복원하고자 집필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배우는 세계사가 지나치게 유럽과 서구 중심주의에 편향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인류 역사의 주무대였던 오리엔트와 이슬람 문명을 중심으로 인류사를 재구성한다.

책은 크게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째, <문명의 시원으로서의 오리엔트>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를 비롯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모두 오늘날의 중동 지역에서 탄생했다. 저자는 그리스·로마 문명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 오리엔트 문명의 풍요로운 자양분을 흡수하여 피어난 아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문자, 법률, 천문학, 수학 등 인류 삶의 기초가 되는 유산들은 모두 중동에서 시작되었다.

둘째,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와 지식의 번역>이다. 8세기부터 14세기까지 이슬람 제국은 전 세계의 지식을 흡수하고 발전시킨 거대한 용광로였다. 특히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Bayt al-Hikma)을 중심으로 전개된 <번역 운동>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슬람의 대수학, 의학, 항해술, 화학 등이 없었다면 유럽의 르네상스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풍부한 사료로 증명한다.

셋째, <공존과 관용의 역사>이다. 흔히 이슬람이라고 하면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꾸란>이라는 호전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이는 서구 기독교 세계가 왜곡한 프레임에 불과하다. 이슬람 제국은 종교적 관용 정책(지즈야 제도)을 통해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포용했으며,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개방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팍스 이슬라미카(Pax Islamica) 체제 아래서 동서양의 교역과 문화 교류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음을 강조한다.

2. 평론: 균형 잡힌 세계사를 위한 세계인의 필독서

<인류본사>는 단순히 낯선 이슬람 역사를 소개하는 대중서를 넘어, 우리 머릿속에 박혀 있는 역사적 편견을 통렬하게 깨부수는 <인식의 전환점>을 제공하는 저작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의 다각화>에 있다. 인류 역사를 서구의 발전 과정(고대 그리스·로마 -> 중세 암흑시대 -> 르네상스 -> 근대화)으로만 이해해 온 독자들에게, 서구가 암흑에 갇혀 있을 때 인류 문명을 선도했던 이슬람 세계의 역동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의 말대로 서구 중심의 세계사는 인류사의 절반만을 보여주는 반쪽짜리 역사에 불과하며, 이 책은 나머지 절반의 퍼즐을 완벽하게 채워 넣는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슬람 문명이 지닌 <세계인(Cosmopolitan)적 면모>를 부각한 점이다. 이슬람 제국은 단일한 민족국가나 배타적 종교 공동체에 머물지 않았다.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연결하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아우르는 거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그 안에서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문화적 융합을 이뤄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나 충성심보다 문명 간의 교류와 공존을 우선시했던 이슬람의 개방성은, 오늘날 다원화된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저자가 서구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문명의 성과를 다소 과도하게 옹호하거나 감정적으로 서술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이슬람 세계 내부의 갈등이나 한계에 대한 냉철한 비판보다는, 서구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는 데 힘을 쏟다 보니 서술의 무게추가 이슬람 쪽으로 다소 쏠린 경향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지닌 학술적, 대중적 가치는 퇴색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처럼 서구 지향적인 문화적 편향성이 강한 환경에서, <인류본사>는 균형 잡힌 세계 시민의식을 기르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과도 같다. 특정 지역이나 민족의 경계를 넘어 인류 문명의 보편적 흐름을 거시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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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큰 논지와 이희수 교수의 지적 배경을 함께 보아 요약하겠습니다. 단순 문명사 요약이 아니라, 한국 독자에게 이 책이 왜 의미 있는지도 같이 평가하겠습니다.

<인류본사>(이희수, 휴머니스트, 2022)는 제목부터 강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본사”는 회사 본사가 아니라 <인류 역사의 본류>라는 뜻이다. 이희수는 인류문명의 중심을 그리스·로마와 서유럽으로 보는 통상적 세계사 서술을 비판하고, 아나톨리아·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중앙아시아·이슬람권을 인류사의 핵심 축으로 복원하려 한다. 출판사 소개도 이 책을 “오리엔트-중동 지역의 역사를 인류의 뿌리 역사, 즉 본사로서 선언”한 저작으로 설명한다.

이 책의 기본 관점은 “동양 대 서양”이라는 익숙한 이분법이 세계사를 심하게 왜곡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세계사 교육도 대체로 서양사는 그리스·로마에서 근대 유럽으로, 동양사는 중국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 사이에 있는 아나톨리아, 메소포타미아, 이란고원, 중앙아시아, 이슬람 세계는 문명의 주변부처럼 취급된다. 이희수는 바로 이 “사이”가 사실은 주변이 아니라 중심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 지역을 <중간문명>, 혹은 동양과 서양을 잇는 <중양>의 세계로 본다. 알라딘 소개도 이 책이 “서양사도 동양사도 아닌 오리엔트-중동 관점의 인류본사”를 쓰려는 시도라고 정리한다.

책의 출발점은 아나톨리아 문명이다. 괴베클리 테페와 차탈회위크는 인류가 농경, 정착, 제의, 공동체 질서를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다. 이희수는 문명의 시작을 단순히 국가나 문자 출현 이후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이 세계를 의미화하고 집단적 질서를 만든 깊은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점에서 책은 단순한 왕조사가 아니라 문명사의 성격을 띤다.

이어지는 핵심 무대는 메소포타미아와 바빌로니아다. 함무라비법, 도시국가, 관개농업, 문자, 법, 행정은 근대 국가 이전 인간 사회가 어떻게 복잡한 제도와 권력을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다. 이희수는 이 지역을 “오래된 과거”로만 보지 않는다. 법, 국가, 상업, 제국, 종교적 상상력의 원형이 여기서 형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중동은 단지 오늘날 분쟁과 석유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기본 문법이 만들어진 곳이다.

히타이트와 프리기아 부분은 이 책의 중요한 장점이다. 일반 독자에게 히타이트는 성경이나 고대사 주변부의 이름 정도로 남아 있지만, 이희수는 철기 기술, 카데시 전투, 조약 외교, 다민족 통치의 관점에서 히타이트를 복원한다. 프리기아 역시 미다스 왕의 신화에 갇힌 나라가 아니라, 신화와 역사가 교차하는 아나톨리아 문명의 한 축으로 다루어진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그리스 문명이 고립적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아나톨리아와 오리엔트 세계와의 긴 접촉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알게 된다.

페르시아 제국 서술은 이 책의 중심부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는 “인류 최초의 대제국”으로 제시된다. 이희수는 페르시아를 그리스의 적으로만 보는 서양 고전사적 관점을 비판한다. 페르시아는 폭정의 상징이 아니라, 광대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종교·언어를 통합한 정교한 제국이었다. 왕의 길, 역참제, 지방 총독제, 종교적 관용, 행정 체계는 이후 여러 제국의 모델이 되었다.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는 로마와 맞선 동방 제국으로, 동서 교역과 문화 교류의 중요한 주체로 그려진다. 특히 사산조는 이슬람 이전 이란 문명의 정점이자, 이후 이슬람 문명에 흡수되어 지속된 중요한 유산으로 설명된다.

2부는 이슬람 문명의 역사다. 압바스 왕조는 번역운동, 과학, 철학, 의학, 수학, 도시문화의 황금기로 제시된다. 이희수는 이슬람을 종교만이 아니라 거대한 문명 복합체로 본다. 이슬람 문명은 그리스 철학, 페르시아 행정, 인도 수학, 중앙아시아 상업, 아랍어 지식 세계를 결합했다. 따라서 근대 유럽 르네상스도 이슬람 세계의 지식 중개 없이는 설명되기 어렵다.

중앙아시아의 호라즘샤와 티무르 제국, 이베리아반도의 후우마이야와 나스르 왕조, 이란의 사파비 왕조, 서아프리카의 말리와 송가이, 오스만 제국, 무굴 제국까지 다루는 후반부는 책의 시야가 매우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목차도 아나톨리아·바빌로니아·히타이트·페르시아에서 시작해 압바스·티무르·나스르·사파비·말리·송가이·오스만·무굴까지 15개 제국과 왕국을 포괄한다. 이 구성은 중동을 좁은 아랍권으로 한정하지 않고, 지중해·아프리카·중앙아시아·남아시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문명권으로 파악하게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사의 시선 교정>이다. 한국 독자들은 대체로 서양 중심 세계사와 중국 중심 동양사 사이에서 교육받았다. 그 결과 이란, 튀르키예, 중앙아시아, 아랍 세계, 북아프리카, 인도 무굴 세계는 자주 빠진다. 그런데 실제 역사에서는 이 지역이 동서 교역, 종교 확산, 과학 지식, 제국 통치, 군사 기술, 도시문화의 핵심 경로였다. <인류본사>는 바로 이 빠진 연결고리를 복원한다.

둘째 장점은 저자의 문제의식이 현재적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중동은 흔히 전쟁, 테러, 난민, 종교분쟁, 석유, 독재의 이미지로 소비된다. 그러나 이희수는 그 지역을 “문제 지역”이 아니라 “문명의 원천”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이것은 단순한 지역 편들기가 아니다. 서구 근대가 스스로를 문명의 정점으로 설정하면서 그 이전과 주변을 낮추어 본 역사관에 대한 교정이다.

셋째 장점은 대중교양서로서의 힘이다. 이 책은 전문 연구서처럼 한 주제를 깊게 파고들기보다, 방대한 문명사를 큰 흐름으로 엮는다. 그래서 독자는 세계사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한국어 독자에게는 중동·이슬람·페르시아·중앙아시아를 한 권 안에서 연결해주는 입문서로 가치가 크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첫째, 제목의 “본사”라는 표현은 강한 만큼 위험하다. 서양 중심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중동 중심주의로 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문명의 중요한 뿌리가 오리엔트-중동에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모든 인류사의 본류를 이 지역 하나로 환원하면 중국, 인도, 아프리카, 아메리카, 동남아시아의 독자적 문명 전개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

둘째, 책의 범위가 너무 넓다. 1만 2천 년, 15개 제국과 왕국, 여러 대륙을 한 권에 담다 보니 각 지역의 내부 갈등, 계급 구조, 젠더 질서, 피지배 민중의 삶은 상대적으로 압축된다. 제국과 문명의 성취가 중심이 되면서, 노예, 농민, 여성, 소수종교, 변경민의 경험은 덜 보일 수 있다.

셋째, “문명”이라는 말 자체가 조심스럽다. 문명사는 큰 시야를 제공하지만, 때로는 국가와 제국의 업적을 아름답게 포장할 위험이 있다. 오스만, 페르시아, 무굴, 압바스는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군사 정복, 조세 수탈, 궁정 권력, 종교적 위계도 갖고 있었다. 문명을 복원하되 제국을 낭만화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인류본사>는 한국 독자에게 매우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은 “중동은 왜 늘 분쟁 지역인가”라는 질문을 “왜 우리는 중동을 분쟁 지역으로만 배웠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게 한다. 그 전환만으로도 책의 의의는 크다. 이희수는 인류사를 서유럽의 자기완성 과정으로 보지 않고, 오리엔트-중동이라는 거대한 중간지대를 통해 다시 읽자고 제안한다.

한 줄로 말하면, <인류본사>는 <서양 중심 세계사의 결락을 오리엔트-중동 문명사의 관점에서 메우려는 대담한 교양 역사서>다. 완전한 대체 세계사는 아니지만, 기존 세계사 지도의 빈칸을 크게 흔들어 보여주는 책이다. 세진님이 관심을 가져온 이란, 이슬람, 중앙아시아, 동서문명 교류의 문제와도 잘 맞는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 페르시아와 이슬람 문명을 “서양의 반대편”이 아니라 “인류문명의 중간 허리”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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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본사>는 한국 독자에게 매우 필요한 책이다] --- 특히 <한국 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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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특히 한국 독자에게>라고 한 것은 단순히 “한국 사람이 읽으면 좋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의 세계사 이해 구조에 이 책이 찌르는 지점이 꽤 크기 때문입니다.

한국 독자의 세계사 인식은 대체로 세 축으로 형성되어 왔습니다.

첫째, <서양사 = 세계사의 중심>이라는 구도입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중세 유럽,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근대 국민국가, 제국주의, 냉전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세계사의 “본줄기”처럼 배워졌습니다. 이 흐름에서는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이슬람, 중앙아시아가 자주 “서양사의 배경” 또는 “동서 교역의 통로” 정도로 처리됩니다.

둘째, <동양사 = 중국사 중심>이라는 구도입니다. 한국에서 동양사는 대체로 중국 왕조사, 유교문명, 한자문화권, 일본사와 연결됩니다. 그러다 보니 이란, 아랍, 튀르키예, 중앙아시아, 이슬람 인도, 북아프리카는 “동양”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서양”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애매한 영역으로 남습니다.

셋째, 한국 근현대사의 경험 때문에 세계를 <서구 근대 vs 동아시아 후진성/식민지성>의 틀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선은 왜 근대화에 실패했는가, 일본은 어떻게 근대화했는가, 서구 제국주의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하는 질문이 강합니다. 이 질문은 중요하지만, 세계사를 너무 서구 근대의 성공/실패 문제로 좁힐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인류본사>는 한국 독자에게 “빠진 세계사”를 보여줍니다. 즉, 그리스·로마와 중국 사이에 있었던 거대한 문명권, 곧 아나톨리아·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이슬람·중앙아시아·오스만·무굴의 세계를 복원합니다. 한국 독자에게 이 지역은 대개 “중동 분쟁”, “이슬람 테러”, “석유”, “난민”, “팔레스타인 문제”, “이란 핵 문제” 같은 현대 뉴스 이미지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희수는 이 지역이 사실 인류 도시문명, 법, 제국 행정, 종교, 과학, 철학, 상업 네트워크의 핵심 무대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한국 독자에게 특히 필요하다>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한국의 세계사 교육과 대중적 역사감각에서 가장 크게 비어 있는 부분이 바로 오리엔트-중동-이슬람-중앙아시아 문명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 독자에게 세 가지 교정 효과를 줍니다.

첫째, 중동을 “문제 지역”이 아니라 “문명의 원천”으로 보게 합니다.
둘째, 서양 근대가 세계사의 유일한 중심이라는 생각을 흔듭니다.
셋째,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만이 “동양”이라는 좁은 관념을 넓힙니다.

다만 “한국 독자에게 특히 필요하다”는 표현에는 약간의 위험도 있습니다. 한국 독자가 무지하다는 식으로 들리면 안 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 독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교과서적 세계사 틀이 이 지역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의 의미가 크다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이렇게 고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인류본사>는 한국 독자에게 특히 의미가 크다. 한국의 세계사 이해는 오랫동안 서양사는 유럽 중심으로, 동양사는 중국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다. 그 사이에 놓인 오리엔트·중동·페르시아·이슬람·중앙아시아 세계는 문명의 중심이었음에도 주변부처럼 다루어졌다. 이 책은 바로 그 결락을 메우며, 중동을 오늘의 분쟁 지역이 아니라 인류문명의 오래된 중심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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