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4, 2026
[당신은 왜 이란 공격을 비판하는가> . Jean Cumm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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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Cumm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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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이란 공격을 비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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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Cummings
Political Columnist / Former Publisher, The Asia Post
March 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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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란 공격으로 하메네이가 사망한 사건은, 이란 여성들에게 단순한 정치적 변화 이상의 거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뼛속 깊이 새겨진 억압의 상징이 무너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여성들은 ‘의무 히잡’이라는 이름 아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마음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거리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뺨을 맞고, 채찍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일은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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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주하는 많은 이란계 젊은 Z세대에게도 하메네이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 그리고 자유와 종교적 강요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라온 삶이 어디로 향할 것 인가를 가늠하는 문제다. 이들에게 그것은 체제 변화의 뉴스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되찾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상당수의 젋은 이슬람 여성들은, 미국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자라며, 자유, 개인의 선택권, 표현의 권리, 여성의 자율성을 자연스러운 가치로 배우며 성장했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는 전혀 다른 질서가 존재했다. 부모 세대가 여전히 유지해 온 보수적이고 종교 중심적인 규율, 특히 여성의 복장과 행동에 대한 통제는 이들에게 가정 내 문화적 갈등과 가족 간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상처와 억눌린 감정을 안고 성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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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히잡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권의 문제다.
그들에게 히잡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강요와 억압”의 문제다.
이 세대에게 이란의 변화는 우리가 외부에서 분석하는 지정학적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 그들에게 그것은 자신의 뿌리와 미래, 여성으로서의 존엄과 정체성, 그리고 부모 세대가 지닌 세계관과의 긴장에 관한 문제다.
우리가 ‘체제 변화’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에게는 개인적 기억과 가족사, 그리고 그들의 아픔에 대한 문제다. 그래서 지금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격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트럼프를 외치는 것이다.
그들에게 자유를 찾아줄 사람은 오직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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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란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그들에게는 뉴스 헤드라인이 아니라 “자신이 앞으로 어디에 속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생명과 인간 존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해서 함부로 비판하는 것을 멈춰야한다.
"내가 나로서 살 권리"를 철저히 짓밟히는 참담함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란 국민들에게 '자유'라는 단어가 얼마나 피맺힌 절규인지 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머리를 풀어 헤치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마음대로 패션을 즐기며, 화장과 성형을 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한국의 여성들은 이란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바엔 차라리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해 비판하고 싶어도 침묵해야 마땅하다.
만약 한국의 모든 여성들에게 종교를 강제하고, 당장 내일부터 무조건 히잡을 쓰고 얼굴을 가리고 다니라고 억압한다면 과연 한국 여성들은 며칠이나 이러한 억압을 견딜 수 있겠는가?
이란의 여성들은 남편이나 가까운 핏줄이 아니면, 사촌이나 시동생 같은 가족 앞에서도 머리카락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율법상 죄인이 된다. 트럼프의 이란 공격에 대해 비판하는 당신들은 평생을 감시와 통제 속에 짓눌려 사는 그런 끔찍한 삶을 단 하루라도 살아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고 피 흘리며 싸우는 이란 국민들의 처절한 투쟁을 함부로 조롱하지 마라.
이란을 공격한 트럼프를 향해 살인자라며 맹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은, 정작 하메네이 정권 치하에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죽어가는 이란 민중의 피눈물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염려해 본 적도 없는 인간들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저 남의 나라 일이라며 이란 민중이 겪는 지옥 같은 고통은 철저히 외면하며, 심지어 이를 얄팍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한국 좌파들. 이란 공격을 두고 알량한 '인권' 운운하는 이러한 세력들은, 수많은 자국민을 도살한 하메네이 독재 정권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위선자들이며, 인권 말살의 공범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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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는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 가쉬트에 에르샤드(Gasht-e Ershad)에 구금된 뒤 사망했다.
그녀의 죽음은 “Woman, Life, Freedom(여성, 삶, 자유)”이라는 구호로 번진 거대한 시위를 촉발했고, 세계를 충격과 분노 속에 몰아넣었다.
수천 명의 젊은 여성들이 “There is no worse life than death(죽음보다 더 나쁜 삶은 없다)”라고 외치며 머리카락을 자르고 불태웠다.
그 시위에서 수백 명이 총에 맞아 숨졌고, 수천 명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하메네이는 그 모든 폭력의 최종 승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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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파트와(fatwa, 이슬람 종교 칙령)와 명령 아래에서 여성의 몸은 국가의 소유물처럼 취급되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침묵을 강요당했다.
대학에 가도, 일자리에 지원해도, 이혼을 원해도, 심지어 아이를 낳는 문제조차 남성 후견인(아버지, 남편, 아들)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였다.
여성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 춤을 추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는 것조차 범죄가 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이란이다. 그래서 이란의 여성 운동가들은 지도 순찰대의 눈을 피해 지하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왔다.
그들은 늘 두려움과 분노 사이를 오가는 삶을 견뎌야 했고, 자유를 갈망하는 젊은 자녀들과 부모 세대 사이에는 깊은 갈등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제, 테헤란 하늘에 폭음이 울리고 하메네이의 거처가 잿더미가 되었을 때, 이란 여성들은 환호하고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그들의 환희와 그간의 고통을 쏟아내는 절규의 눈물을 보고 함께 눈물 흘리지 못했다면 당신은 미국의 공격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없다.
거리에서 하메네이 정권과 이란 혁명수비대, 그리고 테러집단들로 부터 무차별적인 총격을 당하면서도 미국의 성조기 마크가 새겨진 제트기가 이란 항공에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라던 그 시간들은 그들에게는 하루가 천년같은 시간이었다.
미국이 도착하기 전까지 하메네이 정권은 무려 3만명이 넘는 시민들을 학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 시민들은 트럼프가 "도움이 갈 것이다""포기하지 말고 계속 싸워라" 라고 약속한 그의 발언만 믿고 버터내며 간절히 트럼프 대통령의 도움을 눈물로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이 드디어 공격을 시작하자, 테헤란의 젊은 여성들은 히잡을 벗어 던지고 거리로 뛰어나왔다. 검은 천이 바람에 휘날리며 땅에 떨어지는 순간, 오랜 세월 억눌렸던 그들의 머리카락이 자유롭게 흩날렸다.
그녀들은 하늘을 향해 주먹을 쥐고 외쳤다
"드디어 자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을 지켰어!" 라고 외치며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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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결은 바다를 건너 미국까지 퍼졌다.
급진 좌파가 장악한 로스앤젤레스의 거리에서도, 이슬람계 맘다니가 시장으로 있는 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에서도 무슬림 여성들과 그들의 딸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트럼프의 이름을 외쳤다.
트럼프의 상징가인 YMCA를 크게 부르며, 춤을 추고, 거리를 활보하며, 한목소리로 외쳤다.“이제… 우리에게 드디어 자유가 왔다!”
그들의 손에는 두 개의 깃발과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한손에는 미국의 성조기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팔레비 왕조와 그 이전 카자르 왕조 시절에 사용되던 ‘사자와 태양(Lion and Sun)’ 문양의 옛 이란 국기를 들었다.
사자와 태양의 깃발은 단순한 과거의 상징이 아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 그리고 되찾고 싶은 미래를 의미한다.
이란 여성들의 환호는 단순한 승리의 함성이 아니다. 그것은 47년 동안 자유를 빼앗기고 억압 속에 갇혀 있던 영혼이 마침내 숨을 내쉬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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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의 환희의 한가운데, 이란의 젊은 여성들은 여전히 가슴 깊숙이 불안을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야 말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히잡을 벗은 채 거리를 뛰어다니는 그 순간에도, 그녀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있다.
“만약… 다시 이슬람 세력이 정권을 움켜쥐면?”
“또 다른 하메네이가,
또 다른 혁명수비대가 나타나면?”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그 이슬람이란 종교 아래 되살아날 자신의 나라의 억압 그 자체다.
히잡 강요, 돌로 맞아 죽는 형벌, 목소리를 내는 순간 사라지는 딸들, 학교도, 직장도, 꿈도 빼앗기는 또 한 번의 어둠.
하메네이가 죽었어도, 그가 세운 ‘신정국가’라는 감옥의 철창은 아직 그대로 서 있다.
새로운 최고지도자가 누구든, 그 철창을 다시 잠그려는 손길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은 기뻐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하늘을 바라본다.
“이번만큼은…제발, 진짜 자유를 주세요.” 그 한 마디가, 이란 여성들의 지금 이 순간 가장 간절한 기도다.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으며 누가 이들을 억압하고 참혹하게 자유를 빼앗아간 이란의 하메네이 정권을 옹호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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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예 에브라히미(Marzieh Ebrahimi)는 이란 이스파한 거리에서 산성 물질 공격을 당했을 당시 겨우 25세였다.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도 아니고,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이란 여성들에게 강요 된 엄격한 복장 규정을 어겼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2014년, 이스파한 전역에서는 여성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산성 물질 테러가 잇따라 발생했다.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표적이 된 것이다.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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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진영은 여전히 반제국주의와 인권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미국과 이스라엘을 “강대국 침략자”로 규정한다. 그리고 하마스 같은 극단 테러 집단이나 이란 정권, 마두로 같은 독재자들조차 “억압자에 대한 저항”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인권은 범죄자들의 인권을 말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저항인가.
민간인을 향한 학살과 테러를 저지르는 일이 억압자에 대한 저항인가?
여성이 머리카락을 보였다는 이유로 수많은 남자들이 어린 여성을 길거리에서 집단으로 돌맹이를 던지고, 폭력가하고 죽였던 이유가 억압자에 대한 저항이었는가?
언론을 통제하고 반대세력들을 감옥에 가두고 잔인하게 고문하는 일이 억압에 대한 저항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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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정보가 넘쳐난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누구나 자료를 찾을 수 있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 시대다. 심지어 이란 여성들의 피해 증언들도 직접 찾아볼 수 있는 시대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에 하메네이가 국민들을 거리에서 무참히 총살시키고, 청년들을 교수대에 목을 매달아 처형했던 일들도 찾아볼 수 있다. 사망자 수가 무려 3만명이 넘는다.
이들이 과연 보호 받아야 할 집단들인가? 아니면 제거해야하는 세력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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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핵무기를 갖는다는 것은, 이렇게 극악무도하고 민간인들을 공개처형하고 학살해도 아무런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테러 세력들에게 전세계를 언제든지 핵으로 위헙할 수 있도록 허락 해주는 일이다.
이들 세력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믿지 않으면 모두가 신에계서 저주받은 사탄의 자식들이며 이들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이다.
이러한 집단에게 과연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여기는가?
이들의 핵무기 보유는 과연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이것이 정치적 논쟁을 벌여야 할 문제를 갖고 있다고 치더라도, 좌파들은 특히 그들이 가장 주장하는 인권 논리로라도 이란 여성들에 대한 폭력과 억압에 대해 비난하며 이란 국민들의 자유를 지지해 주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인권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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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과거의 이념 속에서 교육 받았다고 해도, 지금은 21세기다.
세계는 더 복잡해졌고, 독재와 테러의 실상은 실시간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을 외면한 채 범죄 정권을 옹호하고, 자유와 인류의 안전을 위해 싸우는 민주주의 국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지적 게으름이자 도덕적 타락이다.
비판은 자유다. 하지만, 테러 세력, 하마스의 로켓 공격, 헤즈볼라 테러, 이란의 인권 말살과 핵 위협의 악랄함이나 서구 전체를 위협한 극악무도한 테러 행위들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비판해본일이 있는가?
당신들은, 25세 꽃다운 나이에 얼굴 발쪽을 산성물질 테러로 잃은 "마르지예 에브라히미" 라는 여성에 대해서 알기는 하는가?
베네주엘라 마두로를 옹호하면서도 마두로정권이 반대세력들을 어떻게 고문하고 시민들을 어떻게 공포와 고통에 몰아넣었는지 비판해보았는가?
하마스 테러세력들은 2023년 10월 7일 파티장을 습격해, 1,200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하지만 당신들은 하마스를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반격만 부각 시킨다.
당신들은 과거 역사에 사로잡혀 아직도 과거 사건에만 매몰되어, 극심한 피해 의식속에 갖혀 살아가며 세상의 옳고 그름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합리적인 생각도 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지금 이란의 완전한 비핵화와 중동 테러 세력들의 무력화, 그리고 이란 국민들의 해방을 위해 정치적 생명을 걸고 싸우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고 저주하는 세력들은 자유와 해방을 원하는 이란 국민들과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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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국민들은 자유를 외쳤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어머니는 딸을 잃었고, 젊은이들은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총알이 날아드는 상황속에서도 두려움과 공포을 버텨내며 겨우 핸드폰을 연결해 외부에 있는 우리들에게 “자신들을 잊지 말라”며 눈물로, 눈물로 간절히 호소 했다.
이란 공격을 비판하는 당신들의 가슴에도, 단 한 번이라도 그 절규가 닿기를 바란다.
정치적 입장을 넘어,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그 떨림이,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복수를 요구하는 외침이 아니다.
그저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이들의 마지막 숨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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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이슬람 교육센터에서 “학자” 무스타파 카즈위니(Moustafa Qazwini)는 최근 라마단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하메네이처럼 순교자로 이 생을 마치길 기도한다… 나는 병원 침대가 아니라 순교로 죽고 싶다. 우리는 매일 알라께 우리가 그분의 길에서 죽임을 당해 순교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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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과연 하메네이의 죽음을 ‘순교’라고 부를 수 있는가.
만약 당신의 대답이 "그렇다"고 한다면,
당신과 내가 서 있는 자리 사이의 거리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도 좁혀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 생각이, 이 밤을 유난히 더 깊고 무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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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민들에게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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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마르지예 에브라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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